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현재)

by 프렌치힐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


고대 대제국을 이룩했던 도시 로마의 모습은 이미 현대 건축물 사이에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그나마 몇몇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옛 도시의 정취를 자아내고 있을 뿐.


서둘러 파도바를 떠나 도망치듯 로마에 도착한 요환 일행은 급히 체크인한 호텔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지만, 아직 몸에서 피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관자놀이를 짓누르는 익숙한 고통이 느껴졌다. 요환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쥐어 매고 그간 사건을 다시 정리해 보기 시작했다.


‘그들은 누구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이 카이퍼 벨트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특히 왓슨 박사를 쐈던 사내는 전문 훈련을 받은 킬러임이 틀림없었다.


울림이 큰 지하도 안에서 총을 겨눌 정도의 거리까지 아무 기척도 없이 다가온 실력으로 봐서는 보통 고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들의 목적은 요환이 아니라 왓슨 박사였을 것이다. 마지막에 쏜 탄환이 자신을 맞추지 못한 것도 이상했다.


‘그 사람도 당황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그 정도 실력의 킬러라면 반드시 요환을 맞췄을 것이다.


설사 실수를 했더라도 그를 따라와서 죽였으면 됐다.


마치 일부로 그를 살려준 듯한 묘한 느낌이 들었다.


복잡한 생각을 해서 그런지 편두통이 더욱 심해지기 시작했다.


또 애초부터 어떻게 요환과 셀레나가 왓슨을 찾기 위해 파도바까지 왔는지 알고 그들을 미행했는지가 궁금했다.


생각할수록 점점 미궁으로 빠져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한참을 머리를 쥐고 생각하고 있을 때 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박사님, 셀레나예요.”


이탈리아 유엔 지부에 다녀온다던 셀레나가 막 도착했다.


그녀의 손에는 종이 몇 장이 들려있었다.


“몸은 좀 어때요?”


셀레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요환을 보며 물었다.


“괜찮아요. 그런데 편두통이 가시질 않네요.”


셀레나는 들고 있던 종이를 잠시 테이블에 놔두고 요환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콧등이 서로 닿을 정도까지 다가왔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그녀를 본 적은 처음이었다.


은은한 향수향이 그의 후각을 자극했다.


생각보다 너무 가까이 다가와서 당황했는지 셀레나는 얼굴을 붉히며 한 발자국 뒤로 발을 뺐다.


그리고 요환의 목덜미에 자신의 손을 살며시 갖다 댔다.


갑작스러운 셀레나의 행동에 요환도 흠칫했지만, 가만히 서서 셀레나를 바라보았다.


“맥박이 많이 뛰어요. 안정을 취하는 것이 좋겠어요. 당분간 여기서 쉬었다 가요. 최대한 밖에는 나가지 말고, 밖에 나가고 싶으면 제가 경호원을 붙여 줄게요.”


“괜찮아요. 셀레나. 그것보다 벌써 두 사람이나 죽었어요. 셰이먼 박사와 왓슨 박사님 두 분은 모두 우리 프로젝트에 관여된 사람들이에요. 그들의 목적은 바벨의 후예의 괴멸이 아닐지도 몰라요.”


“무슨 말이죠? 요환?”


“왓슨 박사를 쏜 자가 저에게 총을 겨누었지만 맞추지 못했어요. 그런데 도망가는 저를 그냥 내버려 두었죠. 물론 제가 그의 얼굴을 못 봤을 것이라 생각해서 살려 두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딘가 이상해요.”


“확실히 그렇군요. 애초부터 당신이 목표가 아니라 왓슨 박사가 목표였다면요?”


요환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우선은 왓슨 박사가 목표였던 것은 맞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의 위치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를 미행한 것이고요. 제가 그를 만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죠. 그렇다면 설마...”


“짐작 가는 것이라도 있나요?”


“놈은 저를 미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네요.”


“미끼라뇨?”


“저를 이용해서 왓슨 박사를 죽이고, 그리고 그다음 또 제가 다른 헤드 마스터 과학자를 찾는 것을 미행하다가 기회를 봐서 죽이려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날 살려 두지 않았을까요?”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녔다.


“박사님,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우리가 왓슨 박사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요?”


“글쎄요. 그것도 의문이군요. 셀레나는 언제부터 그들의 미행을 눈치챘다고 했죠?”


“분명히 파도바 광장 부근이었던 것 같아요.”


“저희가 차를 타고 왔을 때는 미행이 없었었나요?”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요환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황상으로는 그들이 다음 헤드 마스터들을 노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섣불리 행동했다가는 또 뒤를 밟힐 것이 분명했다.


요환이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 셀레나가 탁자에 잠시 두었던 종이를 가져왔다.


그리고 손을 뻗어 요환이 볼 수 있게 먼저 한 장을 펼쳐 들었다.


“당신이 진술한 것을 바탕으로 몽타주를 만들어 왔어요. 어떤지 볼래요?”


셀레나가 보여준 종이에는 한 남성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남성은 40대 초반 즈음 되어 보였고 콧수염과 턱수염이 덥수룩하게 나서 귀밑의 구레나룻까지 전부 덮고 있었다.


“코 위로는 전혀 보지 못했는데도 그럴싸한 그림이 나왔네요.”


요환은 몽타주를 보고 감탄했다.


“이쪽 전문가들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특징 몇 가지를 가지고도 범인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된답니다. 혹시 다른 기억나는 것은 없나요?”


