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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망심리 Dec 10. 2023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마망심리 사례24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속담이 있다. 여자의 한이 남자보다 지독하다는 것을 표현하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왜 여자의 한은 서리를 내리게 할 정도로 지독한가? 이 속담을 잘 들여다보면 어떤 것이 전제되어 있다. 여자가 한을 품은 이유는 아마도 남자에게 배신을 당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를 믿고 사랑했는데 남자가 배신을 하자 한을 품게 되었다. 이때의 한(恨)의 뜻은 사전에 따르면, ‘몹시 원망스럽고 억울하거나 안타깝고 슬퍼 응어리진 마음’이다. 자신은 온 정성과 마음을 다하여 남자를 사랑했는데 그가 떠나자 그녀는 억울하다. 그 이유는 자신의 마음을 남자가 몰라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 결과 마음에 응어리가 지고 화병이 생긴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분명히, 사랑하던 남자인데 그가 배신하자 그녀는 오뉴월인데도 서리가 내릴 정도의, 간담이 서늘한 한을 품게 된다. 사랑한다면 배신해도 계속 사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사랑하던 대상이 떠나버리자 그를 향하던 사랑이 미움으로 바뀐다. 왜 사랑이 미움으로 바뀌는 것일까? ‘사랑하는 남자가 배신을 하니까 당연히 미움이 생기지!’라고 말한다면 정신분석이 필요 없다. 정신분석은 당연함을 설명해내는 일종의 논리학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배신하면 왜 계속 사랑하지 못하고 당연하게 미움이 생기는 것일까?



프로이트는 「애도와 멜랑콜리」라는 논문에서 이것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것의 핵심만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리비도를 투여한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럴 때 정상적인 사람은 몇일 고통스러워하다가 상실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잃어버린 대상을 자기 속으로 들여와서 자신과 동일시한다. 대상을 자기 속으로 가져왔기 때문에 대상을 계속해서 사랑하고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 속으로 받아들인 대상을 이물질처럼 여기면서 죽음욕동(타나토스, Thanatos)의 화신인 초자아가 그것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자아는 이미 대상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그것은 자기가 자신을 공격하는 것이므로 그것은 자기 비난으로 드러난다. 이 자기 비난이 극에 달하면 자신을 포기하고 자살에 이르게 되는데 이것이 멜랑콜리, 즉 우울증이다. 



그렇다면, 앞에서 우리가 말하던 한을 품은 여자는 어디쯤에 있는 것일까? 그녀도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했다. 남자의 배신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하자 대상으로 가던 리비도를 자신으로 되돌린다. 이때 성적 에너지가 탈성화된다. 여기서 ‘탈성화’란 성적 결합을 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자기애적인 것으로 돌린 리비도 투여는 자신이 대상이기 때문에 성적 결합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때 욕동이 분리되면서 죽음 욕동이 모습을 드러낸다. ‘중립화된 리비도’가 공격성의 속성을 지닌 죽음의 욕동과 결합하여 떠난 남자를 ‘미워하고 한’을 품게 된다. 이 죽음욕동이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지독한지 오뉴월에도 서리를 내리게 할 정도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욕동이 분리가 된다면 이전에는 욕동이 결합되어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다면, 또 다른 욕동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에로스(Eros)이다. 사랑하는 대상에게 가던 리비도에는 겉으로는 에로스(삶의 욕동)라는 욕동이 투여되지만 동시에 그 이면에는 죽음의 욕동인 타나토스(Thanatos)가 함께 투여되고 있었다. 에로스가 죽음욕동을 포섭하기 때문에 그것이 드러나지 않다가 사랑하는 대상을 상실하게 되자, 리비도를 자신에게로 되돌릴 때 욕동의 분리가 일어나면서 죽음욕동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죽음 욕동이 앞에서 말한 탈성화된 욕동과 결합하면서 미움이라는 공격성으로 대상을 공격하는 것이 바로 오뉴월에 내리는 서리다. 


이 둘의 차이가 있다면, 멜랑콜리(우울증) 환자가 ‘자신과 동일시한 대상’을 죽음욕동을 대변하는 초자아가 공격함으로써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반면, 한을 품은 여자는 대상을 자기 속으로 들여오지 않고 밖에 둔 채로 대상을 공격하며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릴 정도로 미워하며 원망을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한을 품은 여자는 멜랑콜리 환자처럼 자살에 이르지 않는다. 공격성이 자신이 아니라 밖에 있는 대상에게 오뉴월의 서리로 내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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