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 (과거)

by 프렌치힐

일주일 만에 다시 연구실을 찾은 요환이었지만 마음이 편치 못했다.


마찬가지로 연구소의 분위기도 예전과 같지 않았다.


요환이 연구소 안으로 들어오자 왓슨 박사가 제일 먼저 그를 반겼다.


물론 실수로 인해서 사람이 죽고 시설이 파괴되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요환이 그로 인해 풀이 죽어 있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캐서린도 최대한 밝은 얼굴로 요환을 맞이했다.


요환이 실험실에 들어가자 함께 연구하던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았다.


왠지 모르게 자신을 피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 눈빛들을 보니 아직도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그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오늘 당장 연구를 재개할 수 있을지 자신이 도저히 없었다.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요환의 곁에 어느새 캐서린이 와 있었다.


요 며칠간 정성스럽게 요환을 간호해 주었던 그녀였다.


자연스레 심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그녀와 부쩍 가까워진 요환이었다.


이제는 그녀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


자신의 주위에서 흐르는 암묵적인 비난의 화살을 마치 그녀가 대신 막아주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들은 들어온 지 몇 주도 안 된 젊은 과학자가 염치없이 사고를 내고 뻔뻔스럽게 어떻게 또 이곳에 왔냐는 듯한 무언의 압박을 주고 있었다.


그런 것을 미리 걱정한 왓슨이 연구실로 들어와 말했다.


“모두 알고 있다시피 큰 사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큰일을 이루기 위한 일련의 과정임이 틀림없습니다. 그간 우리 바벨의 후예에서는 이와 같은 사고들이 종종 일어났고 그 책임자가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바벨의 후예를 떠났거나 처벌을 받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마치 대중 앞에서 연설이나 하듯 왓슨은 힘 있게 말했다.


“목숨을 잃고 소중한 가족과 친구를 잃은 우리 형제들에게 어떤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제 옆에 있는 이 젊고 유망한 과학자를 믿어 보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저와 뜻이 같다면 그를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힘든 사람은 이 친구가 아닐까 싶습니다.”


암묵적으로 요환의 실수를 덮어 두겠다는 말이었다.


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왓슨의 말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싸늘한 분위기가 지속되었고, 적막함이 오히려 숨 막히게 목을 졸라왔다.


“그렇다면 오늘부터 바로 연구를 재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은 반대입니다.”


누군가가 왓슨의 말이 끝나자마자 말했다.


모두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누가 감히 바벨의 후예를 이끄는 왓슨 박사에게 반대 의견을 낼 수 있을까?


왓슨 박사는 이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


감히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헤드 마스터뿐이었다.


핫산이 어느새 연구실에 들어와 한 자리 잡고 앉아 왓슨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지난 사고에 대해서 굉장히 유감입니다. 그의 잘못에 대해서 비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연구의 재개는 반대입니다.”


핫산이 특유의 인도식 억양으로 강하게 말했다.


“핫산, 이곳은 나의 연구소네. 자네가 와서 뭐라고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네만.”


왓슨의 다그침에도 핫산은 강한 어조로 말했다.


“박사님, 제가 몇 차례 액시온의 위험성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위험하다고 해서 실험을 그만두는 것은 바벨의 후예를 만든 위대한 과학자들에 대한 모욕이라네.”


“분명 얼마 있지 않아 또 사고가 일어날 것입니다. 박사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액시온을 잘못 다루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이 바벨탑 전체가 다 통째로 사라져 버릴지도 모릅니다. 소리도 없이 말이죠.”


핫산의 섬뜩한 말에 연구실 안에는 냉기가 돌았다.


액시온이란 물질에 관한 연구가 아직 한창 진행 중이었지만 핫산은 적어도 이 물질이 굉장히 무서운 물질이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요환이 하려고 하는 실험 역시 위험하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블랙홀만을 만드는 데 있어서 액시온을 사용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블랙홀과 함께 화이트홀을 생성하기 위해서는 ‘커 블랙홀’이라는 명칭의 회전하는 형태의 블랙홀이 필요하다.


이 회전력을 과연 불완전한 입자인 액시온이 감당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그가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물리화 시킨 액시온을 입자가속기 안에 넣어 회전시키는 순간 어김없이 액시온은 폭발하고 말았다.


그 폭발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소량의 입자만으로도 그 정도의 폭발력이라면 현재 그가 소지하고 있는 액시온 양만으로도 핵폭탄을 능가할 만한 폭발력을 지녔음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핫산이 연구를 반대하는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본질적으로 그는 요환을 질투하고 있었다.


