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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Jan 27. 2024

내 목소리 기초 공사하기

늦깎이 성우 도전기(13)

  건물을 지을 때 기초 공사를 확실히 해야 더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있듯 목소리도 기초를 닦아야 더욱 단단한 소리를 낼 수 있다. 학원 수업은 이 관점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먼저 학원에 도착하면 매트에 눕는 것부터 시작한다. 불은 꺼져있고 명상을 위한 잔잔한 음악 소리만 들린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세 번째인 나는 자연스레 누워 눈을 감고 호흡을 인식해 본다. 일상에서 내 호흡 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머리끝부터 발 끝까지 모든 긴장을 풀어놓는다. 심지어 얼굴 근육도 풀어버리면, 입이 저절로 헤- 벌어진다. 코로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아랫배가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끼며, 벌어진 입으로 천천히 숨을 내뱉는다. 누워서 하는 복식 호흡은 서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잘 느껴진다. 공기가 몸을 순환할 때마다 더욱 긴장은 풀어지고 정신은 고요해진다.

 

  자신의 호흡을 인식하고 가다듬었으면, 성대와 후두를 풀어준다. 운동을 하기 전에도 스트레칭을 해주듯 목소리를 내기 전에 목을 풀어주는 것이다. 손 끝으로 지그시 눌러 목을 마사지해 주고, 목 주변 근육들을 풀어준다. 혀도 쭉쭉 늘려주고 입술과 입 주변 얼굴 근육들도 크게 크게 움직여 본다. 평소에 말을 할 때 표정 변화 없이 입을 작게 벌리는 것은 자신의 편안함을 위한 것이고, 청자를 배려하는 소리를 내야 하는 성우는 얼굴과 입의 움직임을 더욱 크게 가져가야 한다. 즉, 더 많은 에너지를 써서 소리와 발음을 더욱 듣기 좋게 해야 하는 것이다. '아에이오우'와 같은 모음을 얼굴의 모든 근육을 총동원하여 소리 내는 것은 발음 연습의 기초다.  몇 번 하다 보면 얼굴 전체가 얼얼한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얼얼함이 익숙해질 때까지 계속해서 모음을 내뱉는다. 다시 말을 잘 못해서 옹알이를 하는 아기 때로 돌아간 듯했다.


  호흡과 발음과 발성은 연결되어 있다. 하나만 특출 나게 잘한다고 해서 듣기 좋은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세 가지의 기초가 서로 맞물려서 어우러진 소리가 가장 듣기 좋다. 마치 비빔밥에서 가장 중요한 밥과 고추장, 야채가 잘 버무려져야 최고의 맛을 낼 수 있는 것과 같다. 배로 호흡을 가득 담았으면 내뱉는 기술을 익혀야 한다. 그것이 바로 발성 훈련이다. 소리는 우리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시각화를 위해 손을 활용한다. 이 움직이는 방향에 맞추어 내 목소리를 손에 전달한다. 손이 입에서부터 점점 멀어지고 동그랗게 말아서 내 배꼽까지 떨어진다. 내 목소리도 마찬가지로 손을 따라간다. 이때 내뱉는 소리는 이 사이에서 나오는 '스-' 소리이다. 그러다 익숙해지면 손을 따라 문장을 내뱉는다. 손을 따라가지 못하고 튀어 올라가는 음절을 다시 제자리에 위치시킨다. 굉장히 추상적이지만 연습을 하다 보면 감이 온다. 소리에도 방향이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



  지금껏 말한 앞 단계의 연습이 끝나면, 한 단계씩 난이도가 올라간다. 호흡에서는 배로 천천히 들이마신 숨을 목을 열고 '하!' 소리를 내며 한 번에 내뱉는 훈련이 있다. 나이가 드러나지만 옛날 드라마에 나오던 배우 '최불암'님의 '파~'하며 웃는 소리 유사하다. 단전에서부터 나오는 호흡이 비슷한 느낌을 내는 것이다. 성에서는 목을 최대한 사용하지 않고, 배에서부터 나오는 소리를 멀리 보내는 훈련이 있다. 산 정상에 올라 우리 집이 있는 곳까지 나의 배에서부터 끌어 올라온 소리가 전달될 수 있도록 '야-호'를 외치는 것과 같다. 박명수 님의 호통치는 소리 '야야야'와 비슷한 소리이다. 발음에서는 자음의 조음점을 찾고 입모양을 미리 만들어 소리를 내뱉는 연습이 있다. 목으로 억지로 밀어내어 발음하는 것이 아니라, 혀가 입 속에서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명확히 인식한 뒤 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렇게 탄탄하게 훈련된 목소리는 결국 좋은 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방송에서 들을 수 있는 목소리들은 이런 피나는 훈련의 결과이다. 마이크를 뚫는 목소리의 단단함은 내 고유의 소리가 청중들에게 더욱 매력 있게 전달될 것이다. 내 목소리가 확실히 중심을 잡아야 응용을 통한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다. 마치 구구단을 외운 후에 방정식을 푸는 원리와 같다. 결국 성우는 목소리 연기자이기 때문이다. 들더라도 호흡, 발음, 발성의 기초 훈련 계속 쌓아가야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확실한 기초 공사는 지진과 같은 외부 요인에 흔들림 없이 버텨 낼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기초 훈련이 성우로 다가가는 가장 빠른 길이고, 성우가 되어서도 더욱 넓은 영역에서 활동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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