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도피처 mr. market

by 고지윤


나는 종종 현실로부터 도망친다. 내가 뛰어놀 수 있는 나만의 도피처로


시장에서 처음 매력을 느낀 건 대학에 다닐 때였다. 내가 2학년이 되던 해에 총장님으로 새로 오신 교수님께서는 원래 다른 학교에서 경제학과 교수 생활을 오래 하다가 오셨다고 하셨다.


그런 총장님께서 무슨 마음으로 그러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직접 투자동아리를 만드셔서 강의까지 해주시는 열정을 보이셨다.


병원에 있을 때 재테크 관련 서적을 읽으며 전부터 주식에 관심을 갖고 있던 나는 마침 기숙사에서 딱히 할 일도 없었기에 동아리에 가입해 총장님의 열정적인 강의도 듣고 다른 학생들과 모의투자대회에도 참가해 보며 본격적으로 시장에 발을 내딛게 되었다.


그 당시엔 달리 수입이 있던 것이 아니었기에 투자라든지 재테크라든지 그런 거창한 명목 하에 거래를 했던 건 아니고 그냥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나 관심 정도를 갖고 매매에 임했었다.


그렇게 생활비로 받던 용돈을 조금씩 모아 몇십만 원을 가지고 시작한 나의 첫 거래는 한 번 두 번 수익이 나며 치킨값을 만들어냈다. 그런 사실이 나는 너무 뿌듯해 점점 거래 빈도를 늘려갔다.


처음엔 분명 맹목적으로 눈앞에 있는 “돈”을 쫓아가며 거래를 했었는데 사고파는 행위의 빈도가 늘어나자 나는 점점 “매매”라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게 됐다.


행위 자체에 집중한다는 건 거래할 때 내가 느끼는 여러 감정에 집중하는 것과 수많은 상황 속에서 내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관찰자 시점에서 관찰하는 것이다.


이렇게 매매에 집중을 하게 된 후로 나에겐 작은 습관 하나가 새로 생겼다. 매매를 하며 느끼는 감정들이나 스스로 상황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고 든 생각을 짧은 문장으로 남겨놓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시장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내가 살아가는 삶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에 도달한다.


이쯤 되면 난 점점 현실에서 느끼는 감정에 무뎌지고 지루하거나 재미없는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처음엔 나만의 도피처가 있다는 게 좋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은 결국 우리가 현실로부터 자신만의 도피처로 아무리 도망친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영원한 낙원에 도달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계속해서 현실로부터 낙원이란 이름의 도피처로 도망치다 보면 그곳엔 현실에서 상처 입고 지친 자신만이 남게 된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그곳은 도피처로서의 기능은 상실하고 또 다른 현실이 되고 만다.


이렇게 영원한 낙원을 지향하며 맘껏 도망치다 보면 분명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땐 한 사람의 인생이 녹아있는 확장된 세상만이 그곳에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스스로 현실에서의 고통을 회피한다고, 고통으로부터 도망만 친다고 자책하지 말자. 우린 그저 자신만의 세상을 확장시키고 있을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