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9]호칭이란 이름 뒤에 남는 것들

기술사라는 호칭보다 오래 남아야 할 것

by 낭만기술사


어떤 날은

달력 속 숫자를 넘어

삶의 이면을 조용히 비추는 거울이 된다.


제62회 「기술사의 날」.

그날의 공기는 유난히 차분했고,

나는 그 차분함 속에서

오히려 오래 묻어 두었던 질문들과 마주했다.

회장 이·취임식이 이어지고,

공로자들의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박수는 일정한 리듬으로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 박수 소리 뒤편에서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생각했다.

수십 년 동안 현장을 지켜온 시간,

실패를 견디며 축적된 경험,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감당해 온 책임의 무게.

기술사.


국가 최고 기술 자격이라는 이름은

분명 무겁고 단단하다.


그러나 그 단단함은

종이 위의 활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 속에서 비로소 형태를 얻는다.


신임 회장의 취임사 중 한 문장이

내 마음의 문을 천천히 두드렸다.


최고의 자격임에도 정당한 존중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되돌아보고 개선하겠다.”


그 문장은 제도에 대한 선언이면서도,

내 안에 오래 머물던 물음 하나를 깨웠다.

나는 존중받고 싶은가.

아니면 존중받을 만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대기업이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기술사 자격은 때로 명함 한켠의 작은 글씨로 남는다.


회의 자료의 하단,

이메일 서명 속 한 줄.

그 존재는 분명하지만,

그 의미는 자주 잊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알게 된다.


이름의 크기는 글자 크기로 정해지지 않으며,

자격의 무게는 사용 빈도로 측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 이름을 짊어진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태도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비로소 의미가 생겨난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낭만기술사’라 부르기 시작했다.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일지라도,

그 안에는 나의 바람이 담겨 있다.


기술을 도구로 삼되 사람을 향해 쓰고 싶은 마음.

성과의 숫자를 넘어 의미의 흔적을 남기고 싶은 고집.

효율과 속도가 지배하는 시대 속에서도

사람의 온기를 잃지 않으려는 작은 저항.


자동차 기술사로 살아온 시간 동안

나는 수많은 수치와 도면, 시험 결과 속에서

정확함을 배워 왔다.


그러나 어느 순간 깨달았다.


기술의 최종 목적지는

언제나 사람의 삶이라는 사실을.

더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밤,

가족을 태우고 떠나는 여행길의 안심,

위급한 순간 누군가의 생명을 지켜주는 구조.

기술은 그렇게

이름 없이 사람들의 하루를 지탱한다.


기술사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서로 다른 분야에 서 있지만

보이지 않는 한 줄의 언어로 연결되어 있다.


그 언어는 공식이 아니라 책임이며,

도면이 아니라 양심이고,

성과가 아니라 사람을 향한 마음이다.


그리고 그 언어는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완성된다.


나는 오늘 다시 배운다.

자격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

존중은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쌓이는 것이라는 것.


가치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선택으로 살아내는 것이라는 것.

앞으로도 나는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넓은 세계와 대화하며,

배움을 멈추지 않는 기술사로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조용히 말을 건네고 싶다.

당신이 가진 이름이 무엇이든,

그 이름이 직함이든 자격이든 역할이든,

그것은 당신을 설명하는 표식일 뿐

당신을 완성하지는 않는다.


우리를 완성하는 것은

우리가 매일 선택하는 태도와,

누군가를 향해 내미는 마음이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지켜내는 책임이다.


언젠가 우리의 이름이 잊히더라도,

우리가 남긴 태도는

누군가의 삶 속에서 오래 머물 것이다.


기술을 넘어 사람을 향하는 길 위에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걸어간다.

— 낭만기술사의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