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도와줘. 나를 두고 떠나지 마.”
소년은 애타게 손을 뻗으며 울부짖고 있다.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숨이 막힌다.
누군가 목을 조르는 것 같다.
하지만 목을 옥죄고 있는 손은 보이지 않는다.
‘왜?’
숨이 쉬어지지 않은 괴로움보다 앞에 있는 소년의 모습이 가슴을 억누른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소년.
시야가 뿌옇다.
‘왜?’
더욱 숨이 차오른다.
더는 버틸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소년을 버릴 수는 없다.
그는 아직도 나에게 도와 달라고 손을 뻗고 있다.
하지만 사실 그는 미동조차 없다.
그의 얼굴을 볼 수 없다.
아니, 실루엣만 보일 뿐 사실 그의 눈, 코, 입,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보이는 것이 없다.
답답함은 비단 숨이 막히는 것뿐이 아니었다.
소년의 얼굴이 보고 싶다.
왜 소년은 나를 향해서 팔을 뻗고 있을까?
소년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 어둠이 엄습하기 시작한다.
어둠은 단번에 소년을 집어삼킨다.
‘안 돼!’
최대한 손을 뻗어 소년을 잡으려 했지만 이미 어둠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그리고 이제 어둠은 자신을 집어삼키고 있다.
익숙하지 않은 어둠.
이 어둠은 모든 것을 파괴했다.
“안 돼!”
요환은 소리를 지르며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고 온몸이 땀범벅으로 젖어있었다.
“또 꿈꿨어요?”
침대 위에 엎드려서 자고 있던 캐서린이 놀란 듯 일어났다.
“네, 또 그 꿈이에요.”
캐서린은 옆에 두었던 손수건으로 요환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주었다.
“요환, 벌써 닷새째 똑같은 꿈을 꾸고 있어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모르겠어요. 잘 기억이 안 나요.”
요환은 손으로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손이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 소년이 누군지 기억이 전혀 안 나요?”
“네, 그리고 왜 숨이 막히는지도 전혀 모르겠어요. 무슨 물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어요.”
“왜 똑같은 꿈을 계속 꾸게 되는 것일까요? 짐작될 만한 것도 없나요?”
“전혀요.”
요환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이번 사고로 어릴 적 안 좋았던 기억이 생각나는 게 아닐까요? 요환, 혹시 옛날에 사고 같은 것 당한 적 있어요? 사람이 죽는 것을 직접 본 적이 있거나?
“아뇨. 제 기억에는 없어요.”
“그럼 혹시 지금 트라우마 같은 것이 있나요?”
“트라우마요?”
요환은 고개를 들어 캐서린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네, 일종의 심리적 충격 같은 거죠. 예를 들어 어릴 적 높은 곳에서 떨어진 사람은 고소공포증이 생기는 경우가 많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폐소 공포증이 있어요.”
“폐소 공포증이 있다고요?”
“저는 6살 이전의 기억이 없어요. 제 어머니 얼굴도 기억이 안 나고요. 아버지 말로는 큰 사고로 인해 어머니도 여의고 저도 죽을 뻔했대요. 아마 그때부터 폐소 공포증이 생긴 것 같아요. 사실 이곳의 엘리베이터가 밖이 훤히 보이는 투명 창인 이유도 바로 저 때문이에요. 밖이 보이면 제가 좁은 공간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조금은 덜 하거든요. 그럼에도 엘리베이터 타는 것은 너무 힘들어요.”
요환은 그제야 엘리베이터가 유리창으로 되어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는 단지 바벨탑의 상징과 같은 거대한 나무와 경치를 보기 위해 유리창을 만들어 두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것이 캐서린의 폐소공포증 때문이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히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없나 보네요. 저는 고소공포증은 없지만 그래도 유리창을 통해서 밖을 보면 아찔하거든요.”
“맞아요. 그건 그렇고 요환. 당신은 이런 트라우마가 없나요?”
캐서린은 요환의 대답을 재촉하듯 말했다.
“확실히 몇 개 있어요. 하지만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뭐예요? 궁금하네요.”
“저는 물을 무서워해요. 수영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물이 너무 무서워요.”
“물이 무섭다면 이곳에 올 때 힘들었겠네요. 바다를 건너왔으니까요?”
“아니요. 단지 바다를 보면 무서운 것은 아니고, 제가 직접 물에 들어가는 것이 무서워요.”
“그러면 샤워는 어떻게 하나요?”
캐서린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샤워 정도는 괜찮아요. 하지만 확실히 욕조에 물을 받아 놓고 안에 들어가 있으면 무서울 것 같군요.”
“신기하네요. 어릴 적에 물에 빠진 기억이 있나 보죠?”
