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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Mar 02. 2023

97년생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본인 스스로를 잃지 않기를..."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지금껏 10년 간 회사를 다니는 동안 팀에서 여러 후배들을 만났지만, 이번 신입사원은 나와 함께 일하게 될 직속 후배라 좀 더 각별했다. 사실 내가 입사 지원서를 검토해서 추린 인원들 중에는 없었다. 팀장이 막판에 추가한 인원이었다. 에게는 함께 일하는 동안 이 사실을 말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채용 과정 중에 내가 직접 면접에 들어가지는 못했으니, 팀장한테 건너 듣기로는 마음에 드는 둘 중에 한 명을 뽑는 게 고민이라고 했다. 그중 한 명은 내가 선정한 인원이었고, 나머지 한 명은 팀장이 선정한 인원이었다. 결국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팀장이 선정한 인원이 최 신입사원으로 뽑혔다.


  신입사원이 처음 입사한 날에 나는 연차였다. 아이가 방학이라 집에서 아이 보는 일을 도맡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미리 후배들에게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잘 챙겨주라고 말 해놓았다. 


"내가 관련 부서에 신청해 놨으니까 신입사원 들어오면 PC랑 계정 받아서 일할 수 있는 환경으로 세팅 좀 해줘!"


신입사원의 자리는 물론 내 바로 옆자리였다. 자리가 세팅된 뒤 내 옆자리는  달 가까이 새로 올 신입사원을 위해 비워 놓고 있었다. 지나갈 때마다 언제 들어오나 했는데 드디어 이 빈자리가 채워진 것이다. 나는 후배그렇게 부탁을 해놓고도 신입사원에 대한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연차를 보냈다.



  다음 날 난 출근을 했고, 신입사원은 입사한 지 이틀 차가 되었다. 우리 회사에선 신입사원이지만 일 년 정도 다른 회사에서 근무를 한 중고 신입이었다. 그렇기에 아침에 출근했을 때 대학을 막 졸업해 입사한 사람과는 달리 그가 나에게 인사를 할 때 아느정도 여유가 느껴졌다. 전 날에 이미 나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을 터였다. 내가 그에 대해 대략 아는 정보는 대학, 학과, 사는 곳, 이전 회사명과 근무지 정도였고, 취미가 피아노 치기라는 것 정도였다. 주절주절 쓴 자소서 항목의 긴 내용들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출근해서 자리를 좀 정리하고 신입사원에게 말했다.


"OO 씨, 커피나 한잔 할까요?"


신입사원과 나는 내가 자주 가는 카페로 가서 커피를 시키고 구석 자리에 앉았다. 후배들을 대, 여섯 명 정도 대하다 보니 이번에 온 신입사원에게 물어보고 해 줄 말들은 이미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다. 먼저 간단하게 내 소개를 하고 구체적인 호구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이미 어제 얘기를 어느 정도 들었겠지만, 저는 함께 일하게 될 OOO과장이에요. 이제 27살이죠? 저도 27살에 이 회사에 처음 입사해서 10년째 다니고 있네요. 시간이 참 빠른 듯해요. 어쨌든 반갑고, 앞으로 잘 부탁해요."


신입사원은 약간은 긴장한 태도로 일관했고, 말도 어느 정도 딱딱한 상태였다. 아무리 중고 신입이라도 새로운 환경에서 일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었다. 그는 실수할까 봐 최대한 간결하고 조심스레 말했다.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긴장과 어색함을 좀 풀 겸 해서 몇 가지 질문을 했다.


"혹시 MBTI가 뭐예요?"


막상 처음 받는 질문이 MBTI라는 것에 신입사원은 좀 당황한 듯했지만, 애써 웃으며 답했다.


"아, 저는 ISFJ입니다."


나는 사실 나 말고 다른 MBTI 특성이 어떻게 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는 못하다. I가 내향형이라는 것과 F가 감성적이라는 것, J가 계획적이라는 것 정도만 대략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나도 나름 공감대를 형성하려고 말했다.


"저랑 세 개나 같네요. 저는 ISTJ예요."


이후에도 나는 왜 이전 회사를 그만두고 왔는지, 첫 출근 해보니 어떤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개인적으로는 여자친구는 있는지, 피아노는 언제부터 쳤는지, 주량은 얼마나 되는지, 퇴근하거나 주말엔 뭐 하고 시간을 보내는지를 물어보았다. 질문 사이사이에 내가 살아오고 일해온 얘기들도 곁들여서 내가 신입사원을 일방적으로 취조하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노력했다.



  막상 커피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눠보니, 그는 입사 지원서를 통해 내가 예상한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다. 이래서 면접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예상 이미지와 달라진 신입사원의 첫인상이 난 더 마음에 들었다. 말도 잘 통하는 것 같고, 특히 10년의 나이 차이에서 오는 거리감 같은 게 별로 없었던 듯했다. 물론 이건 순전히 나만의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신입사원이 오면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다른 후배들에게도 자주 얘기하는 말이다.


"우리가 어차피 회사에 속한 직장인이지만, 가장 우선은 나를 위한 일을 하세요. 그다음이 회사입니다. 팀장이나 다른 선배들이 지속적으로 회사를 위해서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하겠지만, 그 속에서 항상 나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심지어 저도 바쁘다 보면 OO 씨에게 회사를 더 우선하도록 요구할지도 몰라요. 그럼에도 본인을 위해 일하세요. 그리고 일은 끌려 다닐 대상이 아니라 끌고 가야 할 대상임을 항상 명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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