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에세이 2026년 2월호. "쉼표를 찾아서" 코너의 낭만기술사 글
월간에세이 2026.2월호에 저의 글이 실렸습니다.
"쉼표를 찾아서"라는 코너에 올려진 글을 브런치에 공유드립니다.
손병천 엔지니어·작가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회사의 공기는 묘하게 달라진다.
복도를 오가는 발걸음은 조금 빨라지고, 회의실 문 너머에서는 조심스러운 말들이 오간다.
누군가는 새로운 보직을 맡고, 누군가는 끝내 이름이 불리지 않는다.
나는 그 풍경을 오래 지켜본 사람이다. 기대와 체념이 교차하는 순간들 속에서,
나는 어느새 다음 보직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이 자리에 남아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대기업 자동차 회사에서 삼십 년 가까이 일하고 있다.
연구원으로 시작해 시험 엔지니어를 거쳤고, 지금은 프로젝트 매니저로 여러 부서를 잇는 일을 한다.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일했고,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최근 회사의 흐름은 분명하다.
젊은 보직자들을 전면에 세우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더 이상 보직을 맡기 어려운 위치가 되었다.
회사에는 두 갈래의 길이 있다. 보직자의 길과 비보직자의 길이다.
보직자의 길은 비교적 선명하다. 어떤 직책을 거쳤는지, 무엇을 맡아 왔는지,
조직은 직함으로 그 사람의 성장을 확인한다. 반면 비보직자의 길은 그렇지 않다.
눈에 띄는 표식도, 설명하기 쉬운 경로도 없다. 그래서 그 길은 종종 확인되지 않은 길로 남는다.
처음에는 그 사실이 마음을 흔들었다. 열정도 있고 경험도 있는데,
더 이상 보직의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 질문을 바꾸게 되었다. 리더는 반드시 보직자여야만 하는가.
조직을 움직이는 힘은 정말 직함에서만 나오는 것일까.
나는 자기 계발을 할 때 늘 질문에서 출발하려고 한다.
스스로에게 질문하지 않으면 성장은 쉽게 관성에 빠진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격언이 있다.
마릴리 애덤스의 이 말은 내가 일을 대하고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되었다.
답을 서둘러 찾기보다, 질문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깨달음이었다.
그 질문 끝에서 나는 비보직자의 길을 단순히 견디는 길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 가는 길로 삼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나의 존재감을 증명해 보고자 했다.
그 선택 중 하나가 ‘기술사 자격’이었다.
엔지니어로서 최고 수준의 국가자격증을 취득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보직이 없어도 나의 기술적 전문성을 공식적으로 증명해 주었다.
그 경험은 단순한 자격 취득을 넘어,
나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는 확신을 주었고, 흔들리던 자존감을 단단하게 세워주었다.
또 하나의 선택은 ‘협업’이었다.
프로젝트 매니저의 일은 일정과 회의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극을 조율하는 일에 가깝다.
나는 설계와 시험, 생산과 품질처럼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박자를 맞추는 역할을 해왔다.
앞에 서서 지시하기보다, 전체의 흐름이 어긋나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타 부문으로부터 협업 우수 사원으로 추천을 받았고,
보직은 아니지만 분명한 신뢰와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회사 밖에서는 또 다른 성장이 일어나고 있다.
나는 SNS를 하며 ‘약한 연대(weak tie)’의 힘을 경험하고 있다.
처음에는 느슨하게 시작된 인연들이지만,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회사 안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넓은 세상을 만나고 있다.
그 약한 연대는 점차 강한 연대로 변하며 나의 시야와 자기 계발을 키워 주고 있다.
나는 매달 한 번씩 세바시 강연을 청강한다. 다른 사람들의 삶 이야기를 직접 듣고 공감하며,
그 안에 나의 모습을 투영해 본다. 성공담보다 실패와 흔들림이 담긴 날것의 경험들이
오히려 나를 더 성숙하게 만든다. 작가들의 북토크를 자주 찾는 이유도 같다.
책 속 문장이 아니라, 현장에서 느껴지는 숨결과 망설임을 통해 삶을 이해하고 싶기 때문이다.
AI가 많은 것을 대체해 가는 시대에, 나는 그 어느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로 남고 싶다.
그래서 더 많이 현장에 나가고, 더 많이 사람을 만나며, 날것의 경험을 직접 쌓으려 한다.
질문하고, 듣고, 공감하는 이 과정만큼은 그 어떤 기술도 대신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낭만기술사’라고 부른다.
회사에서는 쓸모없어 보일지도 모르는 질문, 기다림, 사람에 대한 관심을 끝까지
붙들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낭만은 감상적인 선택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조직과 시대에 가장 현실적으로 필요한 태도에 가깝다.
나는 오늘도 비보직자의 길을 걷는다. 느리고, 설명하기 어렵고,
공식적인 언어로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길이다.
돌아보면 이 길에 대해 누군가 공개적으로 “나는 이렇게 걸어왔다”라고 말한 이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이 길은 늘 개인의 선택으로만 남았고, 참고할 지도조차 없었다.
나는 이제 나의 길을 공식화해 보고 싶다.
보직이 없어도 전문성으로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것,
직함이 없어도 리더십은 작동할 수 있다는 것, 질문하고 연결하며 사람을 남기는 일이 직을 더 오래,
더 단단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누군가는 분명히 말해도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완성된 길이 아니어도 괜찮다. 누군가에게는 이정표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이런 선택도 가능하다”라는 작은 용기가 된다면 충분하다.
쓸모없어 보이는 것을 끝까지 붙드는 일, 그 느린 태도 위에서 나만의 존재감을 만들어 가는 일.
그것이 내가 선택한 비보직자의 리더십이며, 앞으로도 계속 걸어갈 나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