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n berasategui 3
나의 최고의 시간

- 착각과 실패 그리고 깨달음과 다시 돌아오는 것 -

by 노동영

비가 오는 3월에 산 세바스티안.

나는 다시 마르틴 베라사테기로 돌아왔다.

이미 그 해에 오픈 멤버들이 일하고 있었고.

그들보다 며칠 늦게 도착한 내가 주방에 들어갔을 때.

이미 주방엔 김도 나고, 음식 냄새도 나고, 또 누군가는 소리 지르고 있었다.

셰프님들, 작년에 보았던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작년과는 다르게 나에겐 어느 파트든 원하는 데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었고.

선망했던, 메인 파트에 들어갈 수 있었다.

메인 파트에서는 따뜻한 전체요리와 스테이크, 비둘기 요리등.

그 레스토랑의 가장 마지막 접시(디저트 전에)가 준비되는 곳이었다.

파트에는 남자들만이 있었고.

거칠고, 장난기 많은 친구들과 일하게 되었다.


참고로 그때 당시 셰프들과 동료들이 나를 부르는 별명은.

1. 심장도 없는 놈. Sin corazon

2. 기차, 멧돼지. Tope, Jabali

3. 완벽주의자

4. 한국 폭격기(corea bomba)라고. 마르틴이 직접 지어준 별명으로 = 무언가 아니거나 잘못되었으면 무조건 다시 하거나, 제 동료는 직접 따지거나 혼내고. 셰프들에게도 따져 물었다.)


두 번째 마르틴 베라사테기에서의 일의 시작은 아마 처음 마음가짐부터 달랐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았을 때.

나는 딱히 무언가를 잘해서 마르틴이 다시 불러준 것이 아니었다.

주위에서도 그러듯이. 아마 마르틴이 너에게서 어떤 가능성을 보았을 거야 라는 말을 생각한다.


그리고 남들보다 조금 더 이곳에 있었다는 것과. 조금 더 이곳의 일 스타일을 아는 것. 그리고 마르틴이 내 편이라는 은연중에 마음이.

나를 자만하게 만들었고, 내 동료들을 나보다 아래로 여기고 그 친구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내 방식대로, 내 의견대로 일을 진행하였다.

메인 파트에서는 수 셰프 한 명과 파트 셰프 그리고 6명 혹은 7명의 스타지가 있었고.

나가는 메뉴는 크게 4가지였다.

그중에서 내가 맡은 메뉴는 Huevo라는 계란 메뉴였고.

6명 중에 3명이 이 계란이라는 한 접시를 위해 일하게 되었다.

수 셰프는 마르틴과 직접적으로 일 하는 시간이 많았고.

파트 셰프는 자신의 일도 많으면서.

비둘기와 스테이크등 거의 모든 종류의 가니쉬와 소스를 3명의 다른 스타지와 준비하여야 했다.

나와 두 친구가 맡은 계란이라는 접시는 들어가는 재료와 소스까지 총 15가지의 준비가 필요했고.

다른 핫 메뉴에 들어가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들과 우리가 사용하는 기물들까지 관리가 필요했다.

메인 파트에서도 조금 옆에 떨어져 있는 하나의 계란 접시가 나가는 작은 다른 공간이었다.

15가지의 재료를 한 접시에 완성하는데 세 명이서 걸리는 시간은 14초에서 16초 안 이었고,

우리는 순서대로 정말 조심스럽지만 빠르게 모든 재료를 놓아야 했다.


처음 이주동안, 셰프에게 멱살을 잡힌 적이 있었다.

세 명이서 이걸 하겠다 이걸 하겠다. 서로 의견을 내면서 손이 꼬이고. 접시에 플레이팅은 제대로 되지 않고, 계속 다투었다.

다른 셰프들에게 애새끼들이라는 말도 들었다.

