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까지 얻고 폐업신고를 하던 날
<2부. 인생은 소거법. 해 봐야 안다.>
4화. 내 브랜드만 만들면 끝일 줄 알았지
- 작업실까지 얻고 폐업신고를 하던 날
5화. 제가 감히 영어를 가르쳐도 될까요?
- 돈 받는 순간부터 전문가라던데
6화. 월급을 포기하고 다시 수험생이 된다는 것
- 수험생활의 불안감이 이렇게 클 클 줄 알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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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에서 이어집니다.
졸업작품을 하기 1년 전이었습니다. 삼촌께서 휴가용 별장을 짓고 싶어 설계 회사에 의뢰를 할 예정이긴 한데 아무래도 네가 대학생이니 통통 튀는 아이디어가 또 나오지 않겠냐며 설계를 한 번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1부에서 나왔듯이 당시의 저는 설계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기 때문에 거절하고 싶었지만 부담 없이 한 번 해보라는 권유에 알겠다고 말씀은 드렸지만 너무나도 막막했습니다. 다음날 설계실에서 당시 친하게 지내던 선배에게 이 이야기를 털어놓자 재밌어 보인다며 저를 설득해서 삼촌께 팀작업으로 하겠다고 말씀을 드리라 했고 동기 한 명이 더 합류해 총 셋이서 별장 프로젝트 설계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삼촌께서는 감사하게도 현장 답사에 필요한 차비와 기타 비용을 위한 선금과 설계를 마무리하고 수고했다며 디자인 비용으로 200만 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이때부터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 돈을 1/3로 나누고 그냥 찢어지냐 아니면 원래 없었던 돈이니 이걸 활용해서 뭔가 의미 있는 것을 해 볼 것이냐였습니다. 만장일치로 대학생 때 해볼 수 있는 것을 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고 본격적으로 저희만의 브랜드를 위한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학생 때 하는 설계는 사실상 실제로 지어질 일이 없는 가상의 건물을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에 결과물을 단기간에 낼 수 있는 보다 가시적인 프로젝트를 하고 싶었고 생활용품을 직접 디자인해서 판매를 해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습니다. 200만 원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또 펑펑 쓸 수 없는 학생 창업자들이었기 때문에 어떤 채널로 제품을 판매할 것인지, 고객을 모을 것인지 모든 것들이 낯설었습니다. 다만 저희에게는 학부 생활을 하며 필사적으로 익혀둔 각종 3D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아는 능력과 학생들을 위해 학교에 비치된 레이저 커팅기 등의 장비가 있었기 때문에 외주를 주지 않고 모든 과정을 최대한 직접 해낸다는 포부가 있었습니다.
(창업 과정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시리즈 종료 후 외전에서 다룰 계획입니다.)
그렇게 졸업작품 직후 휴학까지 하며 2년간 총 세 개의 제품을 출시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목표했던 판매 치를 달성했던 제품은 하나뿐이었지만 대학생 때 해봤던 모든 경험을 통틀어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들 중 하나일 정도로 많은 인사이트를 얻었습니다.
첫째, 제작자의 시각으로 제품을 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제품을 만들기 위해 품목을 선정하고, 시장조사를 하고, 재료를 찾아다니고, 제작업체를 컨택하고, 단가 협상을 하며, 마케팅과 홍보, A/S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해보니 하나의 기성품에 들어가는 엄청난 과정과 그에 수반하는 과정이 머릿속에 그려진다고 할까요. 소비자로서 너무 비싸거나 너무 저렴해서 의문이 드는 제품이 있더라도 이럴 수밖에 없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겠나 하고 한번 더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둘째, 세상에 없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살다 보면 왜 그럴 때 있지 않나요? 내 머릿속에 그려둔 가상의 '그것'이 왜 세상에 없는지 고민하는 순간이요. 저도 첫 제품을 만들 때는 그렇게 단순하게만 접근을 했는데 원하는 판매량 목표치에 도달을 못해서 실판매를 이뤄내지 못하고 팀원들과 회의하며 도출한 값진 결론이었습니다. 브랜드들이 바보라서 이걸 안 만들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요. 물론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진짜 시간의 문제로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있었을 수도 있지만 사실 그런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더라고요.
셋째, 주인의식을 가지게 됐습니다. 아무래도 소비자로만 살던 때는 고민하지 않아도 됐을 것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내 손을 거쳐야 했으니 뭔가 놓치는 게 있지는 않을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고민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내 브랜드를 운영하려면 시키는 것만 하지 않고 찾아서 해야 하기 때문에 능동적으로 어떤 것들이 더 필요할지 고민하는 좋은 버릇이 생겼고 덕분에 후에 자기소개서에 해당 사례를 쓰면 면접에서 좋게 봐주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소중한 인사이트도 얻고 두 번째 판매한 제품의 매출 덕에 작업실까지 얻었으면서 왜 폐업을 했는지 가장 중요한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거창한 이유는 아니고 당시에 저는 남 밑에서 시키는 일을 하는 게 더 성향에 맞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능동적으로 할 일을 찾아서 하는 주인의식을 함양해 본 것은 너무나도 값진 일이지만 2년간 팀원들과 함께였긴 하지만 최고 의사결정자로서 지내면서 느꼈던 압박감이 제법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습니다. 당시 20대 중반이었기 때문에 아직 아르바이트를 제외한 사회 경험이 없었으므로 좀 더 체계화된 시스템 속에서 작은 역할부터 배워보고 그다음에 내 일을 해도 늦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상 세 번째 프로젝트가 목표치 달성이 실패하게 되며 마지막에 창업 자체가 흐지부지 된 것도 있었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제가 계속 창업의 길을 고집했다면 또 이어 나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2년간 초기 자본이었던 200만 원 외에도 사업자를 내고 작업실을 구하고 난 후 보험료와 월세, 관리비 및 기타 경비 등 예상치도 못했던 부분에서 지출이 많아 따지고 보면 열정페이로 그 시간을 보낸 셈이지만 전혀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인생은 소거법이라는 말이 있듯, 해봤기 때문에 내가 창업과 맞는 사람인지, 디자인을 해서 제품을 출시하고 하나의 브랜드를 이끌어 갈 만큼의 그릇이 되는 사람인지, 훗날 다시 도전할 때는 어떤 준비를 더 철저히 하고 뛰어들어야 할지를 모두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직접 발로 뛰고 제작해서 판매를 해본 덕분에 자영업자 디자이너로 사는 선택지는 미련 없이 소거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영어 강사' 시절의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