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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Apr 21. 2023

요즘 이혼을 옆에서 지켜보며...

"공든 탑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더라..."

  나에겐 내가 아주 아끼는 90년 생 회사 후배가 한 명 있다. 나보단 세 살 어리지만 생각의 깊이나 생활의 지혜는 나보다 어린것 같지 않았다. 그가 총각인 시절 우리 회사에 막 입사했을 때 난 막 결혼 한 직후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함께 헬스도 하고 술도 마시며 우정을 쌓았다. 한 번은 후배가 나에게 말했다.


"나도 선배처럼 빨리 결혼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싶."


이제 막 결혼해서 신혼 생활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그에게 좋아 보였던 듯싶었다. 내 생각도 우리 부부가 다투기는 하지만,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건 맞다고 여겼다. 그래서 난 후배에게 답했다.


"그래, 어차피 결혼할 거라면 빨리 하는 것도 방법이지."


  후배가 어느 날 해외여행을 다녀오더니, 나에게 여자친구를 사귀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녀도 친구와 여행을 왔었고, 함께 관광을 하다가 얘기가 잘 통해서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몇 번 만났다고 했다. 그리고는 결국 사귀기로 했다는 것이다. 나는 아끼는 후배이다 보니 그의 여자친구가 몹시 궁금했다. 그래서 난 그들이 아직 부부는 아니었지만 커플로 근교에 1박 2일로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물론 아내에겐 사전에 얘기를 해 놓았다. 그렇게 만남이 성사되었고, 그 이후로도 몇 번 더 함께 여행을 다녔다.


  몇 달이 흐른 뒤 그들은 후배의 집에서 동거를 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을 하겠다고 청첩장을 우리 부부에게 내밀었다. 후배는 내게 웃으며 말했다.


"나도 선배가 결혼한 나이에 결혼하게 됐네!"


나 역시도 그랬지만 그때 후배가 결혼했을 당시에도 서른이란 나이에 결혼은 주변에 비해 빠른 축에 속했다. 는 나처럼 빨리 결혼해서 안정을 찾으려는 후배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고, 행복하게 잘 살길 바랬다. 들은 신혼살림을 후배가 살던 집에 차렸고, 혹시나 모를 청약 당첨확률을 높이기 위해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은 아이를 낳지 않기로 서로 합의했기 때문에 혼인신고를 서둘러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틈틈이 부부모임을 했고, 서로의 가정생활을 공유했었다. 의 결혼 생활 4년 동안 우리는 함께 추억을 쌓았다. 그러던 중 그들 부부 사이가 삐걱거리는 게 느껴졌다. 부부 사이라는 게 서로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가끔 다투기도 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하지만 다툼이 잦아지고 서로 양보하지 못하는 상황에 도달하면 부부 사이가 극단으로 가버린다. 그들 부부가 그랬다. 우리와 여행 가서도 다투는 경우가 잦아서 우리 부부는 눈치를 봐야 했고, 후배가 회사에서 표정이 어두우면 아니나 다를까 그의 아내와 부부 싸움을 한 것이었다. 그런 모습이 너무 자주 보여서 나는 후배와 술 한잔 하며 그들 부부사이가 어떤 상황인지 물었다.


"나도 이제 모르겠어... 부부상담을 10회 정도 했는데도 답이 안 나와... 아내와 삶을 살아가는 가치관의 차이가 너무 커."


이미 전문가와 상담도 진행했을 정도로 그들의 부부 관계는 꽤 심각했다. 나도 중간중간 몇 번 조언을 하긴 했지만,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이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말해주기는 힘들었다. 결국 그들의 관계 개선은 그들이 스스로 해야 할 몫이었다. 나는 그저 후배의 고민들을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이 최선이었다. 듣다 보니 정말 성격과 가치관의 차이로도 부부가 이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하지만 우리 부부가 4년 이상을 그들 부부와 만나오며 쌓인 정 때문에 그들 스스로 이 위기를 현명하게 극복하고 더욱 끈끈한 부부 사이가 되길 속으로 바랬다.


  어느 날엔 유독 후배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 보였다. 나는 후배에게 물었다.


"아직 개선의 여지가 안 보여?"


후배는 한숨을 크게 쉬며 내게 답했다.


"선배, 와이프 짐 싸서 집 나갔어. 당분간 별거해서 지내보재... 그래야 객관적으로 우리 사이를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대. 시간을 좀 달라더라..."


나는 더 이상 무슨 말을 더 해줘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정말 이러다가 둘 사이가 파국으로 치다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미 그렇게 진전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마저 들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였다.


"그래... 너도 이참에 시간을 갖고 정말 진지하게 다시 고민해 봐."



  한 달 정도 흘렀을까. 주말에 집에 있는데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선배, 주말에 미안한데... 나 술 한잔 사줘..."


나는 뭔가 심각하다는 것을 그의 목소리를 통해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이를 아내에게 맡기고는 약속 장소로 급히 나갔다. 후배는 저녁까지 밥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해 핼쑥한 모습이었다. 나는 일단 후배가 밥을 먹도록 하고, 배가 어느 정도 채워졌을 때 소주를 시켜서 나눠 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묵묵히 소주를 입에 털어 넣을 뿐 무슨 일이냐고 먼저 묻지 않았다. 후배가 준비되면 말을 해줄 것이었다.


"선배... 우리... 갈라서기로 했어. 재산이랑 살림들 갈라서 아내가 따로 방 구한 곳으로 보내기로 했어."


후배의 체념한 듯한 표정에 난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소주를 한 잔 더 마신 후 난 후배를 보며 말했다.


"그래... 고생했다..."


어느 정도 술이 들어간 상태인지 몰라도 후배는 감정이 격해져서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고, 한동안 그가 터놓는 심정들을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들이 만나서 사랑을 키우고, 4년 동안 결혼 생활을 이어온 과정들은 너무나 높게 쌓인 추억들이었지만, 그 추억들이 무너지는 것은 정말 한순간이었다. 특히 그들은 혼인신고도 하지 않고 아이도 없었기 때문에 이혼이라는 절차가 전혀 복잡할 게 없었다. 그저 서로 마음먹고 따로 살아가기만 하면, 그걸로 그들의 관계는 끝나버리는 것이었다. 마치 결혼식만 올린 동거 관계처럼 말이다. 겉으로 보았을 땐 그렇지만, 그들의 속마음은 물론 너무나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개인의 삶을 위해 서로를 놓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 후로 몇 달이 더 흐르고 후배는 정리가 많이 된 듯해 보였고, 실제로도 적극적으로 회복하려는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큰 일을 겪은 후배가 스스로 이겨내려고 하는 모습이 대견했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그의 부모님께는 말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어느 순간에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아직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우선 스스로 빨리 회복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 되었을 때 그때 주변에 천천히 얘기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후배는 내게 집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으니 언제 한 번 집으로 와서 같이 술이나 한 잔 하자고 했다. 그리고 나는 언제든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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