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 준비도 바쁘고, 비용 준비도 바빴다 그리고 더 모이는 친구들
Hola Miramar.
Es Dong Young quien comió la última comida.
He pedido a la Embajada de España en Corea que confirme la cuestión de los visados.
Afortunadamente, no hay ningún problema con los documentos.
Así que necesitas dos cosas.
primero es cambiar fecha sobre documentos (de marzo a diciembre) y la confirmación de la pasantía en el restaurante de la oficina de inmigración en España.
Restaurante La pasantía en Miramar está disponible en la Embajada de España en Corea.
Por favor confirme.
¿Hay algún alojamiento para el personal si voy a estar haciendo la durante un año?
¿O debo conseguir una casa?
Entonces.
En corea embajaba de españa persona dicho me puedo un año.
Solo necesito cambiar fecha por marzo ~ diciembre.
Comprobar inmigración en españa.
Sobre un año visa sobre apprender en restaurante.
Voy a esperar para responder.
Un saludo.
안녕하세요 미라마르.
마지막 식사를 했던 동영입니다.
저는 한국에 있는 스페인 대사관에 비자 발급 문제에 대한 확인을 요청했습니다.
다행히 서류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필요한 두 가지의 서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서류 날짜를 변경(3월에서 12월로)하고, 스페인 이민국에서 인턴십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레스토랑 미라마르 인턴십은 한국에 있는 스페인 대사관에서 진행 가능합니다.
확인해 주세요.
1년 동안 일하게 되면 직원을 위한 숙박 시설이 있나요?
아니면 집을 사야 할까요?
그래서.
한국에서는 스페인 대사관에서 1년 동안 머물 수 있다고 하고요.
날짜만 3월~12월로 바꾸면 됩니다.
그리고 스페인의 이민국을 통해 확인 부탁드립니다.
레스토랑에서 배우려면 약 1년 비자가 필요해요.
저는 대답을 기다리겠습니다.
인사 보냅니다.
어쩌면 바로 갈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것은 2017년 5월
나는 미라마르에 2018년 3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 기억 속에서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후 마르틴 베라사테기처럼 바로 미라마르에서 일을
시작했다 기억하고 있었는데,
오늘 당시에 주고받은 메일과 머릿속 깊은 곳에서 올라온 기억은 다시 한번 사실을 정리해 주었고,
나는 반년 정도의 시간이 걸려 미라마르에 갈 수 있었다.
다행히 위에 메일을 보낸 지 몇 달 후 답을 받을 수 있었다.
"아무것도 보장해 줄 수는 없다."
"하지만 굳이 당신이 온다면 일할 수 있게 해 주겠다."
굳이 란 말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겐 어떻게 들릴까.?
와도 되고, 없어도 되는 그런 사람?
나는 당시에 양재동에 프랜치 레스토랑에 막내로 일을 하고 있었다.
이유는 나 스스로도 많이 느끼고, 다른 요리사 형들, 셰프님들이 지적한 '본 건 많은데, 기초가 없어!'
라는 부분을 절실하게 해결하고 싶어서 내 뺨을 때리고, 나를 발로 걷어찬
한 셰프님께서 소개해주신 레스토랑에 와서 일을 배우고 있었다.
당시 월급이나 모든 여러 가지가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지만.
그 당시엔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고, 어떤 과정이 있었든 이곳에서 배운 바게트 제조법이나 기본 샐러드의 조합, 소스 치는 방법은 오늘 지금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홀 서버가 없는 레스토랑이어서 요리사들끼리 서로 번갈아 가면서 홀 서빙을 몇 주씩 했는데.
홀 서버 시기에 방문하신 손님들이 다양하게 적어주신 내가 밝게 웃고,
친절히 대했다는 네이버 리뷰에 소소한 기쁨을 느꼈던걸 기억한다.
와인 따르는 법이나, 라벨이 보이는게 매너라는 것도 이때 배웠다.
이 시기에 대한 선명한 느낌에 대해 설명해 보면.
내 앞에 글의 모든 과정을 거쳐 새로운 희망과 자신감을 가진 사람이 되었지만,
경주에서 받은 폭력적 행동과 대우, 그러면서도 반박할 수 없는 기초 실력 부족으로
다시 추락하려던 자신감을, 어떻게든 서울에서 긍정적으로 이겨내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는 무너지지 않았다.
이시기 서울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많은 젊은 요리사들을 만나게 되었다.
다이닝에서 일하는 꼬미 셰프(막내), 일반 양식 레스토랑 데미 셰프(실질적 라인 요리하는 사람)
일식집 요리사, 요리에 취미를 가진 일반 친구들이 모였고.
나는 이 친구들과 새로운 작당 모의에 빠지게 되었다.
새로운 팝업, 큰 팝업, 가게 하나를 통째로 빌리자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음 이야기에서 내 인생에 가장 값진 경험이자, 내 인생 가치관을 바꾸게 된 팝업 이야기를 소개하려 한다.
그리고 다음 이야기를 마치며 , 나는 미라마르에 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