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 (현재)

by 프렌치힐

웩-


요환은 허리를 굽히고 무릎에 손을 얹었다.


양손으로 몸을 지탱하고 머리를 숙인 채 헛구역질을 했다.


“자네가 수영을 못 하는 줄은 전혀 몰랐네.”


“저는 물을 무서워합니다. 박사님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물속에 들어가 본 것 같군요.”


요환은 부르르 떨었다. 물이 차가워서가 아니었다.


자기도 모르게 온몸이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떨렸다.


“이거 미안하게 됐구먼. 자네가 계획을 조금 더 잘 설명해 주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아니, 그 건물 뒤에 강이 있다는 사실을 깜박했었다네.”


“길게 설명할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도 다행이군요. 그나저나 박사님 어떠셨습니까?”


“무엇을 말인가?”


“블랙홀을 통과해 보신 소견 말입니다.”


“아까 전만 해도 다 죽어가던 친구가 금세 씩씩해졌구먼. 글쎄 뭐랄까? 생각 보다 별것은 없던데?”


왓슨은 여전히 굽어져 있는 요환의 등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런가요?”


조금 전 만에도 죽을 것만 같았던 요환의 표정도 점점 펴지기 시작했다.


“자네와 블랙홀에 관한 연구를 오랫동안 했음에도 처음 그 안을 들어가 봤으니 신기하기도 했네.”


“그렇군요. 생각해 보니 블랙홀 안을 들어가 본 것은 항상 저뿐이었네요.”


“사실 그 사고 이후로 모두 블랙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이었으니까. 난 자네가 처음 완성된 블랙홀 안을 아무 거리낌 없이 들어갔던 기억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네. 그때는 정말 대단한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지.”


요환은 처음 자신이 블랙홀 안을 들어갔을 때를 생각해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박사님, 저도 전혀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고요.’


처음 완성된 블랙홀 안을 들어갔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셀레나와 함께 바벨탑을 방문했을 때 왓슨의 연구소에서 남아 있던 탄환들을 챙겨 왔던 것이 신의 한 수였다.


마지막 남은 탄환을 보스턴 경찰서에서 탈출하느라 썼기 때문에 챙겨 놓으면 언젠가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었다.


마침 블랙홀 덕분에 괴한들로부터 탈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나저나 박사님, 이곳은 어디죠? 워낙 정신없이 박사님을 좇아 왔던 터라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요환은 속이 좀 괜찮아지자 자세를 고치고 왓슨에게 물었다.


한 시간 전.


괴한들에게 쫓기던 요환은 더 숨어봤자 승산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도바 광장과 시장 일대가 그리 크지 않을뿐더러 주말이 아닌 평일 오전은 사람이 많이 붐비지 않아 숨어서 도망가기도 어려웠다.


더구나 60대인 왓슨까지 있으니 그들의 눈을 피해 도망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 생각되었다.


그래서 그가 생각한 것이 일부로 괴한들에게 자신들을 보이고 막다른 골목까지 유인하는 것이었다.


그 후 블랙홀을 이용하여 공간이동을 해서 자신들을 막고 있는 건물 뒤로 도망칠 계획이었다.


그의 계획대로 그들은 막다른 골목까지 요환 일행을 쫓아왔고 요환은 먼저 왓슨 박사를 블랙홀 속에 집어넣었고 바로 자신도 블랙홀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가지고 있는 총의 방아쇠 위쪽에 화이트홀의 위치를 조정할 수 있는 작은 장치가 있었다.


요환은 미리 화이트홀을 생성할 곳의 위치를 파악한 후 엄지손가락으로 장치를 돌려 화이트홀 생성 위치를 조정하였다.


블랙홀을 이용한 시간여행은 그 원리가 복잡하고 까다로웠지만, 블랙홀을 이용한 공간이동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단지 블랙홀 안으로 들어가 그 반작용으로 생기는 화이트홀로 나오는 것이 전부였다.


만약 거리 계산을 잘못해서 화이트홀이 엉뚱한 곳으로 생성되면 낭패였다.


혹시나 자신 앞에 있는 건물 뒤에 바로 또 한 대의 건물이 있다면 그들은 그 건물 안으로 나오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자칫 위험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건물 뒤에 바로 길이 있다는 왓슨의 말에 요환은 안심하고 자신의 계획을 실행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요환의 계산 실수라기보다 그가 이곳 지리에 너무 어둡다는 사실이었다.


건물 뒤에 바로 길은 있었지만, 건물에 바짝 붙어 성인 한 사람만이 넉넉히 지날 수 있을 정도 너비의 길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바로 큰 강이 있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요환은 대충 도로의 중간쯤에 도착할 수 있도록 화이트홀을 만들었던 것이었다.


