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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Jan 12. 2024

두 번째 성우 학원, 기초부터 다시!

늦깎이 성우 도전기(12)

  작년 여름에 처음으로 성우 취미반 두 달을 듣고 나서 한동안 학원을 다니지 못했다. 집에서 유튜브 채널 활동으로 간간이 연습을 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혼자 하기엔 한계가 있는 듯했다. 지난 연말부터 정말 성우 공채를 준비할 수 있는 학원을 알아보았고, 그중 한 군데서는 상담도 받았다. 실력이 출중하신 현직 성우분들의 수업이 워낙 다양하고 많기 때문에 나에게 맞는 수업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다. 나는 회사와 집을 오가는 동선에서 가장 가까운 학원을 선택했다. 아직 기반이 부족하기에 누가 가르치든 배움은 무조건 따라올 것이라 생각해서 선생님의 자질을 특별히 보진 않았다. 직장인이기에 그저 내가 빠지지 않을 수 있는 시간대에 기초반 수업이 있는지를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었다. 그리고 결국 상담받은 학원에서 기초반 수업을 이번 달부터 두 달간 듣기로 했다.


두 번째 성우학원 첫 수업 날. 지난 취미반과는 다르게 기초반이지만 성우 공채 정규 과정을 밟는 수업이다. 저녁 7시까지 학원을 가야 하기 때문에 급하게 회사 일을 마무리하고 퇴근 버스에 올랐다. 첫 수업의 설렘은 기분 좋은 긴장감을 주는데, 수요일은 직장인에게 아주 피곤한 날이라 자리에 앉자마자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다. 눈을 뜨니 거의 도착할 즈음이었고, 직장생활의 피로감은 일시적으로 완화되었다. 퇴근길이라 차가 막힐 거라 예상서 조금 일찍 나왔는데,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해 저녁을 먹고 수업을 받기로 했다. 아무래도 장장 3시간에 걸친 수업이다 보니 말을 많이 해야 할 것이고, 집중력 있게 수업을 경청하려면 배가 어느 정도 채워져 있어야 할 것이었다. 학원 근처에 있는 햄버거 가게로 갔다. 세트메뉴를 시키고 콜라는 제로로 바꿨다. 수업시간까지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서 구석에 앉아 배를 채우며 유튜브를 봤다. 너무 무거운 주제보다는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영상을 시청했다. 그래야 첫 수업의 긴장감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수업시간이 다가오자 햄버거 가게를 나와 편의점에 들렀다. 사전에 수업 준비물을 안내해 주었는데, 필기도구와 편안한 복장, 적당히 소화된 상태 그리고 물이었다. 다른 건 모두 준비가 되어 있었고, 물을 사기 위해 편의점에 들어온 것이다. 생수만 사기엔 뭐해서 혹시나 수업 중간에 배가 고플까 봐 에너지바를 하나 샀고, 말을 많이 해야 하므로 입냄새 방지를 위한 민트향 사탕을 하나 샀다. 든든하게 모든 준비를 마쳤고 전투에 돌입하는 병사처럼 호기롭게 학원 문을 열어젖혔다.



  슬리퍼를 갈아 신고 기초반 수업이 있는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상담받은 날에도 왔었기에 공간은 익숙했다. 수업을 듣는 강의실이자 스튜디오가 세 군데 있고, 가운데 빈 공간에는 휴게실과 안내데스크가 있는 아담한 학원이다. 괜히 거창한 것보단 이렇게 실속 있는 공간이 난 더 마음에 들었다. 내가 수업을 듣는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6개의 테이블이 컴퓨터와 녹음장비가 있는 자리를 기준으로 네모난 벽을 따라 쭉 둘러져 있었고, 한쪽 구석엔 녹음실로 들어갈 수 있이중문이 있었다. 녹음실에는 녹음장비 쪽이 보이게 조그맣고 투명한 유리창이 나 있었다. TV에서 보던 녹음실 환경과 유사했다. 


  한쪽 구석 자리엔 어떤 남자아이 한 명이 이미 와 있었다. 딱 봐도 어린 티가 나는 게 고등학생 정도라고 생각했다. 내가 들어오자 서로 눈이 마주서 가볍게 목례를 했다. 수업시간 10분 정도 여유를 두고 왔기에 나머지 인원들은 아직 오지 않은 듯했다. 남자아이와 먼 쪽에 자리를 잡고, 어색하게 필기도구와 물을 주섬주섬 가방에서 꺼내 놓았다. 곧이어 여학생들이 두 명이 동시에 들어오길래 서로 친구인 줄 알았더니, 서로의 행동이 나처럼 어색한 게 그건 내 착각인 듯했다. 수업시간에 딱 맞춰서 두 명의 인원이 더 채워졌고, 총 남자 셋, 여자 셋의 학생들로 구성된 수업이었다. 모두가 자리를 잡고 데면 데면하게 앉아있자, 그 분위기를 깨는 듯 큰 소리로 인사하며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그렇게 자연스레 나의 두 번째 성우 수업이 시작되었다. 첫 수업에서는 자기소개가 빠질 수 없다. 각자 한 명씩 돌아가며 이름과 나이, 수업을 듣게 된 계기를 간략하게 말했다. 어릴 땐 이런 자기소개가 부끄럽고 싫었는데, 지금은 각자의 삶을 겉으로라도 조금씩 알게 된다는 게 흥미롭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어린 고3 학생은 방학기간에 맞춰 성우의 꿈을 가지고 수업에 참여했다. 어린 나이에 벌써 꿈을 향한 도전을 하고 있다는 게 기특하고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난 왜 그러지 못했을까. 나머지 인원들은 대부분 스무 살이거나 스물한, 둘 쯤의 대학생들이었고, 마찬가지로 방학이라서 두 달 과정의 수업을 듣게 되었다고 말했다. 각자의 사연이 있었는데, 누군가는 사고로 한쪽 귀가 안 들린다고 했고, 누군가는 앞에 나서서 말하는 게 너무나 무섭다고 했다. 이런 불편함들을 이번 기초반 수업을 통해 극복하고자 한다는 계기를 용기 내 밝혔다. 도 또 다른 용기일까. 내 차례였다.


