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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 지 Feb 10. 2023

오래된 회색빛 바위 위에 앉아

 

세 곳의 학교에서 신학년도 기간제 교사 제안을 받았다.

작년 마지막 학기를 끝으로 미련 없이 정리를 하리라던 마음이 순간 복잡해지다가 먼 곳으로 여행을 갈 계획이 있다고 말하며 거절을 했다.


아직 젊은데 아무 일도 안 하고 아까운 시간만 보내느냐며 넌지시 꾸중을 하시는 선생님 한 분에게 웃으며 말했다.


'세평 밭에 상추나 세 포기 키우면서 살래요.'


그러다 나이 들면 그냥 보낸 시간이 아까워서 어쩔 거냐고 다시 한번 꾸중이 돌아왔다.

'그땐 상추 다섯 포기는 키울 수 있게 되겠지요.'


입으로 쌓은 업이 돌고 돌아 나를 휘감아 손을 놓게 된 학교에 대해서는 더 말할 수 없었다.


88 올림픽이 열리기 전이었던 나의 대학시절엔 빈부의 격차가 그다지 크지 않았었다. 평균적으로 다들 어렵게 살고 있었다고 하면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같은 과에서 공부하던 나보다 나이 많은 신입생 한 분이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건 젊은 교사의 헌신 하나죠! 난 젊을 때 장애인들을 위해 많이 헌신할 겁니다. 나이 들기 전에 떠나야죠!' 하고 단호하게 말하는 걸 듣던 날 아마 나도 그런 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윤리 담당을 하시던 담임선생님은 '바쁜 꿀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는 급훈 액자를 벽에 걸어두고 밤 열 시까지 자율학습을 시키셨고 일찍 도망가는 학생들은 여지없이 잡혀가 야단을 맞았었다. 학생들이 귀가하기 전 밤 열 시까지 선생님들이 숙직실에 모여서 하신다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나는 조금 반항을 했었다. 화투판이 펴진 숙직실로 학생들을 부르지나 마시지... 내 마음이 선생님께 전해졌고, 선생님은 '네가 어른이 되면 알게 될 거다'는 말로 답을 대신하셨었다. 그 선생님에 대한 실망감과 아마도 고아원에서 자라서 어렵게 공부를 시작하셨던 후배님의 뜨거운 신념의 말이 합체되어 마음속에 새겨졌을 것이었다.


그런 데다가 '네가 선생이냐?' 자주 되물으시던 시어머니의 말이 덧입혀졌으니 재직기간 내내 나는 필연적으로 불일치할 수밖에 없는 나의 '말'과 '행동'에 대해 자주 생각하곤 했었다.


스스로에 대해 반추하는 시간을 보내며 숨 막혔던 시간들을 다시 떠올리게 되던 지난 학기를 마치고 난 뒤 나는 아주 자신 있게 '앞으로는 상추 세 포기만 키우며 살겠다'라고 선언을 하고 있지만 그런 나의 종료 선언을 '성급한 것 아닌가' 물어주는 사람들이 사실은 조금 고맙기도 하다.


글 쓰는 일하고 상추 키우는 일만 하겠다고 말할 때 친구가 '책은 언제 낼 거냐?' 물었다.

책은 무슨... 글은 그냥 쓰는 거야. 단지 혼자 글을 쓰다 보면 산으로 가는 건지 바다로 가는 건지 종종 길을 잃곤 하니까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서 나름대로 내 글에 대해 타인의 시선을 유지하려고 하는 거고.

내가 쓰는 글의 독자는 아들하고 딸, 둘이면 되거든. 엄마가 허우적거리면서 살았어도 나름대로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이다음 어느 한순간에 읽어주고 알아주고 그랬으면 하는 마음이라서...


친구도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왜냐하면,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 '충고와 답변'을 알려준 것이 바로 그였으므로.


Expostulation and Reply  


"Why William, on that old grey stone,

Thus for the length of half a day,

Why, William, sit you thus alone,

And dream your time away?


