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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 지 Aug 20. 2021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지?

친구의 지인인 선생님 한 분이 2학기에 휴직을 할 예정이어서 기간제 교사 모집 공고를 냈는데, 서류제출 마감일이 되도록 신청하는 분이 없다며 나에게 기간제 교사로 근무를 해 줄 수 있느냐는 연락이 왔다. 명예퇴직 교사는 기간제 교사로 재취업을 할 수 없지 않은가 물었더니 3차례 공고를 하는 동안 서류를 제출한 사람이 명퇴자 1인밖에 없는 경우에는 명퇴자라도 기간제 교사로 재취업이 가능하니 서류를 제출해 달라는 답이 왔다. 딱히 거절할 명분도 없었고, 휴직을 해야 하는 선생님의 다급함에도 마음이 쓰여서 그렇게 하겠다고 답을 했다. 외출 중이었기에 조금 늦게 귀가해서 메일함을 열어 제출 서류를 작성하려고 하는데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컴퓨터를 꺼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대부분 명퇴하고 6개월 정도가 지난 뒤부터 다시 학교가 그리워진다고 하던데, 난 아니었다.

신청서류의 경력란을 적으려는데 내가 학교를 그만두고 싶어 했던 순간순간들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30년. 오랜 세월을 거의 적성에 맞는 자리라고 생각하며 지내왔던 곳이었는데...


나는 장애학생의 긍정 행동지원 전략을 사용하는 학습지도를 해 왔다. '문제행동수정', '적응행동 지원'을 거쳐 최근에 '긍정 행동 지원'으로 용어 정리가 이루어져 가는 전략을 말하는데, 학교나 학급에서 학생들이 보이는 부적응 행동의 원인과 그에 부수되는 행동의 결과를 차례차례 분석하여 제거해야 할 요소나 강조해야 할 요소를 추출하고 실제 생활 장면에 적용해 학교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일련의 과정이 그것이다.  학생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교실 활동 장면에서의 상황들을 관찰하면서 문제행동 발생 전과 후에 어떠한 일이 발생하였는지 간단하게 서술하고 특정 행동을 유발하게 하는 사전/사후 자극이나 후속 결과 등을 파악하는 ABC 분석을 하다 보면 학생의 문제 행동은 하나같이 어떤 목적이나 기능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렇게 나타나는 부적응 행동의 빈도를 줄이고 적응행동을 늘리는 적절한 중재를 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찾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아이들이 지루한 학교 생활에서 의미를 찾는 것을 보는 과정은 보람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교사로서 아이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을 찾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내가 진짜로 원하는 뭐지?' 하는 질문을 맞닥뜨려야 했다.

그냥 흘러가는 시간 속의 한 순간을 굳이 붙잡아 분석하고 사전 사후 관계를 들여다보고 덜어내어야 하는 것을 짚어내는 등일을 반복하는 것이 녹록한 일은 아니었으며 때로 아이들의 부적응 행동 이면에 보이는 주변인의 비밀을 알게 되는 것도, 그것을 모르는 듯 넘기며 무심한 듯 예민하게 반응해야 하는 순간들도 힘에 부칠 때가 참 많았다.

학생들을 무조건 칭찬하고 격려하는 자리도 아니었기에, 잘못한 것은 따끔하게 훈계도 해야 하는 상황에 풀죽고 눈물 흘리는 아이들을 보는 것은 마음을 천근만근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삼십 년 전, 초임 발령지의 시골학교에서 뵈었던 두 분 선생님이 늘 기억에 남아있다.

한 분은 수업시간에 학생을 교문 앞에 있는 슈퍼마켓으로 보내 막걸리를 사 오는 심부름을 시킬 정도로 술을 놓지 못하는 분이셨다. 늘 빨개진 코에 흰색 반팔 러닝셔츠 차림으로 칠판 가득 공부할 내용을 적고 또 열심히 설명도 하고 그러셨다.


또 한 분은 뒤늦게 예수님을 만나 회개의 기쁨을 누리시며 '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청지기일 뿐입니다'라는 책을 선물로 주시는 분이셨다. 학교를 그만두고 기독교 서점을 열 계획이시라는 그분은 '우리가 무슨 힘이 있어서 아이들을 가르치나요, 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십니다' 하시면서 학생들이 앉아 있는 교실에 그림처럼 존재하시는 듯 시간을 채우셨다. 밥 먹이고 청소하고 말씀 전하고, 공부는 자율학습.


그 시절이니 가능한 일이긴 했어도 그땐 두 분 선생님이 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싫었다.

그런데, 퇴직을 앞둔 몇 해 안은 두 분 선생님의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힘들고 힘들고 힘드셨겠구나.


아이들의 적응행동 지원이라는 거창한 프로젝트를  하면서 나는 자꾸 달그락거리는 나의 내면을 만나야 했고, 이해가 되지 않는 아이를 둘러싼 주변인들의 비밀들을 만나면서도 모두 다 이해한다는 표정을 만들어내야 했고, 그러면서도 조금도 변하지 않는 애정을 담은 표정을 유지해야 했다.

나에겐 어려운 일이라는 결론이 새록새록 내려지면서 학교를 떠나는 일이 나와 아이들을 위해 가장 근사한 일이라 생각하게도 되었다.


명예퇴직은 명예스러운 것이 아니고,

정년퇴직이야말로 명예스러운 일이라며 만류하는 분들도 계셨지만 나는 그저 만족스럽기만  퇴직 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쉴 시간을 위해 기간제 교사를 해야 한다면, 그 또한 힘들어도 한 번 견뎌 내 보기로 천천히 마음을 먹고 드디어 이력서의 첫 칸을 적기 시작하는 중 전화벨이 울렸다. 나에게 메일을 보냈던 그 선생님이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이 와 주시면 정말 마음 편하게 휴직 들어갈 수 있겠다 싶어서 너무 좋았는데, 지금 막 한 분이 신청 서류를 제출해주셨대요"


미안해서 말을 더듬는 그분에게 나는 환호성을 보냈다.


"어머, 정말 다행이다~ 다행!!! 선생님, 편하게 휴직 시간 보내셔요~ 진짜 잘 됐다."


난 다시 평화로운 백수 생활자로 남을 수 있게 되었다.


'평화'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때가 곧 오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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