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상징 자존심

by 고지윤

난 어려서부터 자존심이 아주 센 아이였다.

누구에게 무엇이든 지기 싫어했고 친구들에게 뭔가 하나라도 뒤처지는 것 역시 아주 싫어했다.


친구에게 게임에서 지고 집에 돌아오는 날이면 하루 종일 아무 잘못 없는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기 일쑤였다. 그런 내가 열다섯 살 한창 사춘기가 오던 시절 장애를 갖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일 년이 넘게 병원에 있느라 학교까지 유급을 당했다.


그 말은 즉 친구들은 고등학교에 올라가는데 난 다시 중학교를 다녀야 했다는 말이다. 그건 나에게 있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부모님은 내가 친구들보다 조금 늦더라도 학교에 복학해서 학교생활을 계속하길 바라셨다. 하지만 난 누구에게도 뒤처지고 싶지 않았다.


그땐 몰랐다. 인생이라는 게임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그 정돈 결코 뒤처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결국 난 섣부른 결심을 했다. 학교를 다니지 않기로..


그랬더니 “어차피 대학만 가면 되는 거 아니냐”는 내 말에 엄만 “학교는 단지 대학을 가기 위해 다니는 곳이 아니야”라고 답하셨다. 그때의 나는 역시 몰랐다.


학교에 다니며 또래 친구들과 어울린다는 게 후에 내가 겪게 될 사회에서의 경험들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난 엄마의 설득을 뿌리치고 검정고시학원에 등록했다. 그렇게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았던 나의 자존심을 건 레이스가 시작됐다.


심지어 그 당시엔 내가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정신상태도 아니었다. 아무리 재활치료를 통해 일상생활이 가능한 몸상태를 만들어 퇴원했다지만 나는 정말로 두려웠다. 남들에게도 나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나의 새로운 몸을 가지고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이.


그럼에도 저 앞으로 먼저 가버린 친구들을 뒤에서 바라보는 것이 더 힘들었기에 용기를 내어 첫걸음을 내디뎠다.


물론 중학생 때까지 책도 읽지 않고 공부도 해본 적 없던 아이가 갑자기 시험공부를 한다는 게 익숙한 일은 아니었다. 특히 영어공부를 할 때 애를 많이 먹었는데 마침 학원에 필리핀에서 공부를 하다가 온 누나가 있어서 거의 그 누나에게 과외를 받다시피 같이 공부를 해서 겨우겨우 시험을 봤다. 퇴원을 하고 나서 나의 첫 도전은 그래도 나름 성공적이었다.


친구들이 고등학교에 올라가던 해에 난 중학교 졸업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그럼에도 아직 친구들에게 뒤처졌다는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시험을 보기 전엔 몰랐는데 막상 한번 보고 나니 “별 거 없네”란 생각이 들었다. 검정고시 시험은 문제은행 방식으로 출제가 되기에 특출 나게 머리가 좋아야 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의자에 오래 앉아 문제집을 반복해서 계속 풀기만 하면 점수가 오르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몇 개월 만에 중학교 과정을 끝내고 자신감이 생김과 동시에 친구들을 앞지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다음 해에 바로 고등학교 졸업자격 검정고시를 보기로 마음먹고 또 죽어라 문제집만 풀었다. 시험준비를 하며 느꼈던 건 예전엔 어느 것 하나에 오래 집중하지 못했던 내가 이젠 꽤나 끈기가 생기고 인내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병원에서의 생활이 꼭 내 인생에 안 좋은 영향만 준 건 아닌가 보다.


그렇게 죽어라 문제집을 풀고 덜 끝난 재활치료도 받으며 지내다 보니 어느새 다음 해가 되었고 난 계획대로 시험을 보고 고등학교 졸업자격을 획득했다. 드디어 친구들을 따라잡는 순간이었다.


마침 시험점수도 생각했던 것보다 잘 나와서 수능은 보지 않기로 한다. 시험에 합격하고 어떤 대학에 가고 뭘 배울지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안경광학을 배우기로 한다. 그렇게 전국에 있는 학교들 중 네 곳 정도에 수시원서를 지원해 봤는데 운이 좋게도 강릉에 있는 전문대학에서 합격 안내를 보내왔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친구들보다 1년 일찍 대학에 가는 게 뭐라고 정말 너무 하찮게 느껴지지만 그때 당시에 나로서는 병원에서 퇴원하고 갑자기 변해버린 나 자신과 주변 환경들 속에서 어떻게든 열심히 살아보고자 하는 이유를 억지로 만든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 우리가 지금 삶의 원동력으로 삼고 있는 무언가도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다시 생각해 보면 정말 하찮고 부질없는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니까 살면서 너무 힘 빡! 주고 살지 말고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