그 결과 화이트홀을 나온 요환과 왓슨은 물에 빠졌고 물 공포증이 심했던 요환은 바로 정신을 잃었다.


수심이 그리 깊지는 않았지만, 갑작스레 강에 빠지게 되자 왓슨도 당황했다.


하지만 침착하게 허우적대는 요환을 끌고 물가로 나왔다.


그리고 지체할 새도 없이 요환을 깨워 일으켜 세운 후 어디론가 뛰었다.


그래서 요환은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분명 물에 빠진 것까지는 기억이 났지만, 그 이후에 자신이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린 요환은 이미 밖이 아니라 실내 안에 있었다.


주변은 굉장히 어두웠고 악취까지는 아니었지만 하수구에서 나는 특유의 쾌쾌한 냄새가 났다.


왓슨이 들고 있는 손전등 하나만이 앞쪽을 살짝 비추고 있었다.


그들이 있는 곳은 일종의 홀과 같은 곳이었고 말할 때마다 목소리가 울렸다.


본능적으로 요환은 자신이 지하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자신의 앞으로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지만,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지하통로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아, 자네에게 정식으로 소개하지. 이곳이야말로 인류의 큰 획을 그은 위대한 과학의 역사가 숨겨져 있는 곳. 바로 바벨의 후예가 만든 첫 바벨탑이라네.”


“바벨탑이요?”


“우리가 있었던 버뮤다의 바벨탑과는 다르지만, 사실은 우리 바벨의 후예가 처음 세간의 눈을 피해 숨어들었던 곳이지. 갈릴레이의 제자 비비아니. 그리고 또 그의 제자이자 바벨의 후예의 창시자인 부치니와 그의 추종자들이 만든 곳이라네. 사실은 로마시대 카타콤을 모티브로 했다고 생각하면 된다네. 일종의 지하세계라고나 할까?”


요환은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워낙 어두운 터라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 요환을 보고 왓슨이 요환에게 손전등 하나를 건네어 주었다.


손전등을 받은 요환은 손전등 불빛에 의지하여 자신의 주변부터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곳은 일 조이엘로 바로 밑에 있는 옛 하수도라네.”


“하수도요? 하수도 치고는 그렇게 냄새가 심하지 않은데요?”


“이미 부치니의 시대에도 사용하지 않은 오래된 하수도이지. 갈릴레이가 거의 갇혀 있다시피 했던 일 조이엘로와도 가깝고 그의 스승 역시도 갈릴레이의 생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집을 얻어 살았기 때문에 이곳을 자신들의 거처로 삼았던 모양이야.”


“하지만 갈릴레이 생가와 가까운 것이 오히려 눈에 더 잘 띄지 않았을까요? 갈릴레이는 거의 자택 감금 수준이지 않았나요?”


“물론 교황청의 감시가 심했겠지. 하지만 그보다 상징적인 의미가 강하지 않았을까? 그 갈릴레이가 있었던 곳의 밑이라는 의미가 말이야. 옛사람들은 그러한 의미 부여를 중요시했지. 아마 이곳을 들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거야.”


왓슨의 설명을 들으면서 요환은 주위를 이곳저곳 훑어보았다.


그들이 있는 홀은 바닥에서 천장까지의 높이가 약 5미터 정도 되었다.


요환은 손전등으로 천장을 비추어 보았다. 놀랍게도 천장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맙소사. 이런 곳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니...”


요환은 손전등 불빛에 의지하여 천장에 그려진 그림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연상시키듯 여러 사람들이 큰 식탁에 앉아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의 그림이었다.


왓슨도 손전등을 천장에 비추어 그림을 보았다.


“아마 초기 바벨의 후예 멤버들일 거야.”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린 천지창조에 비하면 조촐했지만 5미터나 되는 천장에 그림을 그릴 생각을 했다니 신기했다.


“아마도 저 가운데에 서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부치니일 걸세.”


왓슨이 손전등 불빛으로 그림 중 한 사람을 가리켰다.


요환은 왓슨의 손전등 불빛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식탁의 한가운데 홀로 서서 무엇인가 열변하고 있는 것 같은 인물이 눈에 보였다.


그 양옆으로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 듯했다.


이미 셀레나가 보여준 초상화로 접한 얼굴이라 익숙했다.


“비록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고 누가 그렸는지도 알 수 없는 그림이지만 그 옛날 바벨의 후예의 열정을 잘 나타내는 그림이지. 아마 첫 멤버들을 기념하기 위해서 그린 그림일 거야.”


요환은 천장의 그림을 유심히 관찰한 뒤, 자신들이 있는 홀 이곳저곳도 살펴보았다.


홀은 그리 넓지는 않았고 대학의 중소형 강의실만 했다.


