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愛人)과 연인(戀人)

한중일 한자어의 비교 : 같은 글자, 다른 뜻 1

한자는 동아시아의 공통 문자지만, 같은 글자로 된 말이라고 해도 그 의미가 다른 경우가 많다. 물론 그런 것들은 대부분 각국의 특수한 문화적 배경이나 사회적 환경에서 만들어진 것이어서, 그 사회나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애인(愛人)’이라는 한자어는 한국·일본·중국에서 전혀 다른 뜻으로 쓰이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내 애인은 일본 사람이다.”라고 말하면, 듣는 사람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할지도 모른다. 한국어의 ‘애인’은 사랑하는 사람을 뜻하지만, 일본어의 愛人(아이징)은 일반적으로 ‘불륜 관계의 상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중국어의 爱人(아이런)은 부부가 서로의 배우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애인(愛人)’ ― 글자는 같지만, 사랑의 방향은 서로 다르다.


한국어의 ‘애인(愛人)’, 일본어의 愛人(아이징), 중국어의 爱人(아이런)은 모두 한자 ‘愛(사랑할 애) + 人(사람 인)’의 결합이어서, 문자적 의미로만 보면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 말은 글자는 같지만, 한중일 세 나라의 사회문화적 배경과 관련이 있는 말이어서 그 의미는 다르다.

한국어 애인(愛人)은 ‘애인 관계’, ‘애인 사이’, ‘애인 있어요?’처럼 서로 사랑하는 남녀, 혹은 연애하는 사람을 뜻하는 낭만적이고 설레는 사랑의 말이다. 영어의 lover보다 폭이 넓고 ‘남자 친구 boyfriend’, 또는 ‘여자 친구 girlfriend’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물론 한국어에는 남친(男親, 남자 친구)과 여친(女親, 여자 친구) 외에도, 남사친과 여사친 등 남녀 관계를 세분화하여 지칭하는 말들이 더 있고, 애인(愛人)이 불륜인 남녀 관계까지 의미하기도 한다. 또 연인(戀人)이나 정인(情人)이라는 애인(愛人)과 비슷한 말들이 있지만, 지금은 정인(情人)이라는 말은 거의 쓰이지 않고, 일상적으로는 연인보다 애인이 더 일반적인 말이다.


일본어 愛人(あいじん, 아이징)은 주로 금기된 사랑을 가리킨다. 현대 일본어에서는 주로 ‘불륜 상대’, ‘정부(情婦)’의 의미로 쓰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가리킬 때는 ‘연인 恋人(こいびと, 코이비토)’이(가) 일반적인 표현이다. 20세기 전반 문학 작품에서는 「愛人」이 ‘연모의 대상’, ‘애정의 상대’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으나, 「인간 실격」의 작가로 잘 알려진 일본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太宰治)가 1947년에 출간한 「사양(斜陽)」이라는 작품 이후에 ‘사회적 금기=불륜’이라는 의미가 결합하면서 그런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사양(斜陽)」(1947)은 전후 일본의, 전통적 가족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윤리와 개인의 자유가 충돌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전통적 가치가 무너진 시대의 사랑과 죄의식을 다룬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여주인공 가즈코는 기혼 남성과 관계를 맺으며 자신을 ‘愛人(아이징)’이라 부른다. “私は彼の愛人になります。(나는 그의 애인이 될 것입니다)”라는 작품 속 대사는 일본 문학과 사회에서 「愛人」이 ‘기혼자와의 은밀한 관계’라는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그 이후 ‘愛人=정부·첩·은밀한 연인‧불륜’으로 의미가 고정된 것이다. 그래서 “彼には愛人がいる”(그는 정부가 있다), “彼女は社長の愛人だ”(그녀는 사장의 정부/첩이다)처럼 쓰인다. 한편, 일본어에서 정인 情人(じょうじん, 조징)은 한국어의 애인처럼 그 폭이 넓다. 그래서 연인(戀人)이나 愛人(아이징)과 비슷한 의미로도 쓰이고, 마음이 통하는 친한 친구(心が通じる親しい友)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중국어 爱人[àirén](아이런)은 ‘(공식적인) 배우자 또는 남편·아내’의 뜻으로 쓰이고, 한국어의 애인(愛人, 사랑하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정인 情人(儿)[qíngrén](칭런), 정려 情侣[qínglǚ](칭뤼)라고 하고 연인 恋人[liànrén](리엔런)을 쓰기도 한다. 1950년대 중국이 공산화된 이후 사회주의적 평등 이념 속에서 ‘남편 丈夫’이나 ‘아내 妻子’ 대신 사용할 수 있는 爱人[àirén](아이런)이 평등한 부부의 지칭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물론 현대 구어에서는 남편을 ‘老公(라오공)’이라고 하고, 아내를 ‘老婆(라오퍼, 우리말 ‘노파’와 한자는 같지만 같은 뜻은 아님!)’라는 표현이 있고 그 말을 더 자주 쓰는 경향도 있지만, 여전히 “我的爱人”(내 배우자, 내 남편/아내), “我的爱人是老师”(내 배우자는 교사이다), “他对爱人很体贴”(그는 아내에게 매우 다정하다)처럼 따뜻한 존칭의 느낌으로 쓰인다.


이처럼 ‘애인(愛人)’이라는 같은 글자로 된 단어가 한국어에서는 ‘낭만적인 사랑, 또는 연모의 대상’이라는 의미로 쓰이지만, 일본에서는 ‘금지된 사랑, 또는 불륜 관계’를 의미하고, 중국어에서는 '평등과 존중'이라는 의미를 갖게 된 것은 각 사회의 가족 제도, 도덕이나 사회 규범과 같은 문화적 요소가 언어 속에 각기 다른 형태로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애인(愛人)이라는 말에 세 나라의 ‘사랑’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문화적 시선이 담겨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언어는 그 사회의 문화적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