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없던 내가 스페인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이유.
Will. 2018. 12. 07 기록
2015년 스페인 산 세바스티안에 도착한 첫날.
한 호스텔에서 묶게 되었다.
호스텔 리셉션 친구가 그날 저녁 5유로에 치킨 빠에야에 샹그리아까지 준비해 준다고 하였고.
당연히 예스라 말했다.
짐을 놔두고, 잠시 쉬다 밖으로 나가보니.
한 레게 머리를 한 아르헨티나 남자가 나시에 앞치마를 하고.
음악을 크게 틀고 요리하고 있었다.
호스텔에 다른 숙박객들도 이미 주방으로 모여 시끌벅적했고.
그날 요리하는 친구가 직접 만든 샹그리아 한 병과 나초 큰 봉지. 감자칩 큰 봉지 하나씩이 열려 있었다.
나를 발견한 아르헨티나 친구는 ‘어~~ 아직 조금 걸리니까 이거 먹고 있어.’ 말해주었다.
뻘쭘히 자리에 앉자마자.
처음 보는 외국인들이 먼저 자기는 어디에서 온 누구야 하며 인사를 해주었다.
되게 어리바리하게 뻘쭘하게 인사를 받고. 과자를 하나씩 집어먹던 중.
“자~~~~~~~ 드세요.~~~” 하며 큼지막한 냄비에 차려진 치킨 빠에야.
맛있었다. 진짜 맛있었다.
스페인 도착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뭘 해야 하는지도 몰라서.
바르셀로나에서 첫 일주일 동안 아시안 마켓에서 라면하고 김치밥만 사 먹었다.
밖에 나가서도 ‘메뉴 델 디아’와 ‘레스토랑 메뉴’는 그때까지 나에겐 외국 여행 소개 책에서나 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겨우 찾아갔던 곳도 아시안 뷔페. 중국인 음식점이었다.
그렇게 산 세바스티안에 겨우 도착해서 영어도 잘 못하고, 스페인어는 하나도 못하는데 짧은 영어로 스페인 경찰관에게 지도를 보여주며 겨우 찾아 들어간 호스텔 저녁에 따뜻한 노란 치킨 빠에야는.
아직 그 음식. 그 분위기가 기억에 남아 선명하다.
저녁 식사 도중 가죽 재킷을 입고 말총머리를 한 키 큰 금발 남자 한 명이 “에~~~~~~~~~~~이~~”하며 들어왔다.
그곳 호스텔 호스트와 요리해 준 아르헨티나 친구가 하이파이브를 하고 뭐라 뭐라 이야기를 하며 있는데. ‘그 키 큰 금발 프랑스인이 스페인에서 유일하게 진짜 우정을 나누게 된 Will이란 친구였다.’
그날 저녁 갑자기 등장한 프랑스인 친구는 테이블에 앉아 있는 나와 사람들을 데리고 산 세바스티안의 이곳저곳에 있는 싸고 맛있는 핀초 바들을 소개해주었다.
사실 내 윌에 대한 첫인상은 ‘금발 양아치’였다.
(가죽 재킷. 긴 말총머리. 부분 부분 수염. 유럽인(?)
반년동안 윌과 같이 지내며 그게 정말 잘못된 선입견이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정말 착하고 좋은 친구였다.
어학원의 숙소에 들어가기 전 현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1주일간 호스텔에 머물며, 아무래도(위험해) 보이는 윌과 그 패거리 사람들이 매일 저녁 다르게 준비하는 ‘바에 간다던가. 해변가 모래사장에 간다던가.
해안 절벽 코스를 따라 하이킹을 하는 프로그램을 따라다니며.
어찌어찌 많이 친해지게 되었다.
며칠 후 주말 숙소비 때문에 더 저렴한 호스텔을 찾았는데.
윌이 자신이 운영하는 숙소가 있다면서 소개해주었다.
처음 묵었던 숙소가 시내 중심가에 있었다면.
값이 더 저렴했던. 그 숙소는 Egia라는 산 세바스티안에서도 이방인과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었다.
한 무슬림 가족 분들이 호스트였고.
이틀을 보냈다.
잠은 하루에 15유로 쓰는 걸 덜덜 떨던 나는.
그곳에서 묵은 둘째 날 예약했던 마르틴 베라사테기에 다녀왔다.
놀랍기만 했던 250유로의 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와 그날 처음 만난 홍콩 친구 두 명과 친해져 다음날 요리를 해주겠다는 말에 나를 따라나선 그 친구들을 데리고. 일요일 모두 문 닫은 산 세바스티안의 도시를 3시간을 돌아다니다.
한 아랍인 상점에서 (흉기가)된 언 닭과 쌀과 시들어 빠진 야채를 사 와 1시간을 해동해도 해동되지 않는 닭을 어떻게 끓이고 요리해.
맑은 닭국과 카레 밥을 지어 주었다.
식사를 준비하면서. ‘어제 마르틴에서의 식사는 꿈같은 거겠지라 생각했고.
식사하면서 ‘아.. 얼린 닭. 카레가루 넣은 설 익은 볶음밥..’
식사를 마친 후 ‘아 하하하하하’
그렇게 짧게 이틀간 산 세바스티안을 방문했던 홍콩 친구들이 떠나고.
기억에서 잊어버렸던 Will이 숙소에 방문했다.
“ 도우옹영~ 네가 친구들에게 요리를 해주었다며. 오 아주 고마워. 넌 좋은 친구야.”하며 말해주었고. ‘아니 뭐,...ㅋㅋ’ 답해주었다.