요환이 흥미롭게 주위를 살펴보자 왓슨은 처음 그가 바벨의 후예에 찾아왔을 때처럼 장소를 소개하며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이곳은 아마 바벨의 후예 일원들이 모여서 토론을 나누던 장소였던 것 같네. 저 위의 그림이 그려진 배경이 바로 이곳이지.”


왓슨은 손전등으로 홀의 가운데를 가리키며 말했다.


손전등으로부터 쏘아진 불빛이 스포트라이트처럼 지면을 비추었다.


“여기 이곳에 저 커다란 식탁이 놓여있었을 것이고, 이곳에서 사람들은 식사를 나누며 서로의 연구에 대해서 즐겁게 이야기했을 거야.”


지면의 모습을 바로 천장에 그려놨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유쾌한 표정의 사람들을 보니, 바벨탑에서의 생활들이 떠올랐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물씬 들었다.


요환은 마치 박물관에 온 관람객처럼 주의 깊게 주변을 살폈다.


“박사님 저쪽은 어디로 통하는 곳이죠?”


홀의 양 끝에는 좁은 통로가 있었다.


성인 남자 한 명이 간신히 지날만한 너비에 높이는 키가 작은 사람이어도 머리를 숙여야 할 정도의 높이었다.


“양쪽에 있는 길은 둘 다 밖과 연결된 통로라네. 오른쪽 통로는 우리가 들어왔던 곳으로 강 하류에 있는 하수도와 연결된 통로이지. 그 당시에는 외부의 습격을 받았을 때 강으로 도망치려고 만들어 두었던 통로인 것 같다네.”


요환은 어렴풋이 자신이 어딘가를 기어서 들어왔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자네를 저 좁은 통로로 끌고 오느라 죽는 줄 알았다네.”


좁은 너비를 보자 왓슨이 자신을 질질 끌고 왔을 것이 상상되었다.


사뭇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요환은 반대편 길로 손전등을 비추었다.


손전등으로 어렴풋이 보이는 반대편 통로는 왠지 모르게 복잡해 보였다.


강과 연결된 통로와는 달리 너비도 넓었고 높이도 3미터 정도는 되어 보였다.


“반대편 통로는 어디로 이어지는 곳인가요?”


“저기가 바로 일 조이엘로와 바로 연결되는 곳이라네. 지금은 일 조이엘로가 관광지가 되었기 때문에 출구를 그 근처 하수도와 연결해 놨다네. 엄밀히 말하면 저쪽이 정식적인 통로와 같은 곳이지.”


요환은 손전등을 비추며 왼쪽 통로를 향해 걸어갔다.


“들어가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네. 저 길을 따라가다 보면 옛 선배들이 생활했던 곳들이 나오는데 길이 복잡한 미로로 되어있거든. 나도 가끔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지. 그래도 길의 끝까지 가면 출구가 나올 거야.”


요환은 손전등으로 통로의 안쪽만 조금 살핀 뒤 다시 왓슨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왓슨에게 말했다.


“박사님.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래, 그렇지. 그간 우리 할 이야기가 많지? 시간도 많으니 천천히 이야기하세나.”


뭔가 머뭇거리는 요환의 표정을 보자 왓슨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얼마 전에 셰이먼 교수가 죽었습니다.”


“뭐? 셰이먼 교수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것 같습니다.”


“맙소사! 살해당했다고? 어쩌다가 그런 불행이...”


“놀라지 마세요. 범인은 헤드 마스터들 중 한 명인 것 같아요. 그녀는 블랙홀에 갇혀 죽었거든요.”


“블랙홀에 갇혀 죽었다고? 그렇다면 화이트홀이 없는 블랙홀을 누군가 만들었단 말인가?”


“네. 그리고 그곳에 그녀를 가두었어요.”


“화이트홀이 없는 블랙홀이라. 확실히 그건 만들 수 있는 것은 자네와 함께 연구한 그 세 명밖에 없겠구먼.”


“네. 그래서 혹시 박사님도 위험하지 않으실까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게다가 꼭 박사님께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요환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머뭇거렸다. 차마 왓슨 박사에게 말을 꺼내는 것이 힘들었다.


그런 요환을 보고 왓슨은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뭐 길래 또 그렇게 어려워하나? 괜찮으니 어서 말해 보게나.”


“박사님. 캐서린의 죽음에 대해서 말해주세요.”


“캐서린?”


“네. 박사님. 먼저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제야 말하게 됩니다. 저는 그때 마지막 실험 이후 3년 후 미래로 왔습니다. 그래서 캐서린이 죽은 것도 얼마 전에 알았습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세요.”