그렇지만 세명 다 음식이 잘 나가기를 원했고, 서로의 역할을 확실히 정한 후 우리는 제대로 된 접시를 완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친구들과의 감정의 골은 계속 남아 있었고, 후에 터졌다.

파트 셰프인 Sergi는 아주 젠틀하고, 멋있는 발렌시아 지방의 사람이었고.

거의 모든 일에 능숙하고, 남에게 잘 가르쳐주고 또 세심한 사람이었다.

이 셰프와 처음 다투기 시작한 것은.

서비스가 시작되어 처음 계란접시에서 일하게 된 후에.

위에 말한 데로 처음 이주동안의 적응기간 후 접시는 슬슬 잘 나가기 시작했다.

음식을 놓는 속도는 빨라지고, 정확해졌으며, 재료의 준비상태도 더 좋은 퀄리티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주동안 그리고 그 후에도.

간간히 동료들의 실수가 있을 때마다 난 직접적으로 그 친구에게 뭐가 잘 못 되었다고 이야기했고.

자주 레스토랑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sergi도 나에게 네가 잘못한 것이 아니고, 다른 친구들보다 더 책임감을 느껴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인걸 알지만

넌 그 친구들에게 직접적으로 지적하고, 나무라면 안 된다라는 말을 자주 해 주었다.


(그 전해에도 그 해에도. 마르틴 베라사테기의 몇몇 동료들과 많이 부딪혔고, 그 부분을 마르틴과 다른 셰프들도 항상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조금 더 뒤에 알 수 있었다.)

두 달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

일적으로는 정말 뜻깊은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스타지로써.

계란 접시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의 프랩을 책임지고.

다른 두 명의 동료들에게 그날그날 예약된 손님수에 따라 미리 지시하고, 그 후에 파트 셰프 Sergi과 왔을 때 오늘 이런 이런 준비를 해야 한다 보고만 해주면 되었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20그릇 이상의 접시가 한 번에 나가는 것은 쉽지 않은데.

마르틴 베라사테기의 특별한 날들은 정말 특별했다.

손님의 입장시간이 비슷했어서. 혹은 그날 50명의 단체 손님이 왔을 때.

전 파트의 60명 요리사가 각 재료를 잡고 새로 지시받은데로 움직이며 50 접시 각 접시에 따라 8가지 혹은 20가지의 재료를 한순간에 같이 완성해 손님에게 같은 시간에 그 접시가 나갈 수 있게 한다.

그런 일 중에서 아주 가끔이었지만.

페이스트리 파트에서도 일해 보았던 나를 페이스트리 파트에 해드 셰프가 우리 파트에 셰프에게 부탁해 내가 원래 담당했던 요리의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일했던 날이 있었다.


계란이라는 접시를 맡아서 하는 동안.

마르틴은 나에게 “한국인 최고, 잘한다라고 해 주었고.

우리 파트의 파트 셰프는 나에게 “ 나는 네가 나와 거의 같다고 생각이 든다(이 말을 들었을 때 정말 몸을 낮추어야 했었다.

동료들은 조금 의아하게 “동영. 너는 Chef the Egg야.?라는 질문을 많이 했다.

다른 곳을 잘 모르고, 그전에 어떻게 했었는지 굳이 묻지 않았지만.

셰프에게 보고를 하더라도.

스타지였던 내가 마르틴 베라사테기의 한 접시를 동료들과 함께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건 정말 특별했던 경험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4개월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계란에서 메인 가니쉬로 포지션이 바뀌었고.

계란 메뉴를 반쯤 맡고 있었다.

새로 추가된 일중엔 직접 숯으로 고기를 조리하기 때문에 숯을 관리하는 일이 있었고.

시간에 쫓겨 일을 하다가도 지하로 뛰어가 숯 박스를 들고 다시 올라가 불을 피우는 내 조리복은 항상 숯 검댕이였다.


아직도 확실하게는 모르겠다.

내가 도대체 왜 그랬는지.

처음에 마음은 분명히 조금 더 잘할 수 있는데.

