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른일곱의 나이가 되었다. 누군가는 아직 젊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이제 꼰대의 나이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만큼 어떠한 경계에 있는 나이인 것은 확실하다. 30대 중반을 넘어 후반을 시작하는 나이에서 세월을 정통으로 맞은 나의 상황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얼마 전 뉴스 기사를 보니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 결과, 사람의 노화는 점진적으로 천천히 오는 게 아니라 특정 시점에 급격하게 진행된다고 한다. 그 노화 부스터가 발생되는 나이가 만으로 34세, 60세, 78세라고 하는데, 내 나이가 만으로 35살이니 첫 번째 노화 부스터가 작년에 찾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더 나아가 생각해 보니 이런 생물학적 노화 부스터를 촉진시키는 내 상황도 함께 작용한 결과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직장생활부터 얘기해 보도록 하자. 내 나이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빠르면 10년 차가 넘어갔을 것이고, 늦었다고 해도 5년 차 이상의 사회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는 더 이상 아마추어로 볼 수 없고, 본인의 행동과 결정에 책임이 따르는 본격적인 프로의 세계에 서 있다는 뜻이다. 후배들과 선배들 사이의 중간자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며, 사회생활의 단맛과 쓴맛을 고루 경험하면서 직장 생활의 노하우도 충분히 쌓여 있을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배우는 입장이 아니라 실적과 성과를 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을 것이고, 이로 인해 잘 나가는 사람과 뒤처지는 사람이 슬슬 나뉘게 된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11년 차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 행동에 대한 무게감이 따르고 있다. 책임의 무게가 커진다는 건 주변에서 나를 프로로 인정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이로 인한 스트레스도 커진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첫 번째 노화 부스터의 상황적 원인이 발생한다. 스트레스는 사람을 늙어 보이게 만든다. 특히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머리를 희게 만드는 새치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것은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이다. 심지어 스트레스 상황을 벗어나면 머리가 다시 검게 변한다고 하니, 스트레스가 노화 부스터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요즘은 경제적인 상황도 스트레스와 맞물려 있는데,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남들보다 뒤처져 있는 듯한 느낌에 열등감이 밀려올 때가 있다. 어느 날 아내가 내게 한 말이 내 뼛속 깊숙이 파고들었다.
"20대에 가난한 것은 부모 탓을 해도 되지만, 30대부터는 슬슬 본인 책임이 더해지고 40대에도 가난한 것은 결국 본인 탓일거야."
그렇다. 더 이상 과거의 가난에 목메고 있을 수 없고, 이젠 스스로 내 가정의 경제를 책임져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직장 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 외에 뚜렷한 돌파구는 없지만, 무언가 새로운 변화를 통해 경제적인 안정감을 찾아내야만 하겠다. 이러한 경제적 고민들도 결국 나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오면서 노화 부스터를 강화시켰다.
생물학적인 노화는 결국 사람의 기력을 빠지게 만든다. 근육이 빠지고, 지방 축적이 빨라져 성인병에 노출되기 쉬워진다. 젊은 시절 몸을 혹사시킨 것이 뒤늦게 관절의 부하로 찾아오거나 디스크의 형태로 발병하기도 한다. 슬슬 몸의 한, 두 군데씩은 고장이 나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운동을 해도 젊었을 때만큼의 체력을 끌어올리기 힘들고, 아이까지 있다면 아이에게 아주 기를 쫙 빨리게 되어 체력이 달리는 상황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노화는 뇌 또는 위나 장 같은 몸의 장기에도 영향을 주는 듯하다. 예전보다 자주 깜박하게 되고, 술을 마시더라도 쉽게 취하면서 주량도 떨어지게 되는 게 느껴진다. 서른일곱이라는 내 나이는 이런 변화를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없이 세월이라는 파도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다는 걸 점차 깨닫게 된다.
세월의 불가항력에 더불어 심리적으로 나를 조금 내려놓게 되는 마음가짐을 갖게 되면서 나의 노화를 가속화시킨다. 더 이상 시대와 문화의 주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요즘 유행하는 것들을 따라 하기가 매우 벅차다. 음악, 패션, TV프로그램, 영화 등 젊었을 때 관심 갖고 즐겼던 생활들이 더 이상 의미 없게 느껴지고, 먹고사니즘이 가득한 현실을 마주한다. 심지어 아이까지 있다면 자기중심이었던 생활이 아이 중심으로 넘어가면서 나 스스로를 가꾸고 돌보는 일은 조금 내려놓게 된다. 그러면서 유행에 뒤처진 옷을 입고, 몸매를 가꾸기 위한 운동은 뒷전이 되어버리고, 문화생활도 아이 맞춤형이 된다. 동요와 만화 캐릭터 이름을 달달 외우고 있는 내 모습에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렇듯 나이와 상황에서 오는 심리적인 변화 또한 나를 더 늙어 보이게 하는 듯하다.
첫 번째 생물학적 노화가 찾아오는 시점에도 이를 늦추는 이들이 주변에 있다. 비슷한 연령임에도 이들을 확실히 나보다 어려 보인다. 이들은 꾸준하게 운동을 하며 땀 흘리는 것을 즐기고 있었고, 결혼을 아직 하지 않아서 본인 중심의 생활을 하고 있거나, 결혼을 했더라도 아이 없이 딩크로 살고 있었다. 본인을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취미 모임을 갖고 있기도 했다. 현실의 벽에 본인을 가두지 않고 자유 분방하고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이게 경제적인 것에서 오는 것인지, 심리적인 것에서 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젊게 살아가는 방식임에는 분명했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따라서 겉에서 보이는 노화의 차이는 뚜렷한 느낌이다. 그렇다고 난 내가 세월을 정통으로 맞았다고 해서 다른 이들을 부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나의 노화를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는 뜻이다. 더 이상은 첫 번째로 찾아온 노화 부스터를 부정할 순 없을 듯싶다. 대신 노화보다는 성숙이라고 표현하면 좀 더 지금의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생각들도 결국 서른일곱의 성숙한 나로부터 나온 것이니, 흘러가는 세월을 맞이하는 게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여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