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대부분 사람들의 표정을 예민하게 읽는다.
아가 때부터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기억하는 것 같은데, 그 미세한 눈빛과 눈 근육의 움직임이 내포하는 감정들을 나름의 정보처리 과정 안에 두텁게 입력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자신을 바라보는 상대의 눈에 담겨있는 것이 근심인지, 조롱인지, 동정인지, 비난인지, 친절함인지, 가여움인지, 두려움인지를 안다. 때로는 부정적인 감정을 애써 감추며 거짓으로 친절하게 대할 때도 아이들은 그 마음을 읽는 것 같으나 그런 가장된 친절함 정도는 또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자신에게 친절함으로써 상대가 받게 될 정서적 위안에 대해 멋진 미소로 화답을 주기도 한다. 때로 그런 거짓의 친절로 아이들을 대하고 난 뒤 엄청난 부끄러움이 밀려올 때도 있긴 하지만 그로써 다 되었다. '불친절함'보다는 가장된 모습이라 해도 '친절함'이 혹시 모를 실수를 막아주는 길일테니까.
드물었지만 자신이 사람의 마음을 읽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아이도 있었다. 어떤 눈빛과 시선처리 속에 담긴 특정한 사건이나 사연을 재빠르게 읽어내는 아이가 있었다.
오래전의 일이었다.
간밤에 남편과 심한 말다툼을 하고 난 뒤 아침이 되어서 아이들을 학교에 챙겨 보내고 분주히 출근을 하던 어느 날 아침,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설 때 빈 교실에 먼저 와있던 한 아이가 '안녕~ 00이, 일찍 왔네?' 하고 인사하는 나를 향해 고개를 갸웃갸웃하면서 갑자기 툭 한마디를 던졌다. '선생님, 남편 있어? 결혼했어?'
정서장애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아이는 그날 아침 문을 열고 교실에 한 발자욱 들어서는 나에게서 순간적으로 '부부싸움'을 한 다음날 조금 진정이 덜 된 '아내'의 그림자를 읽어버린 것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예상 못했던 상황을 겪어나가다가 매 순간마다의 내 그림자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되는 습관이 생긴 것이 그때부터였다.
예상 못했던 인연으로 만났던 A도 마찬가지였다.
자폐성장애인 A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했지만 주변 사람들의 대화를 다 듣고 이해하며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훌륭하게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었으므로 유치원과 초등학교 1, 2학년시기까지 무척 밝고 순하고 활기 있게 지냈다. 그러다가 3학년이 되면서부터 적응에 어려움이 나타난 A는 수업 참여를 하기 싫어했고 공부를 도와주는 선생님들에게 조금 심한 도전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처음 만나던 날 5학년의 A가 나를 보는 눈빛 속에서 몇 년 전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를 보며 부부싸움의 기운을 읽어내던 아이가 보였다. A는 나의 눈빛과 미소를 단박에 간파한 듯 보였으나 언어표현을 할 수가 없었으므로 그저 말없이 오랫동안 나를 관찰하기만 했다.
아이와 나는 무척 심한 몸살을 앓는 것과 다름없는 폭풍 같은 두어 달 여를 보냈는데 A의 도전행동은 생각보다 심해서 주변 사람들을 아프게 상처 내고 스스로가 그런 행동을 했다는 데 대한 좌절감에 또 힘들어하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맑게 흐르는 개울물 같은 아이였다. 너무 맑은 개울물. 그러나 깊이가 너무 얕아서 낙엽 한 장이 덮여도 길을 잃고, 햇빛이 뜨거워도 금세 말라버리고. 바람 한줄기에도 말라버리는 그런 물. 그러니 큰 소리가 나도, 하루의 규칙이 깨져도, 잠을 못 자 피곤해도, 배가 고파도, 배가 불러도, 음식이 맛이 없어도, 음식이 너무 맛있어도, 놀이가 재미있어도, 놀이가 재미없어도 와르르 흔들리는 예민함이 아이의 일상을 어지럽게 흔들고 있었다.
그런 감각적인 예민함이 어느 정도 가라앉으면 아이는 선량한 마음으로 눈앞의 세상을 보고 배우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그 앞에 '교사'로 서 있는 내가 교과서라도 된 듯 나를 보고 따라 하곤 했는데 내가 어떤 아이의 행동에 대해 꾸짖기라도 하면 그 아이를 잘 보고 있다가 그와 가까이 있게 되는 순간이 되면 놓치지 않고 무섭게 덤벼들기도 했다.
친구들의 권태를 배우고, 분노를 따라 하고, 나쁜 사람들 때문에 괴로워하는 아이는 사랑만이 아닌 세상을 알아가는 날마다의 시간들을 그렇게 괴로워했다.
아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 예민함으로 날마다 나를 관찰하는 아이 옆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나를 보는 일뿐이었다.
내가 올곧지 않으면 아이가 괴로워했으므로 온전히 나를 들여다보는 일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런 아이가 하나 있었다.
아니, 내가 만난 아이들이 모두 다 그런 아이였다.
그런 아이들이 있었다.
흩어진 나의 파편들을 모아 온전히 하나가 되도록 이끌어 준 아이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