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 레스토랑 책임자가 얻은 경험과 책임져야 할 것에 관한 내용
2018년 산 세바스티안 팝업에 대한 정리
3월 18일 일요일 21세기 서울이란 그때도 안씨 막걸리 지금도 안씨 막걸리란 곳의
다이닝 레스토랑 버전의 공간이었다.
우리의 서비스 시간은 저녁 6시부터 01시
30명의 좌석에 당일 200명의 사람이 다녀갔다.
바르의 형태는
- Gastronomic bar + Order made bar
- 기본적으로 아뮤즈 핀쵸(한입 거리 음식 + 타파스 푸드)를 8~10가지 정도 디스플레이 하여 고객이
대기시간이 없이 먹을 수 있게 제공한다.
- 메인 요리는 4~5가지 정도를 제공하며 샐러드나 후식도 추가 오더로 분류
- 서빙 방식은 Free fix방식을 권장하며(아뮤즈 선택 몇 가지와 메인 메뉴 1오더)
아뮤즈 핀쵸와 메인 음식의 조리 시간을 생각하여 가이드라인을 제공했다.
셰프부터 모든 구성원들에게 팝업 메뉴 제안 시 동일하게 요구되었던 조건과 우리의 기획은
1. 스탠더드 레시피 : 개인의 메뉴를 누구라도 조리가 가능하도록 레시피를 작성
2. 영수증 : 회비 혹은 후불 형식으로 재료 및 기물 구매 시 날짜와 개수 또한 사용인까지 기재 후 정리
3. 기물 리스트 : 각자 가져올 수 있는 기물과 기물의 종류, 수량 및 디스플레이 용품 파악
4. 주류 리스트 : 이용하는 주류의 종류와 단위 및 구매, 판매 단가 기입
5. 아이디어 노트 : 상시로 인원들의 아이디어를 기록 및 매회 회의록 기재
6. 메뉴 판 : 고객에게 직접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야 하는 정보를 담은 형식
7. 원가 계산 및 식자재 : 음식의 대략적인 단가와 전체적으로 쓰는 식자재의 리스트 업
8. 고객 안내 문구 : 메뉴 판에 담을 수 없는 내용을 안내하는 형식으로 A4용지 정도에 심플하게 준비
앞으로 진행해야 하는 일정
- 메뉴 컨펌
- 장소 및 동선 선정
- 홍보 및 음식 테스트
- 주류 페어링 테스트(음식과 함께)
- 리허설(일주일 전부터 진행)
지금 34살의 내가 보았을 때 28살의 나는 어떻게 하루 팝업 레스토랑을 위해 저렇게 까지 할 수
있었을까 보기만 해도 피곤하고, 어려워 보인다.
위에 적은 기록 형식의 내용은 1번부터 6페이지의
팝업 개요, 메뉴 추천, 투표, 마지막 정리된 문서까지 수십 장의 문서중 2장만이 포함되어 있다.
내 팝업의 주제와 취지는 분명했다.
행사의 주제와 주체는 내가 정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동등한 권리를 가진 요리사로서
각 요리사는 자신의 메뉴를 기안할 수 있고, 그 기안된 요리는 최소한의 설명만을 붙인 채 블라인드
투표로 손님에게 제공할 메뉴를 정한다.
그리고 점수의 커트라인에 들지 못한 메뉴 중에 정말 자신이 꼭 하고 싶은 요리가 있다면
실제 테스트를 진행하여 구성원의 동의하에 메뉴에 넣도록 한다.
다들 정말 열심히 메뉴에 대해 준비하였고, 메뉴의 기획의 원을 사진으로 담아 올린다.
그렇게 투표를 통해 우리는 메뉴를 정하였고, 다음은 그 메뉴를 준비하고 팝업을 열 장소의 컨택이 있었다.
이 부분은 예상외로 너무 흔쾌히 해결되었다.
당시 메뉴 개편을 위해 잠시 영업을 쉬고 계셨던 21세기 서울의 대표님께서 장소를 편히 사용하라 해주셨고,
그렇게 우리의 팝업 주제와도 너무 일치하는 다이닝 레스토랑을 대절할 수 있었다.
그 후에는 팝업의 기획 디자인을 통해 고객들에게 홍보를 하고 싶었는데,
당시 멤버 중 디자인 지인의 도움을 받아 이렇게 만들 수 있었다.
그 후, 팝업의 디자인을 페이스북을 통해 홍보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받은 페이스북 메시지.
스페인의 최고 이름 높은 DAMM맥주를 전속 수입하는 한국의 수입사 대표님께서 우리 팝업의
스페인 맥주를 지원하고, 도움을 주고 싶다고 연락을 주셨다.
당시에는 한 두 곳 미슐랭 레스토랑에서나 판매하던 이네딧 담을 드래프트로 제공해 주셨다.
그렇지만 나는 당시에 여러 어른이나 다른 업계 대표님들을 경계(?)하던 때라서 처음에는 정중히 거절하고, 받지 않기로 하였다. 하지만 대표님께서 한 번만 만나 보자고 해주셔서
당시에 일하던 정육점 근처 카페에서 잠시 만나게 되었고, 진지하게 지금까지 준비한 팝업의 기안서나 메뉴, 진행 상황들을 보여드리고, 설명드리며 대충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최대한 전달드리기 위해 노력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조금 이해되지 않으실 먼저 제품을 지원해 주겠다고 했는데, 왜 갑자기 요리사가 팝업
진행 상황을 설명하지? 생각하실 수 있는데.
당시에 나는 팝업에 지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협업으로써 팝업에 참여해 주신다로 일을 진행하고 싶었고, 실제로 그렇게 하였다.