자존심이 강하고 허영심이 강했던 그는 본래 누군가와 섞이기 어려운 성격의 소유자였다.


돈과 권위를 좋아했던 그는 언젠가 밖으로 나가 자신의 업적을 인정받고 싶었다.


이곳에 있어봤자 자기만족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바벨의 후예는 임시거처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곳에서도 그는 인정받기를 원했고 헤드 마스터가 되어서도 호시탐탐 바벨의 후예 안에서의 권력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있었다.


요환이 이곳에 온 뒤로부터 무엇인가 잘못되어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누군지도 모르는 젊은 과학자가 자기 스스로 들어와 연구를 하고 싶다 하기에 그저 허세뿐인 애송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확실히 요환은 실력이 있었다.


그런 그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왓슨이 그를 인정하는 것이 싫었고 바벨의 후예에서 그가 추앙받는 것이 싫었다.


아직 젊은 과학자이지만 언젠가 자신의 이인자 자리 또한 위협할 것만 같았다.


그러던 찰나 사고가 난 것이었다.


함께 실험에 참여했던 핫산은 속으로 뛸 듯이 기뻤다.


이것으로 요환을 쫓아낼 구실이 생겼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또 하나 이번 사고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이 있었다.


그는 이곳에 들어왔을 때부터 실험이나 새로운 지식에 대한 욕구 따위는 없었다.


애초부터 이 모든 것이 허울뿐인 망상이라 생각했다.


그는 때를 봐서 이곳을 나갈 계획을 짜고 있었다.


그간 연구했던 것들이 분명 큰 돈줄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액시온의 폭발력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그는 군사 무기로서 액시온이 매력적인 물질이라 생각되었다.


이번 사고는 그러한 핫산의 욕망에 부합되는 좋은 구실이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요환을 내쫓고 액시온의 실험을 몰래 자신의 연구실에서 진행할 계획이었다.


우선은 바벨의 후예를 떠난다.


그리고 엑시온을 군사 무기로 팔아 큰돈을 벌 생각이었다.


인명피해까지 났으니 왓슨도 요환을 더는 놔둘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그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실험을 그만두자고? 그렇다면 저 위의 녀석들 하고 도대체 다른 것이 뭔가? 한번 말해 보게나.”


왓슨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단순히 위험만을 이유로 댄다면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왓슨의 말처럼 지상의 여느 과학자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 실험을 중지시키기 위한 또 다른 이유가 필요했다.


핫산은 연구실에 모여 있는 왓슨의 과학자들을 두루 바라보며 말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서 이곳 바벨의 후예에 오시게 되었습니까? 잘 생각해 보십시오. 혹시 스스로 이곳에 찾아온 사람이 있습니까?”


핫산의 말처럼 모두 이곳에 오게 된 동기가 있었다.


대부분이 왓슨과 헤드마스터들의 직접적인 권유가 많았다.


“이곳에 있는 어떤 친구는 익명의 편지를 받아 이곳까지 왔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자기가 직접 카론을 찾아서 말이죠.”


핫산은 요환을 바라보며 비꼬듯 말했다.


“처음에는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저에게는 의문이 더해지더군요. 과연 그게 가능할까? 아마 저만 그런 생각을 가졌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는 여러 사람의 동조를 구하는 어투로 말했다.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그 말 한마디를 의심 없이 받아들인 이가 바로 왓슨 박사입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죠. 누가 자신을 초대했는지도 모른다. 다만 카론을 찾아라. 그래서 자기 스스로 카론이란 말만 듣고 그를 찾아서 여기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그는 의심 하나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핫산은 아예 이곳에서 승부를 볼 심산이었다.


“저는 끊임없이 액시온에 대해서 반대를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일이 이렇게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의 말에는 짙은 호소력이 있었다.


“바벨의 후예는 예로부터 지상의 과학자들로부터 많은 위협을 받아왔습니다. 수십 년 동안 평화가 이루어지고 있긴 했지만 요 몇 년 다시 저희는 협박을 받고 있습니다. 그 누가 우리의 정체를 알겠습니까? 그 누가 이 버뮤다 제도 외딴섬에 지하 60층이나 되는 바벨탑이 있을 것이라 상상이라도 하겠습니까? 여러분도 짐작하고 있겠지만 이 바벨의 후예 안에 배신자가 있습니다. 저는 그 배신자가 익명의 편지를 쓴 장본인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보기 좋게 사고를 가장하여 바벨탑을 무너뜨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핫산의 말이 끝나자마자 왓슨은 얼굴을 붉히며 화를 냈다.


“뭐라고?”


