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 속에서 피는 꽃

by 고지윤

누군가 그러지 않았던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하지만 내 인생은 멀리서 보아도, 가까이서 보아도 비극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도 그럴게 열다섯 어린 나이에 뇌출혈이 말이 된다는 말인가.. 그렇다. 내 인생 첫 비극이자 변환점은 내가 열다섯 살이던 해 9월 8일이었다.


그날은 잔인하게도 많은 것들이 지금까지 너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아침에 등교하며 챙긴 꽃처럼 알록달록하던 무지개우산, 점심 메뉴로 나왔던 토마토스파게티, 점심시간 친구들과 화장실에서 내기로 하던 턱걸이까지. 내 차례가 끝나고 친구들 앞으로 걸어가던 중 갑자기 세상이 뒤집히는 것 같던 그 느낌마저 아직 생생하다.


난 그렇게 의식의 끈을 놓았다. 이후 중간중간 친구들이 날 들쳐 안고 보건실로 달려가는 느낌, 보건선생님께서 입 안의 이물질을 빼주던 느낌 같은 것들도 기억이 난다.



정신을 차렸을 땐 삼 개월이나 사 개월 정도의 시간이 흘러있었다. 처음 깨어났을 땐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거라곤 입을 뻐끔뻐끔 거리는 것과 눈꺼풀을 내렸다 올렸다 하는 게 전부였다. 음식물을 삼킬 수도 없어 콧줄을 통해 대체식으로 식사를 때우고 스스로 호흡도 어려워 목에 구멍을 뚫어 구멍을 통해 숨을 쉬었다.


처음엔 내가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줄 알고 두려워서 울기만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진흙 속에서도 꽃이 피듯 내게도 주변에서 간호사 선생님들, 의사 선생님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까지 모두 열심히 재활치료를 받으면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다고 희망의 씨앗을 심었다.


그렇게 난 비극 속에서 꽃을 피우기 위해 사력을 다해 재활치료를 시작했다. 처음엔 목에 뚫린 구멍을 막고 코로 호흡하는 것부터 연습했다. 목에 뚫린 구멍으로 숨을 쉬다가 코로 숨을 쉬기 위해 마개를 막는 순간 난 분명 방금까지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고 있었는데 순간 내 주변의 공기가 줄어든 듯한 느낌을 느낀다. 숨을 들이쉬고 내뱉는 행위가 이렇게나 어려웠던 일이었던가 생각하며 숨 한 줌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다음은 콧줄을 빼기 위해서 음식물을 삼키는 치료를 받는다 턱 주변에 전극 같은 걸 여러 개 붙이고 요플레처럼 목 넘김이 쉬운 음식물을 작업치료사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삼킨다. 나는 특히 이 치료시간을 좋아했다. 당시에 나로서는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는 대체식을 콧줄로 주입받았기 때문에 달콤한 요플레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연하치료 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연하치료에선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의 단계가 있는데 그중 물이나 국물 같은 건 가장 마지막 단계이다. 그런데 어느 날 옆자리 아저씨의 식사에 짬뽕이 나왔다. 옆에서 그 냄새를 맡으며 아저씨가 식사하시는 걸 지켜보는데 어찌나 그 칼칼하고 매콤한 짬뽕국물을 한입 먹어보고 싶던지... 그날 난 엄마에게 내가 지금 저 짬뽕국물을 한 번만 먹어볼 수 있다면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며 애원했었다. 그게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글을 쓰고 있다는 건 예상들 했겠지만 그렇다. 엄마는 위험하다고 나에게 짬뽕국물을 주지 않았다. 이젠 다 지난 일이니까 엄마한테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웃으며 말하지만 당시엔 정말 가슴에 한이 맺힐 정도로 슬펐다.


어려서 그런지 나는 콧줄도 금방 뺐고 목에 뚫었던 구멍도 금세 막혔다. 이제 제법 코로 숨을 쉬고 입으로 식사를 하는 게 익숙해지자 문제는 몸이었다. 우뇌에 출혈이 생겼기에 데칼코마니를 해놓은 것처럼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뉘어 왼쪽은 마치 내 몸이 아닌 것 같았다.


아무리 뇌에서 움직이라고 신호를 보내도 꼼짝도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좌우 균형을 맞추기 위해 재활치료를 받으며 아예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혼자 앉는 법부터 혼자 서있는 법 그리고 발걸음을 한걸음 내딛는 동작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모든 동작들을 다시 연습해야 했다.


전에는 알지 못했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내딛는 한걸음에 이렇게 많은 근육들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며 쓰이는지를.. 그렇게 병원에서 일 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사람들이 비극 속에 심어준 희망의 씨앗이 피어나는 날이 왔다. “퇴원일”10.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