친절한 에스테라

곳곳에서 마주한 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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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엔테 라 레이나의 아침이 찾아왔다. 해가 뜨기 전 빨래를 걷으러 가보니 양말과 속옷은 축축했고 바지는 아예 얼어 있었다. 무릎이 여전히 아파서 스트레칭을 하고 자판기에서 초코라떼를 하나 뽑아 마셨다. 그렇게 잠시 쉬고 있는데 창 밖으로 해가 뜨는 게 보였다. 하늘이 서서히 붉어지더니 이윽고 마을 전체를 물들였다. 그제야 새벽 다섯시부터 일어나 순례를 시작하는 이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면 잠을 약간 포기하는 정도는 조금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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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엔테 라 레이나를 흐르는 강을 건너자 이윽고 자욱한 안개가 낀 길이 오래 이어졌다. 옆에는 오늘 하루 에스테라로의 여정에서 계속해서 마주친 노란 꽃들이 즐비했다. 무릎이 아픈 것도 잊고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 사이에 어느새 마을 하나를 지났고 다음 마을인 시라우키의 작은 바르에서 빵과 오렌지 쥬스로 아침을 먹었다. 시라우키는 작은 요새처럼 생긴 마을이었는데 멀리서부터 보이는 그 모습이 참 멋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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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우키는 높게 솟아있는 사진의 모습처럼 돌산 위에 지어진 것 같다. 마을의 대부분이 평지가 없는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었고 골목골목 사이에 자리 잡은 집과 상점 그리고 바르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마을을 빠져나가는 길에 순례자들을 위한 화장실도 구비되어 있어서 친절한 마을이라는 게 느껴졌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 순례길에선 이곳에 하루 머물러봐도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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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테라로 가는 여정이 좋았던 건 시라우키에서의 화장실처럼 순례길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친절 때문이었다. 특히나 순례자들이 쉬어갈 수 있는 기부제 푸드바들이 그러했다. 노란 유채꽃(인지 잘 모르겠으나)이 끊임 없이 이어진 꽃밭 옆에 위치한 푸드바는 많은 순례자들이 쉬어가는 공간이었는데 잠시 앉아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지금까지 걸어온 피로가 가시는 것 같았다. 표지판에 써있는 Cambio de libros는 책의 변화라는 뜻이던데 해당 장소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이곳을 지나 얼마나 더 걸었을까. 입이 심심해질 찰나에 운영하는 사람이 없는 무인 도네이션바도 지났다. 이곳엔 마늘 바게트와 땅콩이 놓여 있었는데 둘 다 진짜 너무 맛있었다.


32400D4F-0892-40CC-B9A4-F24B357BAC73-24944-00000AC6B598FB5F.jpg?type=w773 찍을 땐 달팽이인 줄 알았는데 애벌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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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도착한 에스테라. 에스테라는 이전 마을인 푸엔테 라 레이나로 가는 여정과 비슷한 거리인데도 체력적으로 조금 더 힘들었다. 풍경도 다양하고 아름다웠고 쉬는 타임을 몇 번이나 가졌는데도 그러했다. 아무래도 이전의 아늑함은 연박의 효과가 컸던 모양일까. 그래도 숙소에 짐을 풀고 씻고 나오니 무릎과 다리는 한결 가벼웠다. 그리고 에스테라를 친절이라는 단어와 묶어서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그건 바로 내가 묵은 알베르게 아고라 호스텔 때문이다. 늦은 저녁으로 짜파게티를 끓여 먹은 우리가 시간 계산을 잘못한 탓에 설겆이를 미처 하지 못한 채 부엌의 운영 시간이 끝나게 되었는데 샐리 호킨스를 닮은 직원은 미소로 화답하며 그냥 두고 가면 자신이 정리하겠다고 말했다. 빠르게 설겆이를 할 수 있다는 우리의 말도 소용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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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오늘도 지나간 순례길에서의 하루. 이제는 어느 정도의 여유가 생긴 탓일까 일기도 밀려 쓰는 법이 없다. 앞으로는 가져온 책들을 읽으며 조금 더 나만의 시간을 가져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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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산티아고에서 한 달 반 동안 걸은 이야기를 연재하는 '우리 각자의 산티아고'입니다.


제가 순례길을 여행하며 담은 사진들을 모은 산티아고 엽서북과 순례길 이후의 여행을 담은 포루투갈 엽서북을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공개했습니다.


산티아고 일기는 크라우드 펀딩이 끝나는 11/17까지 매일매일 연재되오니,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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