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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Apr 17. 2023

니 부사수 인사 안 하더라!

"마음이 내키면 하겠죠..."

  직속 후배 사원과 함께 일 한지 한 달이 좀 지나던 시기였다.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두 달간의 OJT(On the Job Training) 기간이 주어진다. OJT 기간 동안에는 같은 팀에 있는 선배들이 한 명씩 돌아가며, 각 전문 분야에 대해 신입사원에게 기초 교육을 하게 된다. 사실 교육을 통해 무언가를 가르친다기보다는 안면을 트고 회사 분위기에 잘 적응하라는 의미가 크다. 신입사원이 입사한 지 한 달이 좀 넘었다는 것은 팀 선배들과 한 번씩은 돌아가면서 인사를 나눴다는 뜻이다. 그 시점에서 나보다 4년 정도 일찍 들어온 선배가 야근을 하고 있는 나에게로 와서 말했다.


"니 부사수 인사 잘 안 하더라.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그렇다고 해서 한 번 벼르고 있어."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평소에 이 선배의 직속 후배와 난 친분이 있다. 그는 지금 5년 차이고 나보단 6년 정도 후배이다. 이 후배에게 본인 직속 선배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 때 꽤나 권위적인 사람인 것은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직속 후배가 업무에 대해서 물어보면 제대로 알아보고 온 거 맞냐는 둥, 공부 좀 하고 오라는 둥 업무적인 조언보다는 배를 타이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래서 후배는 의기소침하여 본인 직속 선배인데도 잘 물어보지 않고 궁금한 게 있으면 돌아 돌아서 해결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후배가 실수하면 그 선배는 윽박을 지르며 욕까지도 스스럼없이 한다고 했다. 어느 순간 후배가 주눅 들어 있으면 아니나 다를까 선배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들었던 것이었고, 난 그 후배의 하소연을 한동안 말없이 들어주었다.



  나에게 '니 부사수 인사 안 하더라'라는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 선배의 이미지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 더욱 내 인상을 찌푸려지게 만들었다. 일단 군대 용어인 '부사수'라는 단어 자체를 나는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회사가 군대도 아닐뿐더러, 과거의 군대 문화를 회사로 끌고 온 잔재가 지금까지도 남아서 회사 문화를 선진화하는 데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인사 문화도 마찬가지로 선배든 후배든 먼저 본 사람이 인사를 하면 되는 것이지, 굳이 후배가 선배들 한 명, 한 명 찾아가서 인사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구시대적인 모습이다. 물론 인사를 잘하는 것 또한 능력이고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강력한 무기임은 사실이지만, 그걸 꼭 후배가 먼저 하라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 선배는 나의 직속 후배에게 입사한 지 한 달이 지나가는 동안 커피 한 잔 사준 적도 없다.


  이 선배가 나에게 말한 의도는 '너의 직속 후배가 선배들에게 인사를 잘 안 하는 것 같으니, 네가 교육 좀 제대로 시켜라'라는 뜻이다. 이 숨은 의도 자체도 난 별로 탐탁지 않았다. 일단 내 직속 후배는 나에겐 인사를 잘해서 다른 이들에게 그러한 불만이 있는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불만을 갖고 있는 당사자가 직접 후배에게 말하면 될 일을 굳이 나에게까지 와서 털어놓는 이유는 무엇인가? 본인은 회사에 나쁜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고, 자기 손은 더럽히기 싫은 그런 이기적인 마음인 것인가? 이 선배가 처음에 했던 말에 대해 내 반응은 이러했다.


"그래요? 저한텐 인사 잘하던데요?"



  혹시 이 선배만 그렇게 느끼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느끼는 것인지 진위 확인이 필요했다. 다른 선배들이나 내 직속 후배보다 연차가 많은 다른 후배들에게 물어봤다.


"혹시 OO이가 평소에 지나가다가 마주치면 인사 잘해요?"


내가 물어본 선, 후배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아, 나도 걔 인사 잘 안 해서 OJT 할 때 대충 하려고 했어!"

"별 문제없었는데? 눈 마주치면 인사했었어."

"요즘이 어느 시대인데 인사하는 걸로 뭐라고 해요..."

"나도 인사 잘 안 하는 데 뭘... 회사에선 일만 잘하면 돼!"


신입사원의 인사 여부로도 회사 선, 후배들의 의견은 각양각색이었다. 이 의견들을 대략 정리해 보니, 회사에서 인사는 본인 마음이 내키면 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그에 따른 불이익이나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는 것 까지도 인지해야 할 것이었다. 결국 난 그 선배의 말을 토씨 하나조차도 나의 직속 후배에게 전달하지 않기로 했고, 그에게 인사에 대한 아무런 언급 조차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회사에서 누가 인사를 하고 말고를 논 할 시간에 차라리 업무에만 집중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인사 잘하는 후배가 더 이뻐 보이겠지만, 인사만 잘하고 일을 못하면 그것만큼 불편한 게 없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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