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미로 안을 미친 듯이 달렸다.
안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더욱 짙은 어둠이 덮쳐왔다.
손전등 하나로 간신히 자신의 발밑만 확인할 수 있을 뿐 가시거리는 얼마 되지 못했다.
아직도 피 냄새가 온몸에서 진동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피가 아니라는 사실이 불쾌함보다는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왓슨이 쓰러졌다.
요환은 깜짝 놀라 쓰러지는 그를 붙잡았다.
누군가가 등 뒤에서 왓슨을 쏜 것이었다.
그렇다면 분명 정면에 있던 자신이 보았을 테지만 총소리가 나기 전까지 전혀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총의 궤적으로 보았을 때 왓슨을 쏜 상대는 그들이 들어온 강 하류와 연결된 통로로 들어왔음이 틀림없었다.
요환은 직감적으로 상대가 굉장한 솜씨의 킬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어두운 지하 속에서 상대방의 손전등 불빛으로만 시야를 확보하여 꽤나 먼 거리서 목표를 맞추었다.
왓슨이 그의 품으로 쓰러졌을 때 피 비린내가 은은히 나기 시작했다.
그의 셔츠 앞섶이 피로 흥건해졌다. 왓슨은 요환의 품에 안겨 얕은 숨을 내쉬고 있었다.
요환은 당황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단지 왓슨을 품에 안고 있었다.
왓슨이 힘겹게 말을 이었다.
“도... 도망.. 가”
그는 어렵사리 도망가라는 단어를 말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캐... 캐서린은...”
왓슨은 요환의 팔뚝을 힘겹게 잡으며 헐떡였다.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끝내 뒷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의 옷소매를 부여잡은 채 그는 두 눈을 부릅뜨고 숨을 거두었다.
‘터벅터벅’
거친 발자국 소리가 홀 전체에 울려 퍼졌다.
요환은 왓슨의 눈도 감겨줄 새 없이 정신이 바짝 들었다.
본능적으로 그는 차갑게 식어가는 왓슨을 바닥에 내려두고 일 조이엘로와 연결된 통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뒤에서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다는 사실에 그는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
또 한 번 총소리가 들린다면 그땐 자신이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머릿속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라 실타래가 엉킨 것처럼 복잡했지만 본능적으로 발은 움직이고 있었다.
다행히도 교감신경이 제 역할을 해주는 모양이었다.
그때 다시 한번 총성이 울렸다. 한 번이 아닌 여러 번.
‘탕탕탕’
몇 발이나 쐈는지 모른다.
총소리를 듣자 요환은 이제 자신이 죽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죽음.
짧은 순간이었지만 죽음의 두려움이 그를 엄습했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도 고통이 있을까?
살아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죽음의 순간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서야 그것을 자신만이 체험할 수 있는 것.
요환은 그때가 자신에게 다가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총소리는 났지만, 자신이 몸에는 아무 고통이 없었다.
곧 고통이 스며들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무 고통도 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총에 맞지 않았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요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 달렸다.
숨을 헐떡이면서도 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큰길을 따라 계속 달렸지만, 통로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손전등으로 바로 눈앞의 시야만이 들어왔지만 이미 시각은 그의 제어에서 벗어난 지 오래였다.
무의식적으로 다리 근육이 움직였다.
그렇게 한참을 뛰던 요환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아무도 안 따라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전등을 끄고 통로의 벽 옆에 바짝 붙어 주저앉았다.
그리고 귀를 기울였다.
분명 멀리 서라도 누군가 걸어온다면 소리가 들릴 터였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제야 아무도 자신을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자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잠시였지만 쓰러지는 왓슨을 안을 때 우연히 손전등 불빛이 왓슨을 쏜 사람을 비추었다.
얼굴을 전부 보지는 못했지만, 얼굴 아랫부분은 어렴풋이 본 기억이 났다.
‘콧수염이 났고 턱수염이 덥수룩하게 나서 구레나룻과 이어져 있었어.’
요환은 조용히 그의 인상을 떠올리며 기억을 재조합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는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정장을 입고 있지 않았어.’
요환은 자신을 쫓던 사람들이 4명밖에 없다고 생각했었고 그들이 모두 정장을 입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왓슨을 쏜 사람은 정장 차림이 아니었다.
평범한 평상복차림의 체크무늬 남방을 입고 있었다.
‘왜 4명이라고 생각했을까?’
명백한 자신의 실수였다.
쫓아오는 사람들을 완전히 따돌렸다고 생각한 것이 그의 실수였다.
또 다른 이가 어디선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멀리서 숨어서 도주하는 그들을 지켜보다가 강에 빠진 것을 목격한 후 조용히 자신들을 따라오는 한 남성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그는 요환과 왓슨이 강 하류의 하수도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하고 조용히 뒤를 따른다.
인기척과 발걸음 소리도 완벽히 숨긴 그는 안심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요환과 왓슨을 보고 총을 겨눈다.
그리고 정확하게 왓슨의 급소를 노려 그를 살해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왜 나를 쫓아오지 않았을까?’
애초부터 왓슨이 표적이었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요환 역시 쉽게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완벽히 등을 내준 채 도망가는 그를 맞추지 못했다는 것이 이상했다.
하지만 그런 것에 의문을 가질 새도 없었다.
놈은 아무 인기척 없이 요환과 왓슨의 뒤를 밟았다.
비록 지금 발걸음 소리 하나 들리지 않지만, 조용히 먹잇감을 놓친 것에 분하여 자신의 뒤를 밟고 있을지도 몰랐다.
지금 저 멀리서 자신의 이마에 총구를 겨누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둠 속에서 다시 일어났다.