요환의 이야기를 듣자 왓슨은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자네는 블랙홀에 들어간 이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군그래. 그렇게 홀연히 바벨의 후예를 떠난 자네가 아무렇지 않게 나를 대한 것도 이제 이해가 가는군. 내가 자세히 설명해 주겠네.”


“잠시 만요! 죄송한데, 그전에 먼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요.”


“그래, 뭐든 물어보게나.”


“혹시 캐서린이 박사님의 친 딸이 아닌가요?”


요환의 말을 듣자마자 왓슨은 당황한 표정으로 요환을 쳐다봤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멀뚱멀뚱 요환만 바라보고 있었다.


요환도 당황해하는 왓슨을 보자 마른침을 삼켰다.


왓슨의 표정을 보니 괜히 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 사이에 묘한 침묵이 지속되었다.


캐서린은 요환이 실제로 만나 본 여자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물론 할리우드에서 여배우들을 만났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빼어난 미모는 과학자로 지하에서 썩기에는 아까운 외모였다.


그에 반해 아버지인 왓슨의 외모는 평범했다.


오히려 못 생긴 편에 가까웠다.


어머니가 상당한 미인이지 않다면 바벨의 후예 기술력을 빌린 유전자 조작이 틀림없을 것이다.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지만, 생각해 보니 왓슨박사와 캐서린은 전혀 닮지 않았다.


“내 여동생에게 들었나?”


왓슨이 물었다. 심기가 불편한 어조였다.


“아뇨, 아놀드 박사님께 들었어요.”


“오! 아놀드. 그를 만났군 그래.”


아놀드를 만났다는 말에 그의 어조가 미묘하게 바뀌었다.


“네. 아놀드 박사님이 하워스로 가라고 알려주셨거든요. 박사님 여동생은 너무 우시는 바람에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동생이 울었단 이야기를 듣자, 왓슨은 만감이 교차했다.


“캐서린은 내 양녀가 맞네. 하지만 정말 내 자식처럼 키웠지.”


시간이 충분히 있다면 캐서린에 대해 왓슨과 깊게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바벨탑에 있을 때도 왓슨과 주로 연구에 관한 이야기를 했을 뿐, 가족과 다른 주제로는 대화를 해본 적이 전무했다.


왓슨이 일부로 숨겼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굳이 밝힐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이제 생각해 보면 왓슨과 캐서린은 외모적으로 닮은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었지만, 누가 봐도 부녀 사이 같았다.


“박사님, 그럼 캐서린에 죽음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어요?”


“우선 그에 앞서서 지난 3년 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해주겠네. 시간은 충분하니까.”


시간이 충분하지는 않다.


왓슨은 자신이 셀레나와 함께 온 사실을 모르고 있다.


더군다나 밖에는 자신을 잡으러 온 정체불명의 사내들까지 있다.


그들이 누구인지, 무슨 목적으로 자신들을 쫓았는지 몰랐다.


이곳에서 시간을 오래 지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셀레나가 왓슨을 UN으로 인계한다면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을 수도 있었다.


밖으로 나가면 더 이상 그를 만날 수 없을 수도 있었다.


최대한 왓슨에게 많은 정보를 얻어야만 했다.


“걱정 말게. 자네를 쫓던 그 사람들은 절대 이곳을 발견하지 못할 걸세. 설사 입구를 발견했더라도 수많은 갈림길 때문에 길을 모른다면 이곳까지 도착하려면 운이 좋아도 반나절은 걸릴 거야.”


불안해하는 요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왓슨이 말했다.


개미굴처럼 얽히고설킨 이 지하미로는 외부로부터 침입을 막기 위한 방어막의 역할을 했다.


외부인이 입구를 발견한다면 들어오는 것은 쉽지만, 나가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침입자가 길을 헤매는 동안, 옛 바벨의 후예 선조들은 그 사이 다른 통로를 통해 밖으로 도망갈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해두었다.


하지만 요환이 초조해하는 이유는 셀레나 때문이었다.


자신들을 쫓아온 정체불명의 사내들이 셀레나에게 해코지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먼저 캐서린의 죽음에 대해서 듣고 싶어요.”


왓슨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양녀라고 하지만 친자식처럼 키운 딸이다.


삼 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왓슨에게 있어서도 캐서린의 죽음은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일지도 몰랐다.


“그래. 자네가 그렇다면 먼저 캐서린이 어떻게 죽었는지 말해주겠네. 나도 그날을 절대 잊을 수가 없거든. 차라리 자네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나을지도 몰라.”


요환은 직감적으로 캐서린의 죽음이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바벨의 후예를 둘러싼 음모와 에리스. 이 진실 가운데 캐서린이 죽임을 당한 것이다.


“캐서린은...”


왓슨이 막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탕’


밀폐된 공간을 울리는 짧고 간결한 외마디 총성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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