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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Oct 02. 2023

남초회사에서 경력직 여직원을 보는 현실적인 시선

"평가하는 눈과 응원하는 마음"

  여느 제조업 회사가 그렇듯 내가 속해 있는 회사 또한 전형적인 '남초' 조직이다. 남초라는 뜻은 구성원의 성별이 남성이 여성보다 훨씬 더 많은 상황을 일컫는 인터넷 용어이다. 유래 정확히 파악하긴 힘들지만, '남성초과'라는 말을 줄여서 만들어진 신조어로 보는 이들이 많다. 어쨌든 내가 속한 조직엔 30명이 가까운 구성원 중 여성 직원은 단 두 명만 있을 뿐이다. 그 두 명의 여직원에 대해 얘기해 보자면, 일단 나보다 나이가 많다. 즉, 둘 다 40대라는 뜻이다. 한 명은 아들이 둘이 있고, 나머지 한 명은 곧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녀들이 조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내지는 못하지만, 조직이 원활하게 굴러가는 윤활제 역할은 하고 있는 듯하다. 업무적으로 소통이 잘 되는 편이고, 회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든다.


  사실 내가 이 조직에 십 년 간 머무르면서 조직을 거쳐간 여직원들을 더러 보았다. 여러 가지 사건 사고들로 인해 지금은 달랑 두 명만 남아 있을 뿐이고, 이 조직을 이끌고 있는 실장은 더 이상은 여직원을 뽑지 않겠다고 공공연히 얘기하고 다니는 실정이었다. 그러니 남아있는 두 명의 여직원은 더욱 위축되어 조직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남초 회사에서 여직원으로 살아남기란 그만큼 힘든 일인 것 같아 안쓰러운 마음이 들면서도, 나름대로 희소성의 가치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일 때면 대단하다는 생도 든다.



  최근 이런 상황 속에서 경력직으로 여직원 한 명이 입사를 하였다. 기존에 퇴사한 직원의 업무를 맡게 될 예정이다. 하지만 채용 과정에서부터 논란이 꽤 많았다. 팀장은 여직원을 뽑기를 원했고, 함께 일하게 될 팀원들은 여직원과 일하기 싫다고 갈등이 빚어지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팀장은 다른 팀에만 앞서 얘기한 두 명의 여직원이 존재하고 본인의 팀에는 여직원이 없기에 팀 분위기를 새롭게 개편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하지만 함께 일하게 될 팀원들은 남성 사회에 물들어 있어 여직원과 일하는 것을 불편해했다. 팀원들의 주장은 이러했다.


"여직원이랑 있으면, 말을 편하게 못 해서 힘들어요."

"저희가 하는 일이 거친 일인데, 여직원이 와서 할 수 있을까요?"

"그동안 겪어보셨잖아요... 울고 불고 하다가 다른 팀으로 넘어간 거..."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장의 의지는 높았다. 오죽하면 한 불만 많은 팀원은 그 팀장을 몰래 흉보며 "여자에 환장했나... 어차피 실장한테 보고하면 뽑지 말라고 할 텐데..."라는 말까지도 꺼냈다. 앞서 얘기했든 실장은 더 이상 여직원을 뽑지 않겠다고 공표한 상황이었지만, 팀장이 실장에게 보고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여직원의 채용을 확정 지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구성원들은 의아해했다. 한 직원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합리적인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이거 혹시... 그 여직원, 뭔가 회사에 연줄이 있는 거 아냐?"

"얘기 들어보니까 기존에 다니던 회사보다 연차도 2년 뻥튀기해서 온다던데?"


대부분이 그럴 리가 없다는 듯 손사래를 쳤지만, 표정에서는 설마 하는 마음이 살짝 드러나 있었다. 이렇듯 아직 입사도 하지 않았는데, 경력직 여직원은 벌써부터 논란과 소문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



  채용이 확정되고 입사하기 전까지 한동안은 그 여직원의 신상에 대해 구성원들끼리 얘기가 오갔다.


"혹시 입사지원서에서 사진 본 사람 있나?"

"나 보긴 봤는데... 그렇게 이쁜 것 같지는 않던데?"


남초회사에서 여직원의 외적인 요소는 항상 우선적으로 논의되는 대홧거리 중 하나이다. 그러다 외모가 특별한 게 없다고 하면, 크게 흥미가 떨어지는 이들이 생기기도 하고 또 다른 정보들로 대화 이어가는 이들이 생기기도 한다.


"나이는 서른 한살이고 미혼이라던데, 남자친구는 있겠지?"

"글쎄, 결혼할 나이니까 있지 않을까? 그나저나 회사 입사하고 나서 결혼하고 애 낳는다고 육아휴직 쓴다고 하면 업무는 어쩌지?"

"뭘 어째... 남은 사람들이 떠맡는 거지. 그래서 내가 팀장한테 그렇게 얘기했건만..."


다시금 남초 조직의 현실적인 시선으로 경력직 여직원이 입사했을 때의 업무적인 우려 사항들을 토로하기 시작한다.

 

"전 직장에서 관련된 일을 하고 왔으니까 금방 적응은 하겠지?"

"뭐, 면접 볼 때 성격은 시원시원했다니까 문제없지 않을까?"

"내년에 진급 대상이라는데, 너랑 곧바로 승진으로 경쟁하게 생겼는데?"

"에이, 아무리 그래도 실장이 승진 대상자에서 그 여직원을 먼저 올리지는 않겠지..."


이제 입사한 지 몇 년 안 된 젊은 직원들은 선배들의 우려사항을 뒤로한 채 새로운 여직원이 들어온다는 소식에 들떠서 자기들끼리 아직 들어오지도 않은 여직원의 환영회를 계획하고 있었다. 시간과 장소를 미리 정해놓고 입사하고 나서 가능한지를 여직원에게 물어보려는 심산인 듯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경력직 여직원이 입사하는 날. 그녀는 아마도 입사하기 전부터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팀원들은 그녀 앞에서 이미 알려진 사항에 대한 내색을 전혀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함께 일할 동료 몇 명과 간단한 호구조사를 마쳤고, 입사한 지 이틀 만에 젊은 직원들과 회식도 하게 되었다. 동료들은 당분간 관심의 대상으로 가십거리의 중심에 서 있을 그녀를 마음속으로 응원하기도 하지만, 어떻게 직장 생활을 해나갈지 평가하는 눈으로 지켜보기도 할 테다. 남초 회사에서 여직원으로서 녹록지만은 않을 그녀의 사회생활을 나 또한 멀리서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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