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똥이애비 Apr 19. 2024

9년 동안 함께 일하던 직장동료가 이직했다.

"우리의 관계는 계속 이어지길..."

  내가 막 신입의 티를 벗어나려던 직장생활 3년 차에 새로운 신입사원이 입사했다. 팀에서 동기가 없던 나는 외롭게 막내로서 선배들의 뒤를 따랐었는데, 새로운 막내가 오자 나는 괜히 반가우면서도 어설픈 선배 역할을 맡았다. 그 후배 사원은 신입으로 우리 회사에 입사하였지만, 사실은 다른 회사에서 경력이 3년 정도 있었다. 결국 사회생활로 치면 동기와 가까운 것이었다. 어쩐지 그에게 선배다운 모습을 보여주려 해도 뭔가 먹히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긴 했었다. 그 후배는 빠르게 우리 회사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가끔씩은 오히려 내가 그에게 기댈 때도 많았다. 나이도 내가 3살이나 많았지만, 서로 도와주고 도움받는 공생의 관계가 되고 나서 우리는 평등하게 친해질 수 있었다. 실제로 회사 밖에서도 만나 우정을 나누었고, 함께 여행도 다녔다. 그렇게 그와 나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사회생활에선 진정한 친구를 사귈 수 없다는 말은 내게 해당되지 않았다. 우린 함께 힘든 회사생활을 이겨내며 더욱 끈끈해졌다. 퇴근해서는 헬스장에서 함께 운동하며 취미생활을 공유했고, 업무가 순조롭게 마무리되면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후련한 마음을 나눴다. 서로 총각일 때 만나서 각자가 결혼하는 과정을 축하해 줬으며, 힘든 일이 생겼을 땐 서로의 집에 찾아가 소주 한잔 기울이며 축 처진 어깨를 토닥였다. 그렇게 쌓인 추억의 세월이 어느새 9년에 접어들었다. 그는 이미 회사 동료 이상의 친구 사이가 되어 있었고, 내 인생에선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로 자리 잡았다. 그와 함께 같은 회사에서 은퇴할 때까지 계속 일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건 너무나 익숙해진 관계 때문이었을 것이다. 회사가 기울어지고, 그의 가정이 기울어지자 그는 이직을 결심했다. 어느 날, 그가 내게 말했다.


"나 드디어 이직에 성공했어!"

"그래? 축하해! 그때 면접 본다고 하더니만, 결국 최종 합격 했나 보네?"


나는 웃으며 그의 이직을 환영했다. 사실상 회사가 어려워지고 있었고, 자연스레 인력들이 다른 회사로 빠져나가고 있는 실정이기도 했다. 침몰하는 배에서 같이 부등 껴안고 있어 봤자 둘 다 죽고 말 테니 차라리 한 명이라도 구명보트를 타고 있으면, 침몰하는 배에서 뛰어내렸을 때 구명조끼라도 던져 줄 수 있지 않을까. 정말 잘 됐다고 생각했다. 그의 연봉도 올랐다고 했고, 새롭게 일하게 될 회사의 미래 비전도 훨씬 더 뚜렷해 보였다. 또한 한 직책에서만 계속해서 일하던 그에게 번아웃과 매너리즘이 동시에 왔었기에, 새로운 환경에서 일하게 되는 상황 자체에 기대를 많이 하는 듯했다. 그가 새로운 기대와 희망으로 벅차올라 있을 때, 나의 마음 한 켠에서는 뭔가 쓸쓸함이 돋아나고 있었다.


  분명 축하하고 잘 된 일인데, 내 마음이 쓸쓸해지는 것은 소중한 친구와 멀어질 것 같은 불안감에서 오는 거라 생각되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내보다 더 많은 시간을 회사에서 함께 보내왔는데, 이제 한 달 뒤면 그의 빈자리가 엄청나게 크게 다가올 거라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처음엔 벅차겠지만, 나는 어느새 또 적응하고 회사생활을 이어갈 테다. 그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동료들과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쌓은 9년의 추억들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하고 기억의 끝자락으로 점차 희미해질 것이다.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해지자 씁쓸하고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회사 선배들이 나에게 오히려 괜찮은지 걱정하며 물어보는 것 또한 내가 그와 가까이 지내왔던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아내조차 내 마음의 동요를 읽은 듯했다.


"후배가 이직한다니까 서운해? 요즘 왜 이렇게 집에 오면 우울해져 있어?"

"아... 그냥, 이제 회사에서는 못 본다고 생각하니까 심심할 것 같네. 하하."


  그에게 이런 나의 씁쓸한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를 부담스럽고 찝찝한 기분으로 만들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바라는 건 9년간의 회사생활을 아무런 미련 없이 홀가분하게 잘 털고 갔으면 하는 것이다. 분명 그에게 잘 된 일이므로, 나에게도 잘 된 일이다. 운명의 수레바퀴가 언젠가 또 그와 함께 일하도록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우린 평생의 친구로 남을 것이다. 언젠가 그와 함께한 가족모임 술자리에서 이런 얘기들이 오간 적이 있다. 내 아내가 말했다.


"아니, 그렇게 친하면 그냥 형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아요?"


그가 내 눈치를 보는 듯했고, 내가 답을 대신했다.


"회사에서 만난 관계라 좀 그렇지 않을까? 난 별로 상관없지만, 회사에서 보는 눈도 있고..."

"그럼 사적으로 만났을 때만 형이라고 부르고, 회사에서는 직급 붙이면 되잖아."

"뭐 그래도 되긴 하지... 편하게 불러 그냥, 어차피 우리 사이에..."


하지만 그는 여전히 지금까지도 직급으로 나를 부르고 있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렇게 불러서 그냥 그게 편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그가 다른 회사로 가버리면 이제 더 이상 회사 선후배 사이는 없는 것이다. 굳이 나를 직급으로 부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젠 정말 그가 편하게 나를 부르고, 나 또한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회사 관계라는 끈이 사라졌으므...


  그가 이 회사에서 남아 있는 일들을 정리하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마치 군대 전역을 앞두고 있는 말년 병장의 모습이다. 그러고 보니 군대 동기도 2년 동안 그렇게 친하게 지냈었는데, 막상 전역하고 사회에 나오니 연락이 금방 끊겼다. 분명 그와도 그렇게 각자가 다른 회사에서 고군분투하다 보면, 연락이 뜸해질 것이다. 이전 직장 동료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하나씩 관계가 정리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난 그저 잊힌 이전 직장 동료가 되고 싶지는 않다.  그러므로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선 노력이 있어야 한다. 수시로 연락하고, 모임도 정기적으로 가져야 우리의 특별했던 관계가 쭉 꾸준히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회사라는 끈 없이 사람 대 사람으로 우린 진정한 친구로 나아갈 수 있다. 오래된 친구는 언제 만나도 좋은 것이니까. 이 헤어짐으로 인해 더욱 그와의 관계가 단단해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렇게 믿고 그를 홀가분하게 잘 보내주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최선이 여겨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