핫산의 말을 들어보면 왓슨이 요환을 불러내어 일부러 사고를 일으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핫산의 말에 왓슨도 더 이상 큰소리를 치지 못했다.


이미 자신의 연구실에 있는 사람들이 핫산의 말에 동요되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아니, 이미 그 자신이 말을 하고 있을 때부터 그들에게 신뢰를 잃고 있었다.


자칫 요환을 감싸주다가는 자신마저 바벨의 후예에서 쫓겨날 처지였다.


핫산은 속으로 자기 생각대로 일이 돌아간다는 생각에 뛸 듯이 기뻤다.


이참에 왓슨과 캐서린마저 함께 쫓아낼 심산이었다.


그게 되지 않는다면 적어도 바벨의 후예의 일인자가 될 생각이었다.


분위기 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연구실은 금세 술렁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그때 잠자코 서 있던 캐서린이 말했다.


“액시온 폭발이 과연 안 박사님 탓뿐일까요?”


캐서린은 핫산을 흘겨보았다.


“제가 알기론 액시온이란 물질은 물리화 과정에서 굉장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들었는데 핫산 박사님. 제 말이 맞나요?”


핫산은 갑작스러운 캐서린의 질문에 당황하여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을 못 하시는 것 보니 뭔가 걸리는 것이 있나 보네요? 박사님 말씀대로 액시온이 그렇게 위험한 물질이라면 물리화 과정에서 조금의 실수도 용납되어선 안 되겠죠? 만약 실수가 있다면 큰일이 일어나겠네요? 예를 들면 ‘폭발’ 같은 사고가 발생할지도 모르겠군요.”


그녀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물론 핫산이 일부로 액시온의 물리화를 잘못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폭발에 있어서 회전과정의 문제보다는 오히려 물리화를 잘못한 자신의 책임이 더 클 수도 있었다.


핫산은 아차 싶었지만 이미 엎어진 물이었다.


이미 연구실에 있는 핫산의 선동에 동요되었던 사람들이 그를 싸늘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자신의 상황이 급격히 불리해지자 그는 비굴하게 왓슨에게 고개를 숙였다.


“박사님 제가 성급했습니다. 달리 박사님에게 해코지하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나는 자네를 한 가족이라 생각하고 늘 믿어왔네. 하지만 자네가 날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니 의외군 그래. 하지만 어쩌겠나? 그리고 나보다는 저 친구에게 사과해야 하지 않을까?”


왓슨은 차가운 얼굴로 그를 보며 말했다.


핫산은 자존심이 상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이 가진 것마저 빼앗길 위기였다.


그는 요환에게 비굴한 표정을 지으며 용서를 구했다.


그런 핫산에게 요환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박사님께서 사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마 저라도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이런 상황에서 저를 의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절대 바벨의 후예의 배신자가 아니에요.”


의외로 요환이 순순히 자신을 용서해 주자 자신의 속내를 들키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요환은 연구실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이 모든 사고는 제 탓입니다. 제가 책임지고 이 실험에서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다네. 그리고 여기서 포기한다면 내가 아까 말한 대로 우리 선배들의 얼굴에 먹칠하는 꼴이 된다네.”


요환의 말을 듣자 왓슨이 놀라서 말했다.


요환의 반응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만큼 요환은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더 이상 위험을 감수하고 연구를 할 수는 없습니다. 이곳에 있는 분들도 이를 원하고 있는 것 같고요.”


요환이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의 표정을 보니 왓슨은 더는 말릴 수가 없었다.


핫산은 갑작스러운 요환의 반응에 속으로 좋아라 노래를 불렀다.


자신의 계획이 실패하기 직전까지 갔지만, 실험이 중단되면 반은 성공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로써 왓슨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자신의 이인자 자리는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캐서린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블랙홀의 베이스로 다른 물질을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떤가요? 암흑물질 군에 꼭 액시온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성의는 고맙지만 제가 다른 암흑물질 후보군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액시온만큼 블랙홀을 만들 만한 물질은 없어요.”


“암흑물질 말고 다른 물질은 어떤가요? 우주에 꼭 암흑물질만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입자들 중에서 저희가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암흑물질 후보군 밖에 없어요. 생각해 주셔서 고마워요. 캐서린.”


요환은 캐서린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요환. 혹시 ‘우주 끈’이라고 모르진 않겠죠?”


우주 끈이라는 말을 듣자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왓슨 박사도 놀랍다는 표정으로 캐서린을 쳐다보았다.


핫산도 놀란 표정으로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었다.


상상하지도 못한 이야기였다.


신선한 충격이 몰려왔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단어가 캐서린의 입에서 나왔다.


암울해 보였던 요환의 표정이 묘하게 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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