“제 기억에는 없는 것 같은데,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렇군요. 혹시 꿈에서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것이 이와 관련된 것이지 않을까요? 물에 빠져서 죽을 뻔한 적이 있다든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일리는 있네요. 아주 어렸을 때 그랬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제 기억 속에는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기억은 없어요.”
“그리고 또 하나, 제가 생각해도 신기한 트라우마가 하나 더 있어요.”
“뭐예요. 요환?”
캐서린이 요환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제가 생각해도 이상한데 저는 자동차를 못 타요.”
“네? 자동차를 못 탄다고요?”
“사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일반적인 자동차는 못 타요.”
“일반적인 이라면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이죠?”
“말 그대로 보통 자동차는 못 탄다는 거예요.”
“그럼 당신이 탈 수 있는 특정한 자동차가 있나요? 예를 들면 포르쉐만 탄다든지.”
“아뇨, 자동차 브랜드의 문제가 아니에요.”
요환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럼 뭐죠?”
“저는 오픈카밖에 타지 못해요. 어떻게 보면 당신의 폐소 공포증과 비슷할 수도 있는데 자동차 안에 들어가면 답답하고 식은땀이 나요. 조금만 지나면 숨이 막혀 오죠.”
“신기하네요. 물에 대한 공포증은 많이 들어봤는데, 그런데 어떻게 오픈카는 탈 수 있을까요?”
“아마 위가 뚫려 있어서?”
“혹시 저랑 같은 폐소 공포증 아닐까요?”
“그건 아녜요. 밀폐된 공간에 있어도 아무 문제가 없거든요. 자동차 안에서만 그래요.”
“정말 이상하네요. 어렸을 때부터 자동차를 타지 못했나요?”
“아뇨. 그건 아니에요. 언제부터인가 타지 못했는데 그 원인을 잘 모르겠어요. 그것이 언제인지도 모르겠고요. 하지만 제가 기억나는 것은 한국에 있을 때까지는 자동차를 잘 타고 다녔던 것 같아요. 10살 때 미국으로 유학을 와서도 일반 자동차를 잘 탔던 것 같은데 아마 고등학교 때 이후로 자동차를 타지 못했던 것 같아요.”
“신기하네요. 혹시 전철이나 비행기도 그런가요?”
“아뇨. 자동차만 그래요. 심지어 버스도 탈 수 있는데 말이죠.”
“네? 버스는 탈 수 있다고요?”
“네. 버스는 아무 문제 없이 탈 수 있어요.”
캐서린이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요환 빨리 연구실로 복귀하길 빌게요. 당신이 없으니 연구실 분위기가 영 시원찮네요.”
“캐서린, 제가 어떻게 다시 돌아갈 수 있겠어요. 솔직히 자신이 없어요. 저 때문에 사람이 죽고 또 아직도 사경을 헤매는 사람이 있어요. 다시 연구를 할 수 있을 자신이 없네요.”
캐서린이 요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요환,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어요. 이번에는 사고였어요.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을 각오하고 있었잖아요. 그리고 아버지 역시 이번 사고를 크게 신경 쓰지 않으세요.”
요환의 두 눈에 다시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아직은 선뜻 용기가 나지 않네요. 그 사고 이후로 이상한 꿈도 매일 꾸고 있고요.”
“이해해요. 요환. 얼마나 힘들지. 하지만 당신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요환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위로 올라가 봐야겠어요.”
캐서린이 요환의 손을 침대에 내려놓고 일어서며 말했다.
“고마워요. 하루도 빠짐없이 저를 간호해 줘서. 내일부터는 오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보다시피 저는 건강하니까요.”
“요환, 그런 말 하지 마요. 아직 당신은 더 안정을 취해야 해요. 적어도 악몽을 꾸지 않을 때까지는 제가 계속 와서 간호해 줄게요.”
요환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가 직각이 되도록 고개를 숙였다.
캐서린은 요환을 보고 활짝 웃어 보이며 문 쪽으로 몸을 향했다.
“아! 캐서린 그리고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어요.”
“네?”
“대단한 것은 아니고, 조금 전에 캐서린이 어릴 적 이야기를 할 때 큰 사고가 있어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잖아요? 혹시 무슨 사고였나요?”
“아버지가 그 이야기를 하시는 걸 꺼려해요. 그래서 저도 자세히는 모르고요. 저는 밖에서의 기억이 없어요. 바벨탑에서의 기억만이 존재하죠.”
캐서린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갑자기 낯빛이 어두워졌고, 아름다운 에메랄드 빛 눈동자는 무섭게 변해있었다.
캐서린이 그렇게 무서운 눈빛을 보인 다는 것이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녀의 모습은 분노에 찬 모습이었다.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지만, 요환은 더 캐물을 수 없었다.
눈이 서서히 감기고 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