조금 더 집중하면 잘 될 텐데 라는 마음이었는데.

5개월째에 접어들면서 매일 동료들과 싸웠다.

계란 접시를 놓았음에도 계속 계란 파트에 친구들에게 일의 방식을 알려주기만 하면 될 것을 괜히 이걸 이렇게 하냐라는 식의 표현을 썼고.

누군가 나와 다르게 일할 수도 있는데.

그 친구에게 일의 방식을 지적했고.

남에게 지적하지 말란 셰프에게 말대꾸하고 따져 물었다.

어느 순간 나는 주방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놈이 되어 있었다.

한순간이었다.

이미 레스토랑이 반년정도 운영되면서 그 전해에 일했던 친구 중에 남아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고.

같이 일을 하던 친구들도 레스토랑의 시스템상 계속 바뀌었다.

어떤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계속 부딪혔다.


처음엔 동료들과의 사이가 계속 나빠졌다.

파트 셰프가 나에게 동료들과 제발 싸우지 말라고 했다.

그 후에도 다툼은 계속되었고.

어느 날 저녁 서비스 마무리 중.

청소 문제로 또 다투던 중에.

해드 셰프들, 수 셰프들, 마르틴까지.

나에게 소리치며 말했다.

아 진짜 그만 적당히 좀 하라고.

그리고 마르틴조차 나에게 다가와.

한국인, 한 번만 더 싸우면 너 킥 아웃이다. 하고 말했다.

그때까지 못 멈추던 어떤 것이.

그날 딱! 하고 멈추었다.

그때서야 멈추었다.

그리고 멍하게 며칠 동안 일하다가 계란 조리에 관해서 오븐 안 잔열 온도를 확인하지 못하는

큰 실수를 하였고.

크게 혼나고, 메인 파트를 쫓겨나 다시 페이스트리 파트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 쫓겨나던 날. 오후에 메인 파트에 모든 후드 청소를 명 받았고.

10명이서 달라붙어서 하던 일을 다른 동료들이 잠시 브레이크 타임을 즐기러 나간 시간 동안 닦은 후에 직원 샤워실에서 찬 물에 샤워하고 다시 주방으로 올라왔다.

레스토랑을 그만두어야 할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떠나면. 갈 곳이 없었다.

그냥 어떻게든 내려진 부분에서 해야 했다.

그렇게 남에게 다시는 지적하지 않는다는 맹세 하에 다시 페이스트리 파트에서 일을 시작했다.

원래 했던, 중요한 일을 맡지 못하고.

여러 가지 잡일들을 하였다.

그 작년에 해에도 페이스트리 파트의 파스를 맡아서 대부분의 플레이팅을 할 수 있었지만.

파트를 바꾼 후에 내 일들은 지하 주방에서 초콜릿을 만들거나 여러 가지 잡일들이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거의 말없이 일을 하였고.

다시 윗 주방에 올라와 caviar이라는 접시를 배우게 되었다.

항상 좋던 pablo(페이스트리 파트 셰프)에게도 남들과 싸우지 말라는 첫 말을 듣고 시작하는 첫날은 정말

씁쓸했다.

그리고 두 달간.

정말 조용히 일을 했던 것 같다.

캐비어는 전체 서비스 중에 두 번째 접시라서 다른 사람들보다 우선적으로 일이 마쳤는데.

재료들을 정리하고, 남는 시간에는 다른 동료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움직이는지 볼 수 있었다.

조리과 학생들도 있고, 여러 다른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일 한 사람들도 있고, 이미 다른 레스토랑에서 셰프급으로 일하던 사람들도 있었다.

실력은 천차만별이다. 요리에 대한 열정이나 마음가짐도 다 다르고. 일하는 스타일도 다 다르다.


매일 그 모습을 보다 마침내 깨달았다.


우리가 이렇게 다양하게 일을 하고 있어도.

항상 손님이 식사하는 접시에 담긴 음식은 모양도 맛도 일정했었다고.

