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다시 시작하였다.
첫 번째 마르틴 베라사테기에서는 나의 가능성을 보았고.
두 번째 마르틴 베라사테기에서는 나의 한계 혹은 나 스스로의 끝없는 무지함과
나쁜 태도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마르틴 베라사테기를 떠나면서 말리는 셰프에게 마지막에 드렸던.
“제가 어떤 부분들이 부족했는지 깨달았습니다.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배우고.
언젠가 또 기회가 된다면 이곳에 다시 와서 일하고 싶습니다.
라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로.
나는 요리에 의미를 찾지 못하고.
도망치듯이 사람도 만나지 못하고.
처음으로 내가 못 견디듯이 그만둔 게 부끄럽고.
처음 한국에 돌아왔을 때 그렇게 자랑스럽게 누군가를 만나 떠벌리고 다니던 나의 모습에 몇 배로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가지게 되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꺼리게 되었었다.
1년 전 금의환향한 것처럼 돌아와 사람들을 만나고, 어느 레스토랑에 나보다 한참 경력 많은 요리사 형들과 몇 번이나 말다툼을 벌이고도 떳떳하고, 뻣뻣하던 내가 정말 말 한마디 못하는 비참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친구의 가장 큰 조언은 sns를 끊어라. 아니면 잠깐만이라도 멈춰라였고.
나는 가게에서 일하는 것이 익숙해지는 1달간 사람들과의 연락을 끊었었다.
가게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서도 조금씩 평정을 찾기 시작했다.
무작정 싫다고 어머니와 매일 싸우던 일들도 조금씩 줄어들었고.
가게에서 일하면서 잠깐잠깐 시간이 남을 때는 책을 읽고, 노래를 들었다.
학자금 대출을 다 갚고.
조금, 조금씩 다시 외부 활동을 시작했고.
다시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가장 많이 만난 사람 혹은 그래도 가장 마음 편하게 갈 수 있었던 곳은 그때
이제는 김봉수 요리사 혹은 김봉수 셰프의 ‘안 씨 막걸리’와 ‘21세기 서울’이었다.
안 씨 막걸리와 21세기 서울은 나에게도 많은 사람들과의 큰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어머니 가게에서 꾸준히 일하면서도 시간이 나면 21세기 서울에 자주 들렀다.
어느 날 21세기 서울의 호주인 한 명이 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페이스북에서 21세기 서울 ‘셰프들의 밤’이라는 행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마침 가게가 쉬는 일요일이었고.
봉수형에게 가서 작은 일이라도 돕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흔쾌히 그러라고 하셨다.
그렇게 21세기 서울로 향했고. 그 후 몇 달간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나에 대해 많은 사실(지적)을 알려주고, 나에게 많은 영향을 준 조셉 리저우드 셰프를 만나게 되었다.
셰프들의 밤 행사는 이미 거의 준비가 되어 있었고.
나는 그저 재밌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들과 일하며 즐기기만 하면 되었다.
재미있게 즐겼고.
그날 찍힌 이 사진은 무언가 해방감을 가진 모습이라 느껴진다.
일을 마치고 헤어지려는 중 조셉이 나에게 자신의 팝업 계획을 말해주었고.
시간이 있다면 참여해 달라고 말했다.
나는 이런 즐거움이 좋았고.
무조건 하겠다고 답했다.
오랜만에 그런 좋은. 재밌는 요리를 하는 사람을 만나다니.
되게 신났었다.
하지만, 짧게 생각했던 부분은 나는 어머니의 가게에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일을 하여야 했고.
한 스튜디오에서 열렸던 조셉의 첫 번째 팝업에서 마지막날 참여한 나는.
계속 설거지를 했다.
설거지도 재밌었다.
신났다.
그날 팝업이 끝난 후 같이 팝업에 참여한 사람들과의 뒤풀이 중.
그 몇 주 후 계획된 조셉의 또 다른 팝업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나는 또 참여하고 싶다고 말하였다.
그렇게 다시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