자신이 살아야겠다는 집념 하나로 손전등 하나에 의지하여 어두운 미로를 헤쳐 나갔다.
한참을 달리자 천장으로부터 미세하게 들어오는 빛이 보였다.
직감적으로 요환은 그곳이 출구라는 것을 깨달았다.
빛을 향해 어둠 속을 달리는 일은 수없이 블랙홀 안에서 통해 경험했다.
그는 왓슨 박사를 죽인 괴한이 혹시나 자신을 쫓아오는 것은 아닌지 손전등을 비추어 가며 다시 한번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도 주위에는 요환 혼자뿐인 듯했다.
이곳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시간이었지만 마치 몇 시간은 그곳에 갇혀 있었던 느낌이었다.
천장으로 올라갈 수 있게 만든 사다리를 잡고 요환은 마음이 안정되었는지 조심스럽게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수록 더욱더 밝게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온 요환은 그곳이 어느 가정집의 서재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 집이 왓슨 박사의 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집을 더 살펴보고 싶었지만 홀로 남겨진 셀레나가 생각나서 급하게 몸을 옮겼다.
집 밖으로 나가자 바로 앞에 ‘일 조이엘로’라고 쓰인 갈릴레이의 생가가 보였다.
‘셀레나는 무사할까?’
처음에는 셀레나를 쫓던 사내들이 목표를 자신으로 변경한 것을 보아 셀레나는 안전할 것이라 생각되었다.
또 어느 정도 그들을 따돌렸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밑에 있었던 그 암살자가 어디에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셀레나의 신변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요환은 셀레나와 헤어지기 전에 그녀가 파도바 대학에서 만나자고 한 것이 생각나서 그곳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요환을 불렀다.
“박사님! 무사했군요?”
다름 아닌 셀레나가 일 조이엘로 앞에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요환은 셀레나의 목소리를 듣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요환이 가까이 가자 셀레나가 소스라쳐 놀라며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았다.
“박사님? 괜찮아요?”
셀레나는 요환의 셔츠에 묻은 붉은 피를 보며 말했다.
“네. 저는 괜찮아요. 보다시피 다친 곳도 없고요. 그나저나 셀레나, 왜 파도바 대학에 있지 않고 여기에 있었어요?”
“당신이 한참을 지나도 안 오니까요. 당신이 어떻게 된 줄 알았어요.”
셀레나가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생각해 보니 셀레나에게 연락도 없이 왓슨을 따라간 것은 자신의 잘못이었다.
미리 그녀에게 연락해서 도움을 요청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었다.
요환은 스스로 후회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요환은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했다.
셀레나는 왓슨 박사가 살해당했다는 이야기를 듣자 복잡하고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적으로 그녀의 얼굴에 분노의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아마 오랫동안 쫓아다녔던 용의자를 심문도 하지 못한 채 죽게 만든 것에 대한 자책과 그로부터 오는 분노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요환의 이야기를 다 들은 셀레나가 입을 열었다.
여전히 그녀의 얼굴은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꾸물대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분명 왓슨 박사를 죽인 사람과 저희를 쫓았던 사내들은 한 편일지도 몰라요. 그렇다면 지금도 우릴 찾고 있겠지요. 혹시 그 사람 얼굴 봤어요?”
“전부 다는 아니지만, 코 밑까지는 흐릿하게나마 봤어요.”
“체형이나 인상착의 등은요?”
“지금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생각해 보면 기억이 날 것 같기도 해요.”
“그럼 일단은 이곳을 떠나서 이탈리아 UN 본부로 갑시다. 그곳은 안전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거기서 왓슨 박사를 죽인 사람의 몽타주도 그려보고 사건을 재정리해 보도록 해요. 자, 서둘러야겠어요.”
셀레나의 말에 요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그런데 셀레나,”
갑자기 요환이 무슨 말이 하고 싶다는 듯 셀레나를 불렀다.
“왜요?”
“아... 아니에요.”
곰곰이 홀로 생각하던 요환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셀레나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요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놈들이 이곳 어딘가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니 차를 탈 때까지 주위를 잘 살피면서 가야 해요.”
요환은 셀레나의 손에 이끌려 달리면서도 홀로 생각에 빠졌다.
‘분명 아까 그 사람은 일부로 날 맞추지 않았어. 왜 그랬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요환과 셀레나는 몸을 숙이고 파도바 시장 일대를 도망가듯 뛰어다녔다.
다행히도 그들이 렌트한 차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도 그들을 쫓지 않았다.
‘애초부터 내가 목적이 아니라 박사님이 목적이었던 것인가?’
풀리지 않는 의문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박사님, 일단은 셔츠부터 갈아입어요. 그렇게 다니면 사람들이 다 당신을 이상하게 생각할 거예요.”
셀레나는 피로 붉게 물든 요환의 셔츠를 보며 말했다.
“셀레나. 왓슨 박사님이 돌아가셨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은 본부에 가서 신변 보호를 요청하는 것이 급선무 같네요. 그리고 몽타주를 그려서 범인이 누구인지 왜 왓슨 박사를 죽였는지 알아내야겠죠. 그다음 나머지 세 명의 헤드 마스터 박사들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요환은 셀레나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미래를 온 후 벌써 두 명의 사람이 죽었다.
그는 아직도 왓슨이 죽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눈앞에서 왓슨은 총에 맞아 죽었다.
요환은 아직 진정이 되지 않았는지 손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꼬인 것일까?’
요환은 자신이 처한 현실에 설움이 복받쳐 올라왔다.
그리고 이 불행의 시작이 어디서부터 인지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해 보았다.
어느덧 해는 저물어 가고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하늘은 붉게 물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