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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Sep 30. 2022

네 명의 여자들과의 1박 2일 여행

"딱히 할 일이 없어도, 행복한 하루!"

나는 어제 네 여자와 1박 2일 여행을 떠났다. 남중, 남고, 공대 그리고 직장에서까지 난 남자들에 치여 살았다. 수컷 냄새가 너무나 지겨웠다. 그러다 웬일로 내 인생 꽃이 피듯이 네 명의 여자들과 1박 2일의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면 좋았겠지만, 네 명의 여자는 그저 나의 가족들이었다. 제목을 보고 뭔가 흥미진진한 것을 기대하고 읽으려다가 실망하셨다면, 뒤로 가기를 누르셔도 된다. 지금부터는 나와 함께 여행하고 있는 이 네 명의 여자들의 소개를 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여자. 엄마

  오랜만에 엄마와 여행을 가게 된 것이다. 결혼하고 나서 조금 소홀한 경향이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함께 여행할 수 있어 좋았다. 아빠들은 휴가를 내지 못해서 평일에 가는 여행 일정에 낄 수는 없었지만, 내심 휴가를 낸 엄마들을 부러워했다. 엄마도 오랜만에 가는 여행이라 기분이 들떠있었다.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나를 낳아 기르셨다. 시골에서 자라 동네 오빠와 눈이 맞아 결혼까지 하게 된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애가 애를 낳아 키우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엄마는 나를 들쳐 매고 악착같이 일하셨다. IMF로 아빠 사업이 무너지던 날에도 엄마는 똑같이 일했다. 방황하는 아빠를 돌보며, 생계를 유지하고 나를 먹여 살리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렇게 힘든 시절을 이번 여행 한 번으로 풀어낼 수는 없지만, 조금이나마 고생을 보상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두 번째 여자. 아내

  아내와 단 둘이 여행을 잘 다녔다. 국내와 해외를 가리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한 출국 금지와 코로나 시기에 태어난 아이로 인해서 최근 2년 간은 여행을 잘 다니지 못했다. 그러다 아이도 어느 정도 크고, 코로나도 슬슬 잠잠해지니 우리의 여행을 다시 재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 둘만의 여행은 끝이었다. 우리 사이에 이젠 아이가 있었다. 이번 여행의 기획은 아내가 했다. 여행 장소와 관광 일정을 짜고, 근처 맛집을 알아보았다. 이 정도까지 아내가 고생하는 이유는 엄마들에게 효도를 할 수 있는 동시에 아이를 돌보는 것도 엄마들과 나눌 수 있는 일석 이조의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여행 계획을 짜는데 조금 고생이 있었지만, 막상 여행 기간 동안은 굉장히 자유로운 모습이었다.


세 번째 여자. 장모님

  아이를 낳고 손이 부족한 우리에게 가장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 항상 감사한 마음이 든다. 아내가 육아휴직 기간에도 틈틈이 집으로 오셔서 함께 아이를 돌봐주셨지만, 아내가 복직을 하고 나서는 장모님의 손이 더욱 필요해졌다. 아이의 등 하원을 전담하시고, 하원 후에도 아이의 저녁식사와 우리 부부의 저녁 식사도 챙겨주신다. 집이 어질러져 있으면, 청소와 빨래 등 집안 일도 틈틈이 도와주신다. 지금은 일을 하지 않으시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현재 장모님은 우리가 주는 용돈 수준의 월급만으로 생활하신다. 그래서 회사에서 상품권이 나오거나, 주변에서 선물이 들어오면 장모님께 곧바로 드린다. 고생하시는 것에 비해 항상 부족하지만, 이렇게라도 좀 더 감사를 표현하고자 했다. 아내가 장모님을 편해하기에 결혼 전부터 몇 번 장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가기도 했거니와, 요새 아이를 돌보며 장모님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장모님과의 사이가 더욱 돈독해졌다.


네 번째 여자. 딸

  나의 소중한 딸은 지금 세 살이다. 말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이 여간 귀여운 게 아니다. 아이가 있기 전과 후의 가족 모임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아이로 하여금 우리 가족에게 공통의 행복이 공유되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껏 키우는 동안 힘든 일도 많았다. 가족의 도움이 없었다면 정말 쉽지 않았을 거였다. 발달이 조금 느렸지만 건강하게 탈 없이 지금까지 자라 준 아이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항상 집에서는 아빠를 끼고 살았는데, 여행을 오니 아빠는 뒷전이었다. 아이에겐 놀 것도 많고, 볼 것도 많고, 상대해 주는 사람도 많았다. 아이도 새로워서 좋고 뒷전으로 밀린 아빠도 쉴 수 있어 좋은 여행이었다.


  나는 그저 운전만 하면, 숙소에서는 쉴 수 있었다. 아내가 맛있는 요리를 해주고, 엄마들이 아이와 함께 놀아주니 내가 여행 와서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그저 아이가 새로운 것에 재밌어하고, 엄마들도 아이와 함께하며 동심으로 돌아간 듯 즐거워하고, 아내도 나와 덩달아 육아에서 한 숨 돌리고 있는 모습들을 흥미롭게 보고 있기만 하면 되었다. 그 모습들이 그저 나에겐 행복이었다. 이번 여행엔 아쉽게도 아빠들이 빠져서 진하게 술 한잔 하지는 못했지만, 다음 여행은 모든 가족이 빠짐없이 즐길 수 있는 여행을 계획해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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