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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 지 Mar 21. 2023

왜 그러세요?

버스를 타고 조금 이른 시간에 공항에 도착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천으로 향하는 직항노선이고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한 달 전 바르샤바로 올 때와는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탑승 대기실에 모여있었다. 당연히 한국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그래도 외국인들이 훨씬 많았다.


내가 앉은 대기실 의자 주변에 단체로 이스라엘을 다녀오시는 중이라는 대화를 나누시는 나보다 약간 윗 세대로 보이시는 어르신 부부 세 팀이 있었다.

어찌해 볼 수도 없이 이 분들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바로 옆에서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누시는 분들의 우리나라 말로 하는 대화 내용이니... 아마도 성지순례를 다녀오시는 듯했다. 일요일이니 일행 중에 목사님이 계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스라엘.. 은혜.. 그런 단어가 들렸고 한 여성분이 대기실 의자에 고단하게 누워계셨다.


"어이!~"

뒤편에서 이런 소리와 함께 한 남자 어르신이 내 옆 빈자리에 와서 앉으시며 맞은편에 앉아계신  분을 향해 물었다.

"지금 몇 시야?"

"지금이요?'

맞은편에서 여자 어르신께서  되물으시고 한 호흡 뒤에 대답하셨다.

"열한 시요!'

"여기 가방 좀 잘 지켜. 나 화장실 다녀오게. 여기 여기 있는 게 우리 가방 맞지?"

그분은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가방을 가리키며 말씀하시고 사라지셨다가 잠시 후 돌아오셔서 또다시 내 옆 자리에 앉으시며 아까처럼 똑같이 앞을 향해서 물으셨다.


"어이! 지금 몇 시야?"

아마도 그분의 아내이실 분께서 다시 대답하셨다.

"지금이요?'

'열한 시 십 분이요!"


"내가 말이지, 카운터에 가서 우리 좌석을 뒷자리로 바꿀 수 있는지 물어봤는데 말이야, 오늘 만석이래. 무슨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왔나 몰라. 죄다 한국 가는 거야? 이 사람들이?"

그분은 질문인지 대답인지 모를 말씀을 계속 혼자서 하셨다.

"아무튼 자리가 만석이라 자리를 바꿀 수도 없대. 큰일이네. 우린 누워서 가지도 못하게 됐어"

다른 분들은 조용히 그분의 말씀을 듣기만 했다.

"무슨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지 원..."


난 그분이 목사님이 아니기를 바랐다.

그리고 이런 대화가 내 귀에 들리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했다.


지난 한 달 동안 이런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 있어서 내 귀가 편안했던 건 정말 행복한 일이었다.


"아무튼 엠제트 세대, 얘들이 정말 문제야 문제. 큰일이야..."


일어나서 다른 자리로 갈까?

하고 싶은 말을 해버릴까?

'네? 엠제트 세대가 왜요? 그 아이들은 최소한 시간은 볼 줄 알던데... 지금 이 자리에서 갑자기 뭐 때문에 엠제트세대가 문제가 되는 걸까요?'


묻고 싶었지만 입을 꾹 다물고 아들 딸에게 카톡을 보냈다.


'지금 몇 시야?'

'비행기가 만석이라 편한 자리로 못 바꿔준대'

'누워갈 수 없어 큰일'

'엠제트 세대가 문제'

 이 말들의 상관관계와 맥락을 나는 모르겠지만 듣고 있는 것이 불쾌하구나. 이런 말을 매일 듣는 너희들 정말 고생이 많겠다는 거 오늘 갑자기 깨닫는다.  니들이 문제라고 이 공항 대기실에서 목사님이 아니면 좋을 것 같은 어르신이 또박 낭랑하게 설교하시듯 말씀하시는데 난 이 맥락 없는 말씀을 하시는 어르신한테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앉아있다.

니들 진짜로 고생이 많구나... 미안하네..


두 아이가 깔깔 웃었다.

말하지 마 엄마, 아무 말도 하지 마. 엄마 같은 사람이 키운 엠제트가 문제라고 엄마도 야단맞아...


아 정말...

엠제트 세대인 내 아들 딸, 그리고 내가 아는 모든 엠제트 세대는 비행기 자리 만석이라고 화 안내고요, 그리고 시계도 혼자 볼 줄 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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