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에서 돌아오면 아들은 허겁지겁 샤워와 식사를 마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책장과 벽이 막아주는 책상 앞에 앉아 헤드셋을 깊이 눌러쓰고 게임을 한다. 늘 그렇다. 힘든 일을 치르는 기간에는 방에서 은둔하다시피 해서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다음날이면 말끔하게 옷을 차려 입고 집을 나서는 아들의 커다란 등과 어깨를 눈으로, 마음으로 두드려주면서.
얼마 전 친구들과 두 달 여정으로 여행을 떠난 딸은 한 달 무렵이 지나면서부터, 친구들과 같이 다니는 게 너무 좋은데 며칠 전부터 귀가 따갑고 마음이 시끄러워서 혼자 있고 싶어 졌다고 보이스톡을 보내왔다.
"나는 내향성이 맞는가 봐 엄마. 외향형인 친구들 세 명과 툭탁거리며 다니는 게 재미있기는 한데, 며칠만 혼자 있고 싶어 진다... 힘들어... ㅎㅎ"
아이들은 여지없이 내 성향을 닮았다.
사람들과 24시간을 함께 해야 하는 일이 어찌나 힘들던지..
도리스 레싱의 단편 '19호실로 가다'에 깊이 공감하는 사람 중의 하나인 나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에 대해 감히 '너희들 조차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나만의 공간이 필요해' 하는 그런 표현을 할 수는 없었으나, 직장에 출근하면 아이들에 대한 책임은 잠시 미루어 둘 수 있었기에 색깔을 달리하는 '홀로'의 시간을 보냈음을 이제 알아가고 있다.
오로지 전업주부로써 살아야 했다면 난 감당 못했겠구나...
아이들의 성년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이면에는 그런 책임감 같은 것 없이 오롯이 '나'로써의 시간을 지내게 되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가족들과 함께 하면서도 '혼자' 있을 곳을 찾아야 했기에 직장을 그만두자마자 시골에 주택을 마련한 건 아닐지.. 딸과 통화하면서 나도 모르는 나의 이야기가 정리가 되었다.
여행을 하는 시간이 좋은 이유 중의 하나가 그런 거였다.
사람들과 함께 하지만, 철저하게 혼자여도 좋은 시간. 언제든지 혼자만의 공간으로 들어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관계.
혼자서 일정과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 밖으로 나와 한없이 겸손한 마음이 되어 거리를 걷는 일.
딸은 이번 여행길, 낯 모르는 사람에게서 '즐거움'과 '재미'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대학 졸업작품을 준비 중이라는 또래의 낯선 친구들이 던져 준 '재미있는 일'에 대해 생각하며 남은 여행 일정을 보내겠다고 했다.
아들도 '혼자' 지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부모의 눈치 볼 필요 없이 방황할 수 있는 작은 공간, 아들은 기쁘게 자기의 19호실로 들어갔다.
정리가 덜 끝난 아들의 방에 들어와 음악을 틀어놓고 바닥에 늘어놓은 옷가지들과 흐트러진 이불에 손대지 않으려 애쓰며 정수기 설치 기사를 기다린다.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 아들이 흘려놓았을 샴푸 향기와 로션 향기가 머물렀다가 내 움직임을 따라 흐르는 공간. 나는 자꾸만 바닥에 떨어진 배달음식 봉투를 주워 정리하려는 손을 멈추려 애쓰면서 커튼을 열어 먼 하늘을 바라보며 그저 머릿속으로 재미있는 일을 찾아 즐겁게 지내라는 기원만 담는다.
이 심부름 마치고, 나도 대설주의보가 내린 도로를 달려 안말에 있는 나의 19호실로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