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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Oct 18. 2022

내가 둘째 아이 갖는 것을 주저하는 이유

"새로운 각오에 대한 낯섦"

  최근 아내가 둘째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한 얘기를 자주 한다. 나는 지금까지 딸아이를 27개월 간 키워오면서 전혀 둘째 아이에 대한 생각이 없었는데, 아내의 말로 인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기로 했다. 둘째 얘기가 처음 나오고 몇 달 후 난 아직도 둘째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해 주저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부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고 해야겠다. 물론, 둘째 또는 셋째 아이까지 낳은 부모들은 나름의 이유가 있을 테고 아이에게 오는 행복감도 두 배, 세 배 이상일 것이다. 어느 날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고 잘 살고 있는 회사 선배에게 물었다. "애가 둘이면 안 힘들어요?", "애가 둘이면 더 행복해요?"라는 식의 근본 없는 질문이었다. 선배는 그래도 나름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훨씬 힘들지. 경제적으로도 쪼달리고... 근데 좀 키워 놓으니까 둘이 알아서 잘 놀아. 우리가 없어도 서로 의지하고 잘 살 것 같아. 그리고 두 아이에게 오는 행복감이 하나였을 때 보다 두 배 이상으로 훨씬 커." 그 대답을 듣고 나는 어느 정도 두 아이가 있는 미래를 그려볼 수 있었고, 내 현재 상황에 대입하여 결론은 내려볼 수 있었다. 그리고는 아내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둘째 아이는 안 갖는 게 나을 것 같아. 우리 딸 하나만 잘 키우자."


아내의 표정에서 실망한 모습이 역력했지만, 나는 말 나온 김에 아내에게 고민의 흔적들을 털어놓았다. 아내도 무조건 둘째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아니어서 내 나름의 변명들을 잘 들어주었다.


부모도 외동, 아이도 외동

  아내와 나는 서로 외동딸, 외동아들로 부모님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보통 외동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갖는 인식이 '귀하게 자라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가정에서 물론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지만, 그렇다고 귀하게 자란 건 아니었다. 내 시절의 외동은 당시 '아이 하나만 낳아서 잘 키우자!' 운동의 결과물이라고 얘기는 하지만, 사실상 가정 형편이 하나만 낳아서 키우기에도 벅찬 것이었다. 우리 가정도, 아내 가정도 그러했다. 부모님들은 맞벌이로 인해 집에 잘 안 계셨다. 나는 학교를 다녀오면 집에서 만화를 보며, 엄마가 사다 놓은 초코파이를 두 개, 세 개씩 뜯어먹었다. 물론, 부모님은 열심히 나를 키우셨고, 최선을 다하셨다. 그래서 집에 다른 경쟁 상대가 없는 나는 어린 시절 가정에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보여 왔을 테다. 나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습이 부정적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가정에서 어린 시절의 그런 자존감 높은 상태가 부족한 가정 형편에도 좌절하지 않고, 학교에서 자신감 있고 활발하게 친구를 사귀게 만들었다고 본다. 그래서 외롭지 않았다. 외동이면 외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데, 나는 친구들이 있기에 외롭지 않았고, 친구들을 통해 이타심을 배웠다. 물론, 배우는 과정에서 친구들과 많이 다퉜지만 금세 또 화해하고 잘 지냈다. 그리고 그 시절 친구들은 나의 평생 친구가 되었다. 사회에 나와서는 같은 외동인 아내를 만나서 서로의 외로움을 보듬어주었다. 아내도 나와 비슷한 어린 시절을 살아왔기에 공통점이 많았고, 그런 모습에 서로 끌렸다. 우리도 외동으로 잘 살아왔고, 잘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 아이가 혼자라고 해서 그러지 못할 이유가 없다. 아마도 우리보다 혼자서 더 잘 해낼 거라는 확신이 든다. 그래서 '아이를 위해, 아이가 외로울까 봐, 우리가 없어도 서로 의지할 수 있게'라는 말은 나에겐 그저 둘째 아이가 갖고 싶은 부모의 변명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피할 수 없는 경제적 문제