다음날 어학원 아파트에 들어가게 된 나는 그날 아무것도 할 게 없었는데.
윌이 나가며. “같이 나갈래.? 내 집에 가자.”말해주었다.
대답은 언제나 “예 형님.”이었다.
윌이 운영하는 호스텔은 되게 높은 언덕 산에 있었는데.
난 당연히 아래로 가서 다리를 건너가는 줄 알았는데.
윌이 한참을 더 위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의아하게 생각하며 따라갔는데.
앞서가던 윌이 “오~~ 동우영. 마이 뻬리버릿 플레이스.”하며 멈춰 섰다.
따라 올라간 내가 본 광경은.
아름다웠다.
산 세바스티안의 구 시가지와 신 시가지가 저 앞에 보이며 해안가 언덕 위에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예수 상 그 뒤로 비치는 햇빛.
좋아할 줄 알았다고 어깨를 툭 치며 이제 올라온 것보다 한참을 더 내려가는 윌을 따라 구시가지 중앙에 위치한 고풍스러운 건물에 윌을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산 세바스티안의 집들은 정말 고풍스럽다.
장식도. 세공도 건축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보아도 도시 전체가 정말 예쁘고, 멋있다.
‘윌이 부자였구나.’라는 내 생각과는 다르게.
윌은 그 집 거실 한쪽에 소파를 두고 그곳이 자신이 묶는 침대라고 했다.
시간이 더 지나서 알게 되었지만.
윌과 그 친구들은 사실 불법 숙박업자였다.
.. (다 각자의 나라로 돌아갔다.)
윌은 OPINEL나이프와 치즈 하나를 들고 왔다.
테이블을 손으로 쓱 닦더니.
나이프를 열어 치즈를 잘라 주었다.
집에 있던 맥주도 한 병 주었고.
이것저것 그날 자신의 힘들었던 하루를 말해주었다.
윌과는 한 달이 지나서야 다시 만났다.
다음날 학교의 아파트먼트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독일인 프레데릭과 갈레스인(영국의 한 지방 나에게 페란 아드리아 이야기를 해준)
2명의 미국인 친구를 만났다.
다들 스페인어 기초반 학생들이었지만.
영어를 잘했고. 숙소에서 영어만 사용하니.
나의 스페인 첫 한 달은 스페인어가 아닌 영어가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다 너무 친절했고. 에너지 넘치고, 즐거웠다.
영어 교사였던 영국 친구는 그 전해에는 2년간 이탈리아에서 영어교사로 있었고.
이번엔 스페인에서 일하기 위해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었다.
선생님이었고, 대머리였다.(!!?)
그는 내 영어 문장들이 하나 틀릴 때마다 나를 세워두고 뭐가 틀렸다 가르쳐주었고.
언젠가부터 나는 쳇. 쳇.!이라고 답하게 되었다. (친했다.)
어학원 숙소 친구들과 거의 매일 저녁 핀초바를 돌아다니며 어울렸다.
이야기를 나누고(영어), 맛있는 걸 먹고. 다음날 아침 학교를 가고.
요리를 하고, 친구들과 나눠먹는 건 나에게 즐거운 만족감을 주었다.
어느 날 윌을 만났다.
사실 위에 내용까지 2018년에 기록이 되어 있고, 2025년의 나는 우리가 그날 왜 만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그때 마르틴 베라사테기에 수습 요리사로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고, 한 달에 550유로의 어학원 숙소에서 나와 다시 윌이 운영(?)하는 한 에어비엔비 방 한 칸을 230유로에 빌려 생활하고 있었다.
그 방은 가장 작은 방으로 윌이 자신의 여자친구와 머물던 방이었다.
그가 그 작은 돈이라도 벌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정말 나를 도와주려 했는지 설마 이 글에서 적지 않는다.
그는 나를 많이 도와주었고, 내가 마르틴 베라사테기에 들어갈 수 있기 위해.
내가 교통사고가 나서 현지 경찰서에 가서 상황 설명과 합의를 해야 할 때,
가장 큰 나에게 그곳에서 많은 친구를 만나고, 사귈 수 있게 해 주었다.
몇 년이 지나 2021년 한국의 코로나가 절정기에 접어들 때 아무도 없는 인천공항을 통해 스페인으로 향했다.
마지막 해야 할 일을 위해, 미슐랭 3 스타 2 스타 레스토랑에서 일했지만 수습 요리사로 밖에 일하지 못했기에
난 스페인에서 제대로 요리하지 못한 사람이란 자격지심이 너무 컸다.
그래서 비자를 받아 그 시기에 스페인으로 향했고, 2달 정도 바르셀로나에 머물며 비자를 발급받은 난
산 세바스티안으로 향했다.
그 시기 유럽은 코로나 절정이 지나가고 있었고, 프랑스에 머무르던 윌도 다시 산 세바스티안으로 돌아와 있었다.
윌은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고, 3개월 정도 산 세바스티안에 머무르는 나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좋은 숙소, 도시에 친구들을 소개해 주었다.
그때 나는 이미 2015년에 "응, 형!!" 하던 친구가 아니었다.
포켓몬 인형을 사서 다시 리셀로 돈을 번다고 하는 윌을 그리 좋게 보지 않았다.
그 친구는 변하지 않았다. 나만 변했다.
오늘 글을 적으려 2018년의 2015년 그때를 읽으며
윌에게 미안하고, 다시 한번 그가 없었으면 너무 어려웠을 그 순간들에 고마움과 감사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