"Where are your books?—that light bequeathed

To Beings else forlorn and blind!

Up! up! and drink the spirit breathed

From dead men to their kind.


"You look round on your Mother Earth,

As if she for no purpose bore you;

As if you were her first-born birth,

And none had lived before you!"


One morning thus, by Esthwaite lake,

When life was sweet, I knew not why,

To me my good friend Matthew spake,

And thus I made reply:


"The eye—it cannot choose but see;

We cannot bid the ear be still;

Our bodies feel, where’er they be,

Against, or with our will.


"Nor less I deem that there are Powers

Which of themselves our minds impress;

That we can feed this mind of ours

In a wise passiveness.


"Think you, ’mid all this mighty sum

Of things for ever speaking,

That nothing of itself will come,

But we must still be seeking?


"—Then ask not wherefore, here, alone,

Conversing as I may,

I sit upon this old grey stone,

And dream my time away."


"월리엄,  

그 오래된 회색빛 바위 위에

온종일 홀로 앉아서

 세월을 꿈꾸며 허비하는가?


인류가 이어받은 빛, 그 책들은 어디에 두고.

책이 없으면 인류는 눈이 멀어 암담해질 뿐이니

일어나라, 일어나! 먼저 간 이들이 우리에게

불어넣는 그 넋을 들이마셔라.


는 어머니인 대지를 둘러보고 있구나.

마치 대지가 아무런 뜻도 없이 너를 낳은 것처럼,

마치 네가 대지의 첫아들이고

에 앞서서 아무도 살지 않은 것처럼."


어느 날 아침 에스웨이트 호숫가에서,

왠지 인생이 즐겁게 느껴졌을 때

나의 진실한 벗 매튜가 말했었지.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눈은 오로지 보는 일을 할 뿐

귀에게 듣지 말라 할 수는 없는 법이야.

우리의 몸이 어디에 있든,

싫고 좋은 일은 따르는 법.


또한 나는 우주 안에 여러 힘이 있음을 느끼나니,

그 힘은 저절로 우리 마음에 새겨지는 법.

따라서 그것을 슬기롭게 받아들임으로써,

영혼의 양식이 되는 법.


그대 생각엔 끊임없이 말하고 있는

이 장엄한 삼라만상에게서

일부러 찾지 않아도

저절로 느껴오는 것이 조금도 없단 말인가?


그렇다면 묻지 말게나. 왜 여기서 홀로

그대가 모를 교제를 나누며

내가 이 오래된 회색빛 바위 위에 앉아

내 세월을 꿈꾸며 허비하는지."





복잡한 일이 생겼다며 전수조사에 참석해 달라는 감사팀의 연락을 받았다.

퇴직자에게 연락할 일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와 달라 요청하는 장소가 우연처럼 집 앞에 있어서 출석을 했었다. 별로 특별한 일이 아닌 몇 가지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 난 또 어쩔 수 없이 젊은 감사팀원 두 명에 대해 마음이 애잔해져 버렸다.

그쪽도 나를 향해 무언가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듯, 간혹 퇴직하신 선생님들 중에는 좀 더 현장에 계셔주었어도 좋았을 것 같은 분들이 있는데 나도 그중 하나라고 공손하게 말해주었다. 나도 감사하다고 대답을 했다.


딸이 웃으며 놀렸다.

 '아하, 그런 감사받았구나, 엄마!'


뜨개질을 하다 풀어낸 양모실로 베짜기를 시작했다. 재활용한 실이 꼬불꼬불하니 초보자가 만든 완성품도 어찌할 수 없이 삐뚤빼뚤이다. 고급 실로 엉성하게 만든 목도리를 두르고 동유럽 한달살이 계획을 세우고 있다. 친구들은 격려를 해 주지만 가족들은 걱정해 주는 여행. 혼자 떠나는 여행은 이제 이걸로  마무리하는 걸로 조용히 마음먹고 있는 건 아직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어떤 마음의 준비든 긴 시간이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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