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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Feb 01. 2023

떠나가는 사람을 보며 통쾌함을 느끼다

"잘 가고, 다신 보지 말자!"

  그러면 안 되지만 난 회사를 다니면서 '이 사람은 언제쯤 잘릴까? 왜 회사는 이 사람을 아직도 채용하고 있을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도 마음에 안 드는 동료나 나를 괴롭히는 상사가 한 둘 쯤 있을 텐데, 이런 사람들을 보며 나처럼 생각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부류 중 한 명은 너무나 특별했다. 내가 신입사원으로 회사에 입사했을 때 그는 연구소장이었다. 엄청나게 높은 직급 차이로 인해 감히 두 눈을 마주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신입사원으로 인사 온 나에게 만년필을 선물로 주면서 여러 가지 덕담들을 내놓았다. 그중에 특히 인상 깊었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직이 나아가는 방향과 내가 성장할 방향을 맞추는 게 중요합니다."


"업무가 힘들거나 고민이 있으면, 내게 직접 와서 말씀하세요. 갑자기 다른 데 가겠다고 말하, 내 인맥을 총동원해서 이 업계엔 발을 못 딛게 할 겁니다."


그의 마지막 말은 덕담이 아니라 협박에 가까운 것이었다. 나는 별 생각이 없었지만, 곧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 이 연구소장은 이미 조직 내에서 악명이 높은 사람이었다. 사람을 갈아 넣어서 조직 성과를 뽑아내는 사람이었고, 이로 인해 퇴사자들이 상당히 많았다. 이 사람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인생이 좌절했을까를 잠시 생각해 보았다. 오히려 버티고 있는 과장, 차장들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러한 생리는 회사를 두, 세 달 다니니거의 파악되었다. 결국 나는 퇴사까지도 결심하고 다른 팀으로 이직하기로 마음먹었다. 전공이 달라서 내가 애초에 원하던 직무로 옮기고 싶다는 명분도 있었다.



  팀장까지는 어떻게든 설득하지만, 가장 큰 벽은 연구소장이었다. 이 사람은 끝까지 나를 다른 팀으로 보내지 않겠다고 막아섰고, 나에게 퇴사하라고 종용까지 했었다. 도저히 가망이 없어 보여 인사과에 퇴사를 통보했으나, 신입사원의 퇴사는 회사 차원에서도 큰 손해이므로 인사과장은 소속 연구소장과 직접 얘기해 보겠다고 말했다. 며칠 후 연구소장은 나를 따로 불러서 이렇게 얘기했다.


"내가 너를 다른 팀에 보내면 다른 애들도 다 전배 시켜 달라고 그럴 건데, 나는 그걸 감당할 수가 없어. 그래도 너 가면 인사과에서 신입 TO를 준다고 하니까 이번만큼은 눈감고 보내줄게. 다른 데 소문내고 다니지 말아라."


신입사원이 퇴사하는 경우 직속 상사와 조직장의 고과에 불이익이 생기기도 하고, 인사과에서 신입 인원을 배치하겠다는 회유가 있었기 때문에 결국 나를 다른 팀에 보내준 것이다. 나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이 이렇게까지 이기적이고 악랄할 수 있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다른 팀으로 간 이후로 엘리베이를 오가며 그와 마주쳤을 때마다 소름이 끼치는 경험을 해야 했다. 언젠가 한 번은 엘리베이터에 둘이서만 있을 때 "거기 재미있?"라고 물어보길래, 할 말은 많았지만 그저 "네..."하고 답하고 말았다.


  나는 그 이후로 그가 언제까지 회사에 남아있을지, 연구소장 이후로 어디까지 올라가는지 틈틈이 지켜보았다. 연구소장이자 상무였던 그는 내가 10년 간 근무를 하는 동안 전무를 거쳐 부사장까지 승승장구했다. 역시나 일개 직원인 내가 판단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회장까지 나와 똑같이 판단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회장 눈에는 그가 회사에 이익이 되는 사람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도대체 그의 아랫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회장에게 대하는 태도의 온도차이는 얼마나 클지 감히 상사할 수도 없을 듯했다. 내가 10년을 회사 다니는 동안 아주 높은 성을 쌓고 있던 그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 같아 보였다. 이러다 내가 그보다 더 빨리 잘리는 건 아닌지 걱정될 정도였다.



  최근에 그가 결국 회사를 떠난다는 소식을 들었다. 입가에 웃음이 띠는 걸 겨우 참으며,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소식을 알려준 동료에게 물었다.


"정말이야? 어떻게 한순간에 갑자기 잘렸대?"


동료는 새어나가면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나만 들리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회장 모르게 비리를 저지르다가 이번에 크게 터진 모양이야. 게다가 판단 미스로 적자 엄청나게 났대."


나는 결국 사람을 보는 내 눈이 맞았다는 것을 드디어 10년 만에 확인하게 되었다. 그가 얼마나 회장 눈을 속여왔는지도 이제야 드러났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결국 터질 게 터진 것이지만, 나는 결국 그가 쌓은 성이 그저 툭 치면 무너질 모래성일 뿐이었다는 것을 알고는 속으로 통쾌함을 느꼈다. 나는 나가는 사람을 보며 이리도 희열을 느껴도 되는지 문득 의문이 들었지만, 오늘만큼은 그 기분은 만끽해도 될 거라 여겼다. 그리고 속으로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잘 가고, 다신 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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