그리고 너무 놀랍게도 팝업을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예약이 풀 부킹이 되었고, 당일 예약하시려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든 자리 혹은 시간을 조정하게 되었다(이 부분에 양식 식사에 시간제한을 둔 다는 게 큰 실수라는 경험을 하게 되었고, 좋은 마음으로 와준 내 지인들에게 (아직도 가끔 생각나면 나 스스로에게 너무 화나는) 자리를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라고 부탁하게 되는 잘못을 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식사 제공 시간의 제한을 두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았다.)
단 하루의 팝업을 위해 3개월의 준비시간을 들였다.
매주 쉬는 날 하루 4~6명의 구성원들이 모여 아이디어 회의를 하였고,
1달 전부터는 각자 자신의 쉬는 식당, 술집, 레스토랑 어디든 식재료를 사들고 모여 요리를 만들고,
시식해 보았다.
3월 18일 일주일 전부터는 이태원 21세기 서울에 모여 본격적인 팝업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밤과 새벽을 새며 친구들하고 요리를 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실질적인 모든 요리와 동료 친구들의 요리를 잡아주던 병수가 다리를 크게 다치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그냥 이야기했다. "괜찮지.? 빨리 다음 거 하자"
나는 평소의 내가 목적 지향성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최근까지 받아들이지 않았던, 나는 개인 주의자이지 이기적이지 않다는 말에
"적당히 손해 보고 사는 사람이 있지, 평생 손해 보고 사는 사람도 있고."라는 어느 어른의 말을
최근에 들으며 깨달았다.
'내가 하고 싶은 걸 거의 다 내가 혼자 하던, 누구와 같이 하던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왔구나'라고
3월 18일 팝업이 다가오며 모든 친구들이 출석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바게트 빵의 반죽부터, 청어의 내장손질, 사용하는 모든 소스부터 육수까지 직접 뽑았다.
그게 당연한 거였고, 16000원짜리 스테이크는 2+ 한우 부챗살을 받아서 사용했다.
내가 그렇게 정했고, 통과시켰고, 홍보했다.
2~3일 준비하던 기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내가 친구에게 수제 바게트의 레시피를 주고, 반죽을 시켰는데
원래보다 작은 반죽기로 원 레시피의 반죽을 하려다 반죽이 계속 넘치게 되었다.
나에게 도움을 청한 내 진짜 친구에게 답답함을 그대로 표현했다.
사실은 내가 3배 치 레시피를 2배 치 레시피 정도로 수정해서 주면 되었을 일이었다.
오픈이 다가오며 눈에 보이는 게 없었나 싶다.
내가 해결하기만을 바라자, 친구가 다른 제빵사에게 연락해서 해결책을 찾는 모습을
말은 안 했지만, 답답해하던 내가 기억난다.
그리고 내가 반죽을 조금 덜어내고, 그대로 쳐서 바게트를 만들었다.
그렇게 어렵게 만든 정말 맛있는 바게트는
서비스 당일 막내 친구들에게 구워내는 걸 부탁했지만,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어
마무리 시간에 보니 오븐에 거의 들어가지도 못했었다.
놀러 온 다른 요리사에게 모두 선물 비슷하게 버렸다.
팝업의 서비스를 오픈하고는 단순했다.
들어오는 손님에게 인사하고, 자리를 안내하고 음식을 준비했다.
중간중간 다니며 확인하고, 다행히 다들 만족했다.
거창한 이 모든 설명은 7시간의 서비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잘 끝났다는 짧은 행복했던 시간이 지나간 후.
지금은 웃지만, 그때는 아주 끔찍했던 순간이 돌아왔다.
-250만 원
2000원~ 18000원의 메뉴와 전량 0원으로 지원받은 맥주를 100여 잔을 팔아 280? 400여 만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그간 모인 연습비, 식재료비, 팔지 못한 와인과 (남은 식재료는 포함도 못 시켰다) 그 외 친구들의 새벽 교통비
까지 -250여 만원이 확인되었고, 나를 믿고 자신의 긴 시간을 투자해 주었던 친구들의 실망감은 내가 느낀 고통 그 이상이었나 보다.
나에게 빠르게 해결할 것을 요구했고, 각서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당일 첫 손님으로 부모님이 오셨었다.
너무 행복해하셨고, 즐겁게 식사를 하셨다.
새벽 3시 집에 돌아온 아들은 잠든 부모님을 깨워 무릎 꿇고, 200만 원이 마이너스가 되었는데
울면서 돈이 없다고 말씀드렸다.
너무 많이 울면서 그걸 말씀드렸다.
그리고 부모님은 "와하하하" 웃으면서 어머니가 200만 원을 그 새벽 그 자리에서 이체해 주셨다.
다음날 모여 정산을 하며
누군가에겐 남은 술로, 식재료 대금은 최대한 빠르게, 고깃값을 치렀다.
최고의 컨셉의 맥주들을 전량 지원받으면서도 바르 컨셉에 빠져 수십만 원의 원재료 비용을 발생했던 한 병이나 팔렸었나 싶은 와인과.
컨셉에 맞는 수입 초이스 등급이 아닌 부득부득이 내가 일하는 정육점의 한우를 쓰겠다는 나의 고집등.
한번 수정했으면, 꺾었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순간을 나 스스로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약속했던 미슐랭 레스토랑에 떫은 표정의 동료들을 데려가 점심 식사를 시키고,
'각서'라는 단어에 충격을 받았던 나는 웃으며 인사하면서도 씁쓸한 추억을 남기고,
우리의 산 세바스티안 팝업은 마무리되었다.
이 경험을 제대로 정리하지도 못한 짧은 시간이 지나
3일 후
나의 다음 목적지인 스페인의 미슐랭 2 스타
MIRAMAR DE PACO PEREZ로 떠나는 비행기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