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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 지 Jan 06. 2022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400킬로. 멀고 먼 길을 달려 여수 여행을 왔다.

어제 저녁은 둘이 먹다 남길 만큼의 굴을 내어주는 굴구이집에서 저녁을 먹고 여수 밤바다가 보이는 숙소에서 잠을 청했다.

아침 일찍 출발해서 순천만 갈대습지와 국가정원을 둘러보았다.

갈대밭 무성한 습지에 반듯하게 길을 낸 사람들의 손길 닿은 느낌이 좋다. 도화지를 구겨 놓은 듯한 하늘자락마다 새들이 흐르고 있다. 윗물은 새들의 자리, 아랫 물은 갈대들의 자리. 그 사이에 곱게 나 있는 길을 밟았다. 십수 년 전 아이들과 함께 왔던, 이제 훌쩍 자란 아이들이 함께 하지 않은 이 여행은 그다지 신나지가 않다.

 몇 해 전 아들과 딸이 엄마 아빠와 함께 여행을 가겠다고 말할 때, 그렇게 말해 주는 아들 딸이 무척 고마웠다.  그지만 난 아이들에게 그 하지 말자고 했다. 세대 간 음식 취향이 다르고 생활 패턴이 다르니 여행은 비슷한 생활 리듬을 가진 친구랑 다니는 게 좋은 것 같다고. 아침 깊은 잠이 꿀잠인 젊은 너희들에게 새벽잠이 없어진 나이 든 부모와 함께하는 여행이란 게 어쩌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효도여행이 될 테니 그건 더 나이 들어 받게 될 선물로 미루어 두고 싶다고. 이다음에 우리가 너희들과 함께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하면 그 부탁을 꼭 들어달라 말하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졸업을 했다.


새들 무리가 날아가는 모양을 보면서 우리 부부는 대견해하기도 하고 안쓰러워하기도 하는 그런 대화를 했다. 어떤 모양이 대견해 보이고 어떤 모양이 안쓰럽게 보이는지 하는 기준은 서로 달랐지만.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말하던 시인의 이야기도 떠올려 보았다. 새는 자유를 위해 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것 자체가 자유라고 했던가...


아침에 병원에서 나오고 싶어 하시는 엄마의 전화를 받은 다음이라 마음이 편할리 없는 시간이었다.


며칠 전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와 '눈이 부시게'를 정주행 했다.

'치매'를 연기하는 김혜자 배우님의 모습이 아프게 감동적이어서, 내 어머니의 치매도  아름다운 모양으로 바라보려고 애써보는 중이지만 현실은 매 순간순간이 그냥 곧바로 잊어버리고 싶은 것들 투성이인 대화가 되고 만다.


내 어머니가 나에 대해 가지는 마음이

내가 내 아이들에 대해 가지는 마음과 다를 것 하나 없는 따뜻함이라는 것이

그 모순 투성이의 대화 속에서도 다 나타나지만

모순은 그저 모순인지라 그 이상의 아름다운 치장을 하지 못한 채

'그래, 난 다시는 너 안 볼란다' 하는 마무리로 통화는 끝이 나곤 한다.


그래도 그리 씩씩하게 말씀해 주시는 게 그저 고맙다고 나는 속으로 속삭이고.


엄마의 자유를

저 새들 날갯짓만큼의 자유를 그리워해 본다.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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