그리고 마르틴을 찾아가 내가 어떤 것을 잘못했는지 알았다고 말했고.

다른 곳을 더 보고 오고 싶다고.

여기를 다음 달로 마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여러 가지를 깨달은 후에 내 태도는 변화했다.

일할 때 농담하는 것을 쓸데없다 느끼고 무시했었는데.

나도 농담에는 농담으로 대꾸하는 것에 익숙해졌고.

어떤 문제가 있을 때도 우선 참고. 셰프에게 알린 후에 셰프가 직접 그 동료에게 지적할 수 있게 하였다.


마지막으로 그냥 재밌게 일했다.


말씀드린 한 달 동안 마르틴은 세 번 나에게 다시 생각해 보라 말해주었다.

처음 말씀드렸을 때 이미 마르틴과의 관계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후였다.(마르틴이 나에게 대하는 장난, 웃음, 윙크, 때리고 도망가기, 안경 가리기, 갑자기 뒤에서 다가와서 얼굴 잡으면서 뭐라 뭐라 말하다가 가기 등등)

처음 떠나겠다 말씀드렸을 때 마르틴은. 무슨 개 같은 소리 하냐면서.

알아서 하라고, 꺼지라고 하고 이주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두 번째는.

나에게 다가와서 했던 말은 무슨 사정이 있냐고, 꼭 돌아가야 하냐라는 말과 함께 이곳에 있는 것도 생각해 봐라였다.


마지막으로 해주었던 말은.

한국에 돌아가도 좋고. 푹 쉰 후에 원한다면 내년에 다시 와도 좋다는 말이었다.

말을 들을수록 더 죄송하고, 미안하기만 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겨우 알았기 때문에 그만두는 것이었는데.

이렇게까지 말해주니까 더욱더 죄송했다.


지하주방에서 일하다 다시 올라가던 날 나에게 선을 긋던 Pablo도

"하.. 레온 이제 너에게 오븐을 맡기려고 했는데(페이스트리 주방에 메인 역할)

도대체 네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 아쉬움을 표했다.


마지막 날이 되었고.

가장 깔끔하게 일하고, 웃으며 다가간 나에게 마르틴은.

"몇 년 후에 더 성장해서 돌아와라 그때에 또 같이 일하자"

말하였다.


지금의 나는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 다시 생각해 본다.

농장에서 일하며 좋은 배움과 경험이 있었지만.

두 번째 스페인에 1년을 일하러 가는데 돈이 100만 원 밖에 없었던 것.

숙소와 근무하는 날에 식사는 제공되었지만.

스타지는 월급이 없었고.

한 달에 15만 원 정도로 버텼는데.

마지막 3개월간 돈이 없어서 레스토랑에서 서비스하고 남은 음식들을 가져갈 수 있을 때 받아왔고,

어떤 날은 남은 빵을 가져와서 씹히지도 않는 빵을 우유에 불려 먹다가 쓰레기통에 버려버린 일도 있었다.


첫 번째 스페인에 갈 때 부모님께 "제 돈으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볼게요."라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부모님께 돈을 보내달라 매일 부탁드리고 있었던 나의 모습에 괴로웠고.

그때는 극복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의 첫 스페인 이야기가 끝이 났다.


몇 년 후 마르틴에 간다는 어느 요리 대학교 학생이 나를 찾아온 적이 있는데,

나의 이야기를 어딘가에서 들었고, 궁금한 점들이 있어서 찾아왔다고 하였다.

그때 마르틴 베라사테기에서 한국 대학교와 산학 협약을 맺어 요리 실습생들을 받고, 가르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마치 내가 장명순 셰프님을 찾아갔던 그날이 떠올랐다.


신기하고, 조금은 뿌듯했다.




FB_IMG_1738018421462.jpg 페이스트리 파트의 동료들
FB_IMG_1738018441672.jpg 다투고, 또 웃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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