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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Mar 05. 2024

꿈을 꾸는 데 늦은 나이란 없다.(기초반 수강후기)

늦깎이 성우 도전기(15)

  지난 수요일 기초반의 마지막 수업이 있었다. 처음 시작할 땐 두 달 뒤에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지만, 이젠 확실히 내 목소리의 성장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나 두 달이란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아쉽기만 한 마지막 수업 다가온 것이다. 다행인 건 회사를 다니면서도 8번의 수업을 모두 들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마지막 수업엔 숙제가 있었다. 주어진 독백 대본에 상황을 묘사하고 상대 배역을 설정하여 대사를 만드는 일이었다. 화자와 청자, 배경, 분위기 등 모든 것이 그림이 그려지듯 묘사하는 것이다. 이를 대본 분석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하면 독백 대사라도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동안 성우의 기초인 호흡, 발성, 발음 위주로 공부했다면, 마지막 수업은 연기를 살짝 맛보는 것이었다. 기초반이 끝나면 정식으로 공채 준비가 시작되어 연기 위주로 수업이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역시 성우는 목소리 연기자 이므로 최종적으로는 연기력이 성우의 능력을 대변한다.


  각 학생들이 만든 숙제 대본을 나눠 받았다. 그들이 만들어 낸 대본 속에서 그들의 성향을 잠시 엿볼 수 있었다. 같은 독백 대본을 받아도 만들어진 대화 속 화자와 청자의 성격은 각기 달랐다. 이 각양각색의 대본들을 읽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이후에 이 대본들로 각각 역할을 맡아 연기를 해보았다. 기초반의 첫 연기수업이라 약간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지만, 선생님의 리드로 재미있게 연기해 볼 수 있었다. 이 연기를 하는 동안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면서 내 대본을 읽어 내려가는 것에 바빠 기초로 배운 호흡, 발성, 발음을 미처 의식하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야 진정한 성우로 거듭나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 길은 참 멀고도 어려운 길이란 걸 새삼 느꼈다. 그래도 연기 수업에 흥미를 느낀 나는 수업 시간 동안 어떠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했다. 화를 내는 연기로 스트레스도 풀리는 것 같았고, 웃는 연기는 실제로 엔도르핀이 도는 듯했다. 연기에 깊게 빠지면 감정을 주체하기 어렵다는 어느 배우의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이렇듯 연기의 맛을 보며 기초반의 두 달 과정이 막을 내렸다. 첫 수업을 들을 때의 내 마음가짐은 이러했다.


'성우라는 꿈을 갖기엔 너무 늦은 나이가 아닐까?'

'같은 반 친구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건 아닐까?'

'고작 두 달의 수업으로 내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까?'


그러나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이러한 질문들은 나의 기우에 불과한 것이라는 걸 점차 깨달을 수 있었다. 서른여덟의 나이에 성우라는 꿈을 가졌다고 해서 열정이 그만큼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고, 나이를 보지 않고 공채를 모집하는 방송사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꿈을 꾸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 이번 기초반 수업을 통해 성우라는 꿈이 더욱 단단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같이 수업 듣는 반 친구들은 확실히 어렸다. 고작 스물 남짓한 나이였고, 새내기 청춘들이었다. 하지만 난 그들이 부러웠다. 일찍이 자신의 꿈을 확실히 정해 놓고 빠르게 시작하고 있으니 말이다. 처음엔 어색하고 데면데면했지만, 수업을 들으며 점차 가까워졌다. 함께 수업을 듣는 수강생으로 같은 위치에서 그들과 소통할 수 있어 좋았다. 누군가는 친구들이 수업 때 배운 걸 해보라며 놀린다고 말했고, 군가는 자신의 소심한 성격을 극복하고 있다고 용기 내 얘기했으며, 누군가는 수업을 통해 힐링하고 있다며 자기 치유를 언급했다. 그리고 난 팍팍한 직장생활과 힘겨운 육아생활 속에서 오롯이 성우지망생으로만 있게 하는 이 시간들이 너무 재밌고 행복하다고 고백했다.


  두 달간의 수업으로 이전에 비해 모든 수강생들의 호흡이 안정적으로 길어졌으며, 발성은 뚜렷해졌고, 발음은 명확해졌다. 확실히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선생님은 우리의 목소리만 듣고도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짚어주셨고, 바른 소리를 낼 수 있도록 유도해 주셨다. 다른 수강생들과 나의 피드백을 비교해 보며 무엇을 잘하고 있고, 무엇을 못하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판단해 볼 수 있었으며, 내가 부족한 부분은 어떤 연습으로 메꿔나가야 할지도 알게 되었다. 이것이 이 기초반 수업의 가장 큰 수확이라 할 수 있겠다. 기초반은 겨우 두 달 과정이고 앞으로는 공채 준비를 위한 연기 위주로 수업이 진행될 것이므로, 이후 수업은 기초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기초는 틈틈이 스스로 연습해 나가야 하는 자기와의 싸움인 것이다.



  기초반 수업은 이렇게 끝이 났지만, 기초 연습은 지속적으로 쌓아가야 한다. 선생님은 기초가 튼튼하면 성우의 길로 더 빨리 갈 수 있고, 성우가 되어서도 연기의 스펙트럼을 더욱 넓힐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어떤 것이 부족한 지를 확실히 인지하였기에 이젠 내가 얼마나 꾸준히 노력하는지에 달렸다. 다음 수업부터는 초급반이다. 선생님도 달라지고, 수업의 형태도 달라질 것이다. 이제부터 공채 준비에 돌입하는 만큼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겠다. 꿈을 꾸는 데 늦은 나이는 없다는 것, 나의 열정이 꿈을 이루는 데 필수적인 원동력이라는 것 그리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은 언제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앞으로도 잊지 않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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