  부모에게 어떠한 경제적 지원 없이 결혼을 한 우리는 신혼집을 구의동 먹자골목 근처 빌라의 원룸에 차렸다. 그래도 아내와 내가 직장 생활을 하며 모아놓은 돈과 대출을 통해 전세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곳에서 우린 신혼 생활 3년을 아이 없이 보냈다. 그러면서 돈을 모으고, 서로의 관계와 아이가 있는 삶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4년 차가 되는 시점에 우린 아이를 갖기로 했다. 아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유산도 한 번 있었고,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결국 우린 소중한 딸아이를 낳게 되었다. 다행히 그 시점에 우린 모은 돈을 더해 경기도 아파트 전세로 이사 가서 아이 방을 만들어 줄 수 있었다. 그리고는 27개월 간 아이를 키우며 나라에서 지원금도 나오고 별로 큰돈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장모님의 도움이 있지만 부부가 맞벌이하면서 지금까지는 경제적으로 키울만했다. 물론, 아이가 어리기에 아직 교육비, 등록금과 같이 큰돈이 들어갈 상황이 없기도 했지만, 그 상황이 오는 것을 미리 대비하며 돈을 모아놓고 있어야만 했다. 만약 둘째 아이를 낳게 된다면, 육아 비용은 곧바로 두 배가 될 것이고 결국 한 아이에게 돌아갈 몫이 절반으로 나뉘게 될 것이다. 나도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는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은 아니지만, 우리 아이만큼은 그래도 경제적 울타리를 탄탄하게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딸이 본인의 꿈을 펼치는 데 있어 돈의 눈치를 최소한으로만 보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둘째 아이의 꿈은 접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포기의 두려움

  한 아이를 27개월 간 키워오면서 개인적으로 포기한 것들이 있다. 대표적으로는 시간이다. 지금이 한창 손이 많이 갈 때이고, 조금만 더 크면 아이는 부모 손을 차츰 떠나게 된다라고 말은 하지만, 아직까지는 내 개인적인 시간이 육아로 인해 부족하게 느껴진다. 낮잠을 늘어지게 잔다거나, 하고 싶은 운동을 실컷 한다거나, 새롭게 취미를 배운다거나, 여유롭게 책을 읽는다거나, 밀린 영화나 드라마를 몰아서 본다거나 하는 아이를 갖기 전에 아무 생각 없이 해왔던 것들이 이젠 쉽지 않다. 하나를 하더라도 시간을 계산해가며, 아내와 아이에게 가정에 소홀하다는 불만이 나오지 않도록 틈틈이 개인 생활 속에 끼워 넣어야 한다. 그래도 지금은 아이가 하나니까 아이가 잠을 자거나, 엄마와 놀 때는 시간이 생겨 틈틈이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글도 쓴다. 만약 아이가 둘이라면 부모 하나에 아이 하나로 일 대 일 개인 마크를 해야 하고, 개인 시간은 더욱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 시간뿐만 아니라 체력적으로도 많이 힘들 것이기 때문에 특별한 열정을 갖지 않는 한 일과 육아 외에 다른 무언가를 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지금 어느 정도 정착되어 있는 한 아이와 함께하는 삶과 그 속에서의 나의 개인적 삶이 또 다른 하나의 아이로 인해 흔들릴 수 있다는 게 두 아이를 가진 아빠의 막연한 행복감보다 더 큰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내 아이가 있다는 것은 무한한 행복이다. 이것은 정말 낳아서 키워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언젠가 아이를 준비하는 후배에게 어디서 들은 말을 내 말인 것처럼 이렇게 말했다. 아이를 키우는 하루를 100으로 본다면 90프로가 힘든데, 나머지 10프로의 행복이 그 힘든 것을 극복하게 하는 하루를 선사한다고. 그게 내 아이라는 존재라고. 지금 아이가 어느 정도 사람 구실을 하니까 힘든 게 80프로, 행복이 20프로로 변화했다. 20프로의 행복이 나머지 80프로의 힘듦을 크게 압도하다 보니, 요즘 같은 때는 아이가 조금만 천천히 컸으면 하는 바람도 갖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둘째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또 다른 얘기가 된다. 둘째 아이를 갖는다는 것으로 인한 새로운 각오와 새로운 삶의 도전이 아직은 나에게 낯설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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