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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 지 Feb 02. 2023

어머니들의 어머니

결혼하기 전엔 별로 세상과 부딪혀 싸울 일이 없었다. 가족끼리의 일상이야 다른 집과 마찬가지였고 잘한다,  애쓴다, 섭섭하다 정도의 말을 주고받을 뿐 특별한 일은 거의 없었으니 가끔 생기는 엄마와 나, 형제들 간의 소소한 분쟁은 쉽게 답을 찾곤 했었다.


결혼을 하면서부터 조금씩 복잡한 상황이 시작됐다.


시어머니와 나와 내 엄마.


엄마와 나, 둘 일 때는 몰랐던 사실들을 하나하나 부딪히며 배워가는 세상의 시간이란 것은 길면서 조금은 고통스러웠다.


나의 세계가 나와 엄마와 시어머니의 영역으로 나누어지면서 생긴 공백 안으로 새삼스럽고 거친 불화가 반복되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남편의 세계 셋으로 나누어졌다.

남편과 남편의 엄마와 나(의 어머니).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이 집안살림과 독박육아를 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절이었고 남편과 남편의 어머니는 옛날부터 집안일은 여자들의 일이었다고 했다. 

아파서 병원에 다녀왔던 어느 명절날은 시누이와 함께 '명절날 아픈 미ㅊx'이라며 공허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셨다.

힘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직장일, 어린 아들과 딸, 끝이 나지 않는 집안일을 다른 사람들은 잘 감당하며 사는데 나만 못하는 건가 싶어서 몸도 마음도 함께 망가져갔다.


엄마는 그런 나를 안타까워하시며 도와주셨다. 내가 아플 땐 약을 챙겨다 주셨고 내 아이들을 돌보아주셨다.

그런 내 엄마조차도 못마땅해하시는 시어머니와 남편이었다.

두 사람이 나를 지칭할 때는 두 가지 유형의 단어로 대체되기도 했다.

'선생이라며...(그런 것도 못하냐)'

'선생이라고....(아는 척을 하는구나)'


시댁과는 멀리 떨어져 살고 있었기에 고부갈등의 시간도 일 년에 몇 번을 참고 넘기면 되는 일인 데다가 유교질서 안에서의 고부관계는 가정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하기도 했었고 나의 부모님도 내게 잘 참으며 화목하게 지내라 말씀을 하셨기에 한동안을 버텨보았지만 갑작스러운 시어머니의 병환으로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런 불일치와 남편의 침묵을 더 이상은 받아들일  없게 되었다.


어느 날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말하자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말이 나왔다.

현대여성이라면 직업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법이라고.

집안일과 직장일을 병행할 수 없으니 불가능하다고 말하면 옛날 여자들은 다 하던 일이었다는 괴이한 답이 반복되어 돌아오던 그날 나는 그냥 눈을 질끈 감고 선언을 했다.


"이제 안 할 거예요. 해도 야단치시고 안 해도 야단치시는데 그냥 어머니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야단맞을래요!"


남편도 시어머니도 당황을 했다.


시동생집으로 내려가시면서 시어머니는 내가 너무 '진실해서' 문제라고 하셨다.

그냥 말이 그랬을 뿐이고 그저 선생 며느리가 대견하고 손주들이 예뻐서 하는 말인데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여 부담스럽다고 한차례 더 지적을 하셨다. 


자초지종을 말씀드린 날 나의 엄마도 아버지도 그에 대해서 더 이상의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상담을 공부할 때, 교수님이 하셨던 말이 었다.

'기혼인 여성분들은 처음에 시어머니와의 불화로 상담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가 상담이 진행될수록 원가족과의 문제를 들여다보게 됩니다. 대부분.'


내 친정엄마가 시어머니의 입장으로 동생댁을 대하는 것을 보던 어느 한 때, 아마도 여자들의 문제는 여자들이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깊이 인정하던 그 순간부터 시어머니에 대해 노여움도 섭섭함도 죄책감도 접어둘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남편에 대한 섭섭함도 그래서 그때부터 접어둘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다독여주는 법을 알지 못했고 본 적도 없고 배운 적도 없었던 삭막하고 적막한 시절을 탓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어서. 그래도 순간순간 섭섭함을 말하는 것을 멈출 수는 없어서 내가 그 시절 이야기를 말하면 남편은 슬그머니 안방 구석으로 몸을 숨긴다.


친정엄마가 된 시어머니와 시머니가 된 친정엄마는 같은 사람이었는데도 이상하게 두 세계를 합치려 하지 않았었다.


세 사람의 엄마.

내 엄마와 시어머니와 그리고 내 아이들의 엄마가 된 나.


나는 자주 세 명의 엄마에 대해 생각을 한다.


어머니들의 어머니들이 그 딸들에게, 아니 세상 전부인 그의 아들과 딸들에게 물려주고 싶었던 세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지병과 노환과 치매로 돌아가신 시어머니의 어머니 이야기 속에도

지병과 노환과 치매로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신 엄마의 어머니 이야기 속에도

꼼짝할 수 없이 꽉 막혀있는 그 시대의 상황과 아픔이 들어있었다.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영화 헤어질 결심에 나오는 서래의  대사를 그래서 이 순간만큼은 나의 어머니들이 마침내 가지게 되었고, 내가 마침내 가지게 될 '늙은 엄마'를 향해  건네보곤 한다.


내가 나의 어머니들이 스스로에게 묻기를 원했었기에 길고 어려운 숙제가 되어 기어이 나에게 돌아오 말이기도 하다.


'내가 그렇게 나빴습니까?'


내가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말은 어떻게 들리고 있을까? 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보이고 있을까?


순간순간을 여행하듯 보내며 잠시 멈추고 오래 생각하면서 가끔 묻고 싶어지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혹시 나빴습니까?'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내가 훌쩍 여행을 떠날 수 있게 용기를 준 이 영화가 좋았다.


 
* 머무르는 일보다 더 힘든 것은 떠나는 일이다.


* 파괴는 선물이야. 파괴가 있어야 변화가 있지.


* 신은 내 모습 그대로 내 안에 존재한다. 신은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는 무관심하다.


* 많이 아프다는 건 많이 노력했다는 거야.


* 때로는 사랑 때문에 균형을 깨는 것도 균형 있는 삶을 살아가는 과정이에요.


* 본성의 힘은 중력의 법칙처럼 실재하는 것이다. 편안하고 익숙한 모든 것으로부터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을 때,  그게 집이든, 감정의 응어리든, 외면의 것이든, 내면의 것이든 진리를 찾아 여행을 떠났을 때,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것을 깨달음의 과정으로 여기고 마주치는 모든 이들에게 배우고자 하는  자세를 가질 수 있다면 무엇보다도 인정하기 힘든 자신의 모습을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진리는 당신에게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조금은 아쉬움을 남긴 채로 그만두었던 학교의 마지막 한 학기를 에필로그로 채웠으므로 정말로 모든 미련은 다 덜어낼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 마음 편하게 엄마의 여행을 하라는 아들과 딸과 남편의 답을 받으면서 난 내 어머니들과 그분들의 어머니에 대해서, 어머니로써의 나에 대해서 사색해 보는 또 하나의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그게 내가 나 자신과 화해에 이르는 길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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