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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Feb 11. 2023

왜 나는 들어오지도 않은 신입의 퇴사를 걱정하는가?

"개인의 경쟁력을 우선해서 일하세요!"

  부서를 옮기고 팀장은 내 밑에 새로운 인원을 배치해 주기로 했다. 아무래도 일이 많아질 것 같으니 둘이서 함께 잘해보라는 의미였다. 나는 좋아해야 하는 건지 아닌 건지 혼란에 빠졌다.


'내 밑으로 후임이 들어오는 건 좋은데, 도대체 일을 얼마나 더 주려는 거지?'


불현듯 두려움이 앞서기 시작했지만, 새로운 인원이 팀 내에 활기를 주었으면 하는 기대도 되었다. 회사 인사팀에서 공고를 내고 서류 전형이 시작되었다. 팀장과 함께 접수된 지원서를 검토하고, 면접 인원을 선발했다. 사과에서 한 번 필터를 거치고 우리에게 접수된 지원서만 180 개였으니 실무에서 선별하는 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서류 합격 인원 다섯 명은 1차 면접 대상자였다. 이 중 네 명이 면접을 보았는데, 나는 참석하지 못했다. 팀장이 1차 면접이 끝나고 나서, 내게 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생각하던 1순위가 면접에 불참했어. 다른 회사에 합격했대..."


이때부터 뭔가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내가 입사할 때까지만 해도 회사 명성이 높진 않아도 나름 경쟁력이 있었는데, 지금은 여러 가지 이유로 타 회사 대비 인재를 유입할 만한 매력이 상당히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1) IT업계나 대기업 대비 명성 낮음

2) 동종 업계 대비 임금과 복지 수준 미달

3) 지속적인 경영 실패로 직원 사기 저하


대략 이 정도 이유로 인해 기존 인재들도 다른 회사로 상당히 빠져나가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러다 보니 남아있는 인원들에게 업무가 몰리고, 패배감을 면서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동력을 떨어뜨렸다. 결국 우리 회사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버리고 만 것이다. 그 와중에 1차 면접에서 총 두 명의 인원을 선발해야 하는데, 적합한 인재가 없어서 한 명만 선발하기로 했다. 추가로 지원서를 검토해서 다섯 명의 인원을 더 뽑아 다시 1차 면접을 보았다. 이 중에 두 명을 선발하고 결국 최종 면접엔 기존 합격자 한 명을 포함해 총 세 명의 인원이 올라가게 되었다.



  팀장은 최종까지 올라온 세 명의 인원이 누구인지 내게 말해주었다. 두 번의 서류 전형을 검토했을 당시 1순위로 염두에 두던 인원들은 최종 면접 명단에 없었다. 면접에 불참하거나 1차 면접에서 탈락되고 만 것이다. 이렇게 올라온 세 명의 지원서를 다시 한번 꼼꼼히 보았다. 이젠 관점이 바뀌었다. 이 중 누가 중간에 퇴사하지 않고 나와 오래 일할 수 있는지를 따져보았다. 회사가 경쟁력이 없으니 면접자 중 최고의 인원을 선발한다기보단 이직을 쉽게 하지 않을 사람을 뽑으려는 것이다. 어쩌다 회사가 이지경까지 왔는지 걱정이 앞섰다. 능력이 뛰어난 고스펙 인재들을 나갈까 봐 뽑지 못하는 실정이라는 게 어이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결국 팀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갈 확률이 높은 능력자와 나갈 확률이 낮은 무난한 자 사이에서 선택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도저히 나 스스로 누구를 콕 집어서 추천하기는 어려웠고,

그렇다고 내 말대로 되는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임원들과 팀장이 면접을 보고 결정할 일이라, 더 이상 머리 아픈 고민은 그만하기로 했다. 그러다 문득 회사에 우두커니 서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관찰하게 되었다. 나는 왜 경쟁력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이 회사에 남아있는가? 나도 결국 다른 데서 받아주기 힘든 별 볼일 없는 무능력자일 뿐 인가? 내가 자율적으로 이 회사를 선택해서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인가 아니면 벗어나지 못해 억지로 다니고 있는 것인가? 후임을 뽑으려다가 내 머리카락이 뽑힐 것 같은 근원적 물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머리가 복잡해진 나는 업무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짐을 싸며, 팀장에게 말했다.


"팀장님, 오늘은 이만 퇴ㅅ... 아니, 퇴근해 보겠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사무실을 벗어나 겨울의 차갑고도 진한 밤공기를 한 움큼 들이마시니 그나마 답답했던 마음이 좀 풀리는 것 같았다. 그러고 나니 문득 새로 후임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이 떠올랐다.


회사의 경쟁력보단 개인의 경쟁력을 우선으로 두고 일하세요. 회사는 그다음입니다. 그래야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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