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이 없다면, 나는 누구인가?
강 언덕 위의 이방인, 흐르는 강이 그러하듯이
물은 너의 이름에 나를 묶는다.
그 무엇도
이 먼 곳으로부터 나를
나의 종려나무에게로 돌려보내지 않는다.
평화도, 전쟁도.
그 무엇도
내가 성경 속 복음의 말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 무엇도
유프라테스 강과 나일 강 사이 썰물과 밀물의 해안 기슭에 빛나는 것은 없다.
하나도 없다.
그 무엇도
바로 왕의 배에서 나를 하선시켜주지 않는다.
그 무엇도
나를 이끌어주거나, 혹은 상념을 품게 해 주지 않는다.
열망도 언약도.
나는 장차 무엇을 할 것인가?
유랑이 없다면, 그리고 강물을 응시하는 긴 밤이 없다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강물은
나를
너의 이름에 묶는다.
그 무엇도
꿈속의 나비들 틈에서 나를 깨워 현실로 옮겨주지 않는다.
먼지도 불도.
사마르칸트의 장미가 없다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월광석의 은은한 윤광이 노래하는 사람들을 부드럽게 비추어가며 흐르는 이곳 이 광장에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 당신과 나는 가벼워졌다.
먼 바람 속에 떠나 온 우리의 집들만큼이나.
우리 둘은 구름 속 낯선 존재들과도 친구가 되었고
정체성의 땅이 주는 중력에서도 해방되었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유랑이 없다면, 그리고 강물을 응시하는 긴 밤이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강물은
나를
너의 이름에 묶는다
나에겐 너 이외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고
너에겐 나 이외에 아무것도 남지 않아
난 그저 낯선 이방인의 허벅지를 어루만져주는 그의 이방인.
오, 이방인
고요한, 그리고 전설과 전설을 가르는 선잠에 빠진 우리에게 남겨진 것을 가지고
우리는 무엇을 하게 될 것인가?
그 무엇도
우리를 데려다줄 수 없다.
길도, 집도
이 길은 처음부터 이랬던 걸까?
아니면 우리의 꿈들이
몽골 언덕을 달리는 말들 사이에서
암말을 찾아
우리를 그것과 바꾸었던 걸까?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유랑이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방인을 위한 침대(A Bed for the Stranger)』(1999)
마흐무드 다르위시(Mahmoud Darwish)
이스라엘이 성서 속 언약의 땅을 되찾기로 선언하면서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난민이 되었다.
유프라테스강과 나일강 사이에 흐르는 바빌론 강가에서 성서 속의 유대인들은 빛나는 시온의 별, 그 언약의 노래를 부르며 유배의 시절을 보냈다.
시인 다르위시. 팔레스타인 난민이 된 그는 죽기 전까지 유랑의 노래를 불렀다. 예루살렘을 떠나 이집트, 우즈베크 사마르칸트 먼 땅을 지나 몽골 초원에 다다르기까지 물줄기가 물줄기를 묶어가며 흐르듯이 유랑하며 얼마나 많은 신화들을 떠올려야 했을까? 언약은 이스라엘에게 내렸고 복음서는 그에게 유랑 밖에는 허락하지 않은 듯 보인다.
오늘도
유랑밖에는 달리 할 일 없이
낯선 이방의 침대에서 하루를 보내는
나의 어머니...
이스라엘이 되기를 갈망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유랑이 되는 이유가 되어버렸기에
유랑밖에는
유랑의 노래밖에는 부를 게 없는
이방인이 되어버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