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by 고지윤

안녕. 수리



황금 같은 주말을 앞둔 금요일 퇴근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겁에 질린 엄마의 목소리에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혹여나 무슨 문제라도 생기진 않았을까 순간 가슴에서 무언가 턱! 걸리는 느낌이 났다.


이내 엄마는 퇴근하고 집으로 좀 올 수 있냐고 물으셨다. 무슨 일 있어?라는 나의 되물음에 엄마는 “수리가 죽었어”라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다급한 목소리를 토해내셨다.

(수리는 부모님이 5년 넘게 키워온 고양이 이름이다)


그렇게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의 이유를 듣고 나에게는 안도의 마음과 슬픔의 마음이 동시에 들어섰다. 집으로 운전해서 가는 길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나의 모친이 아니라 수리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내가 참 매정하구나 또 생명이란 정말 덧없는 것이구나 같은 생각들을 하며 멍하니 집으로 향했다.


현관으로 들어서자 금색 보자기에 덮인 채 엄마 방 문 앞에 누워있는 수리와 화장실 앞에서 수리와 나를 번갈아 보며 서있는 엄마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의 표정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 엄마를 두고 우선 수리 곁으로 가서 앉았다. 보자기에 덮인 수리를 뚫어져라 보았다.


약간 무서워 선뜻 손이 나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 수리의 옆구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수리는 이제 그 어떤 생명의 흔적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


마치 차갑고 딱딱한 돌덩이 같았다. 수리의 몸을 쓰다듬어주고 주물러 주며 조금이라도 내 손의 온기가 수리에게 옮겨가기를 바랐다. 그러나 수리는 어릴 적 박물관에서 보았던 박제된 동물처럼 영혼 없는 빈 껍데기가 되어있었다.


분명 아침에 내가 출근준비를 할 때만 하더라도 야옹야옹하며 나에게 다가와 쓰다듬어 달라고 비비적거렸는데..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그 뱃살을 만지면 벌러덩 드러눕던 너였다. 그런 네가 반나절이 지났을 뿐인데 너는 어디 가고 내 앞엔 영혼 없는 너의 껍데기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걸까.


내가 이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게 어려워 집에만 있을 때에도 넌 나에게 항상 먼저 다가와 그저 내 옆에 앉아있어 줬었는데 네가 마지막 숨을 내뱉을 때 곁에 있어주지 못해 너무 미안해..


시야가 깜깜해지고 들리던 소리가 서서히 멀어지며 그 삭막한 세상으로 넘어가는 느낌. 그 속에서 너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너는 애타게 가족들을 찾았겠지.. 빈 집에서 홀로 외로이 죽게 둬서 정말 미안해


죽은 수리를 쓰다듬고 주물러주는 짧은 시간 동안 수리와 함께 했던 많은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러면서도 엄마와 난 금세 현실로 돌아와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상의해 봤는데, 우선 동물사체를 개인이 묻어주는 건 불법이라고 인터넷에 나와있어서 지방자치단체 민원실에 전화해서 물어보니 두 가지 방법을 알려주셨다.


크게 화장을 하는 방법과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아무리 그래도 한 지붕 아래에서 5년이 넘는 시간을 같이 살았는데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는 건 좀 아닌 것 같다며 엄마와 함께 수리를 상자에 담아 수리가 평소 다니던 동물병원으로 가서 화장을 해달라고 했다.


그렇게 수리를 보내주고 엄마와 나는 집에서 한 생명이 이렇게 사라지는 게 정말 허망하다고 사람도 마찬가지 아니겠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우린 모두 마지막에 와서야 뒤늦게 깨닫는다. 우리의 삶도, 그 속에 존재하는 모든 순간들도 결국 끝이 있다고..


누구나 시간을 돌리거나 그 위에 쓰인 기록을 지울 수는 없다. 그래서 과거를 후회할지라도 새로운 선택과 시간들은 또 우리에게 찾아온다.


모두에게 평등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