셀레나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사실 당황해서 그런지 잘 기억이 안 나요. 제가 본 것이 확실한 지도 잘 모르겠고요.”


셀레나는 다른 종이를 요환에게 보여주었다.


“이것은 어때요? 혹시나 본 적이 있는 사람인가요?”


종이에는 아까 사진과 비슷한 얼굴에 수염이 없는 인물이 그려져 있었다.


“아뇨, 전혀요. 기억 속에도 없는 얼굴이에요.”


“혹시나 해서 수염을 제거해서도 가져왔어요. 그리고 이것은 선글라스를 썼을 때, 저것은 머리가 길었을 때 모습이에요.”


셀레나는 주섬주섬 몇 장의 종이를 더 요환에게 보여주었다.


요환은 유심히 몽타주를 보았지만, 고개를 저었다.


“전혀 본 적이 없는 얼굴이에요.”


“코 위쪽까지 봤다면 더욱 확실했을 텐데 아쉽네요.”


셀레나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요환은 그때 더욱 적극적으로 손전등으로 범인의 얼굴을 비추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만약 그랬다면 자신이 역으로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죠?”


요환이 셀레나에게 물었다.


“조금 더 상황을 살피다가 나머지 박사들을 찾아 떠나야 하지 않을까요?”


“혹시 제가 말했던 지하통로에 관한 수사는 어떻게 됐죠?”


“별 수확이 없어요. 당신 말대로 그곳에 파도바의 옛 하수도와 통하는 커다란 지하통로가 있었고 안에는 여러 빈 공간들이 있었어요.”


“옛 바벨의 후예의 거점이었다는 설명을 왓슨 박사에게 들었어요.”


“그리고 왓슨 박사의 시체도 발견했어요. 등 뒤에서 정확하게 심장을 노렸더군요.”


요환은 다시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섬뜩해졌다.


“범인을 알만한 다른 단서는 발견되지 않았나요?”


“전혀요. 매우 깔끔한 암살이었어요. 당신 말대로 굉장히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인 것 같아요. 게다가 뒤처리까지 확실했죠.”


“뒤처리라면?”


“감식반 결과에 의하면 왓슨 박사의 심장을 관통한 탄알이 사라졌어요. 아마도 당신이 도망간 사이에 몸에 박혀 있는 탄을 빼서 간 것 같아요. 철저하게 자신의 존재를 숨기려는 것으로 봐서는 분명 전문 킬러인 것이 분명해요.”


요환 역시 동의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카이퍼 벨트가 고용한 킬러가 틀림없을 거예요. 놈들은 바벨의 후예 수뇌부들을 노리고 있는 것 같고요. 분명 헤드 마스터 중의 한 명일 겁니다. 그가 바로 왓슨 박사님이 말씀하신 ‘에리스’의 정체이고요.”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할 건가요? 혹시 왓슨 박사님이나 바벨의 후예에 원한을 살만한 과학자가 있었나요?”


요환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바벨의 후예에게 원한을 살만한 과학자라...’


순간 그의 뇌리를 스치는 인물이 있었다.


“있어요. 셀레나. 확실히 왓슨 박사를 죽이고 바벨의 후예를 배신할 만한 인물이 있어요.”


‘내가 왜 여태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지?’


요환은 자신의 무릎을 치며 말했다.


“핫산 박사예요. 인도인 과학자이죠.”


“그럼 우선 그를 찾는 것이 급선무이겠군요.”


“네. 확실히 핫산 이외에 나머지 두 명은 왓슨 박사나 바벨이 후예에 원한을 가질 만한 이유가 없어요.”


“일단은 저희 쪽에서 세 명 과학자들의 거처를 찾는 중이니 정보가 모이는 대로 바로 움직이도록 해요.”


요환은 더욱 마음이 급해졌다.


왓슨 박사가 죽은 상황에서 다른 헤드마스터 과학자들도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요환은 왓슨 박사가 죽기 직전 캐서린에 대해서 무엇인가 할 말이 있었다는 것 역시 마음에 걸렸다.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셀레나, 시간이 없어요. 분명 다른 박사님들이 위험에 처해 있을지도 몰라요. 우리가 먼저 움직여야 해요.”


그러자 셀레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요환 생각해 봐요. 만약 저들이 왓슨 박사의 거처를 알지 못했다면 당신을 이용해서 왓슨을 죽인 꼴이 된 거예요. 섣불리 행동했다가 우리가 또 그들의 위치까지 알려주는 꼴이 되지 않을까요?”


하지만 요환의 생각은 달랐다.


“왓슨과 달리 다른 과학자들은 찾기 쉬울 거예요. 분명 우리 쪽에서 그들의 위치를 파악했다면 그들 역시도 알아냈을 가능성이 크죠. 카이퍼 벨트는 우리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니까요. 빨리 핫산을 찾는 것이 급선무인 것 같아요.”


요환이 열을 내며 말했다.


그때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요환 잠시 전화 좀 받고 올게요.”


캐서린이 요환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발코니로 나가 전화를 받으러 나갔다.


잠시 후 캐서린은 상기된 표정으로 요환에게 돌아왔다.


요환은 분명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요환, 본부 측에서 연락이 왔는데 바이트만 박사의 거처를 알아냈대요.”


바이트만의 거처를 알아냈다는 말을 듣자 요환이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셀레나, 지금 바로 출발해야겠어요. 분명 박사님께서 위험에 해요.”


셀레나는 더 이상 요환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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