"제가 여기 수업 학생들 중에 나이가 가장 많은 것 같네요. 뒤늦게 꿈을 이뤄보고 싶어서 듣게 되었습니다."


수업에 참여하게 된 각자의 사연은 달랐지만, 성우가 되고자 한 계기는 거의 동일했다.


"주변에서 친구들이 목소리 좋다고 해서요."

"애니메이션 대사 따라 하고 있는데, 엄마가 성우 같다고 말해서요."

"친구들이 성우 해보라고 자꾸 부추겨서요."


모두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 칭찬'에 꿈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게 진심으로 나온 칭찬인지, 아니면 입에 발린 말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나가는 칭찬만으로도 누군가의 꿈을 키우는데 긍정적인 양분이 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나 또한 이런 칭찬들로 성우라는 꿈을 지금까지도 간직해 왔으니 말이다.



  선생님은 방송사 전속 계약이 끝나고 프리랜서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공채 성우였다. 나이는 밝히진 않았지만, 대략 내 또래 거나 나보다 좀 적은 싶었다. 5년 간의 지망생 생활을 했고 중간에 공백기가 있었으며, 이후 녹음실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시험을 준비했다고 했다.


"저는 좀 길게 성우지망생 생활을 했지만, 여러분들은 제 수업을 듣고 좀 더 빠른 길로 성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격적으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요가메트를 깔고 누운 채로 복식호흡을 연습했다. 성우의 가장 기본이 되는 3요소는 호흡, 발성,  발음인데, 그중에서도 호흡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아직 먼 얘기지만 호흡으로 인해 연기의 스펙트럼이 달라지고, 탄탄한 호흡은 성우로 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선생님께서 씀하셨다. 눈을 감은 채 등을 바닥에 맡기고 배로 공기가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것을 인식하고 느껴보았다. 의 긴장을 풀고 괄약근까지 공기가 들어가도록 깊게 숨을 쉬고, 몸의 모든 근육과 신경들을 구석구석 감각해 보았다. 마치 명상 수업을 듣는 듯했지만, 처음 해보는 체험이라 흥미로웠다. 마음이 평온해지고, 자연스레 복식호흡이 원활해졌다. 이런 식의 연습을 통해 일상에서 복식호흡을 자주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이제 각자 한 명씩 녹음 부스에 들어가서 '날 것'의 목소리를 녹음했다. 짤막한 대, 여섯 문장의 대본이었는데, 8주 간의 수업 전, 후로 어떻게 달라졌는지 비교하기 위한 초기 샘플인 것이다. 선생님은 각자의 녹음된 목소리를 다시 한 번씩 듣고는 피드백을 해주었다. 나 같은 경우는 발성은 단단하지만 발음에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했다. 평소에 입을 잘 벌리지 않고 흘려 말하는 게 습관이 된 것이 문제였다. 성우라는 꿈을 갖고 조금씩 개선해보고자 했었는데 아직까지 잘 되지 않는 듯했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발음을 개선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을 말해주었다.


"발음은 나중에 따로 연습하는 시간이 있겠지만, 그냥 천천히 정성 들여서 말하려고 자주 의식하면 좋아져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유튜브 활동을 하면서 의식적으로 정성 들여 말하긴 했었는데, 대다수의 말하는 시간인 일상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다 보니 아직 습관이 개선되지 않은 모양이다. 좀 더 일상에서 말을 '정성스럽게' 하도록 의식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선생님의 열정으로 예정된 3시간보다 30분을 더하여, 10시 반에 첫 수업이 종료되었다. 평소 같으면 아이와 신나게 놀아준 뒤 이부자리를 펴고 누울 시간이지만,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꿈을 위한 개인적 배움의 시간을 갖는 것도 나름 의미 있는 아빠의 하루가 아닐까 생각했다. 물론 아내에게는 충분히 양해를 구고, 다른 날들엔 좀 더 가정에 집중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학원에서 호흡과 명상의 시간을 가져서 그런지 평일 퇴근 이후의 수업이더라도 그리 피곤한 느낌은 없었다. 앞으로 남은 7번의 수업이 기대가 될 뿐이었다. 학원을 나와 가까운 버스정류장에서 집에 가는 버스에 올랐다. 창가를 보며 앞으로 자주 오가게 될 바깥 동네 풍경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오늘 배운 수업들을 다시금 되새겼다. 그렇게 난 뒤늦은 나이에 꿈을 위해 꾸역꾸역 한 걸음씩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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