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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 지 Feb 03. 2022

발바닥과 땅바닥이 만나는 걷기를 배우고 있다.

자신의 신체와 외부 환경에서 제공되는 다양한 감각을 조직화하는 신경학적 과정을 "감각통합"이라고 한다.

작업치료사이며 심리학자인 아이리스(A. Ayres)는 감각처리 과정을 근거로 하여 감각 통합 이론을 발전시켰다.

 그녀에 따르면 감각이란 신경세포를 자극하고 활성화하며 신경 계통의 일련의 순서에 의해 일을 진행시키는 에너지이고, 통합은 신체의 여러 감각 부분을 전체로 묶는 조직화의 단계이다. 행동은 다양한 감각 간의 협력을 필요로 하며,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감각 통합은 주로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감각 통합에 장애가 있는 경우는 이러한 협력 과정이 비효율적이며, 정확성이 보장되지 않으며, 나아가 과다한 노력을 필요로 하게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나의 '걷는 모습'을 의아해한다.

어릴 때부터 엄마와 언니가 고쳐주려 애쓰던, 예민한 사춘기 시절 친구들로부터는 '예쁜 척'한다는 이유로 왕따 위기까지 간 적도 있는, 직장에 다닐 때는 혹시 모델 워킹을 배웠느냐는  질문을 받을 만큼(모델처럼 근사하지 않다. 그저  조금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예의 바르게 묻는 단어 중 하나다.) 늘상 수군거림을 뒤에 달고 다니는 특이한 내 걸음새를 나도 익히 알고 있다.

 

고치고 싶었지만, 통 모르는 세계에 대해서는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이해의 지도가 그려지지 않았기에 발을 적당하게 벌리고 무릎은 살짝 굽혀 등이 C자형 커브가 되지 않도록 하라는 등의  조언이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난 그냥 티 안 나게 걷기를 포기하고 주변의 수군거림을 무시하는 전략을 택했다. 처음 몇 번의 낯선 관심을 넘기고 나면 그 특이함을 나만의 개성으로 인정 해 주었기에  별로 불편하지도 않았고.


특수교육을 하며 감각통합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분석하고 지원하는 과정을 설계할 때, 유독 한 아이의 사례가 마음에 담겼다.

놀이터에서 모래놀이를 할 때 모래 만지기를 무척 힘들어하면서 두 손가락으로 모래를 만지다 손바닥과 손등에 모래가 묻으면 울음을 터뜨리던 자폐스펙트럼 아이였는데, 그 아이의 모습은 엄마에게 들었던 내 어릴 때 모습과 같았다.


엄마는 내 걷는 모습을 '겅중겅중'이라고 표현했고, 고등학교 시절 내 걸음걸이에 대해 수근수근하는 아이들의 뒷담화를 막아주고 싶어 하던 상냥한 친구 하나는 '사뿐사뿐'이라는 예쁜 표현을 해 주었다.


내가 분석한 그 아이의 걸음걸이가 나와 같았다. 무릎을 거의 사용하지 않으며 걸으려니 당연 상체가 흔들려야 했고, 자연스럽게 흔들려야 하는 상체 움직임이 커질 테니 당연히 양팔을 과장되게 고정시켜 흔들림을 줄여야 했다. 어떤 원인인지 모를 감각의 과정이 생략되어있다는 것을 알 수는 있었지만 그 과정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저 발바닥으로 흙을 힘차게 디디며 뛰어노는 일이 내가 알아낸 처방의 전부였다.

아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그랬다. 땅바닥 위에 발바닥을 힘 있게 디디며 평범하게 걷기 위해 필요한 근육점들을 찾지 못했고, 적절하게 움직이는 법을 인식 못하고 있기에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집중시키거나 분산시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걸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 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굳이 설명이나 연습이 필요 없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습득하지 못한 채로  아주 오랜 세월을 지내왔다.


늦게 시작한 골프도 다르지 않았다. 오랫동안 연습장에 다녀도 폼은 엉성했고, 함께 시작한 사람들은 능숙하게 타수를 줄여나가는데, 여전히 감각을 찾을 수가 없던 나는 프로에게  '난 슬로우러너 같으니까 오랫동안 필드에 못 나가도 원망 안하겠다'고, '천천히 가르쳐달라'고 부탁을 했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별다른 설명 없이 운동 근육을 사용하니까, 나에게 근육의 작용 기전에 대해 설명하는 일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을 게다.

난 티칭프로의 설명을 기억해내려 애쓰며 좀처럼 깨달아지지 않는 스윙 감각을 찾으려고 애를 썼다.

함께 골프를 시작했던 동생 하나가, 세월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아서 동행이 신경 쓰일 정도로 한결같이 어설픈 나의 스윙을 애잔해하며

 '언니는 왜 골프 해?' 하고 물었다.


'걸음마를 배우는 것 같다'고 나는  답했다.


설명을 들은 대로 아무리 노력을 해도 닿아지지 않는 팔과 다리의 감각이 궁금했다.

코어 근육 운동을 하라는 조언을 들을 때도 답답했다. 코어 근육이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게 내 몸 어디에 있는 건지 도통 모르겠어서...


그러니 난 그저 내가 아이에게 책에서 나왔던 대로 처방했었던, '땅바닥을 힘차게 디디는 일'을 반복할 밖에...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많은 동반 친구들을 안타깝게 하기도 하고 화나게도 하는 라운딩을 하면서

'실패의 경험이 쌓이다 보면 어느날 갑자기 한계를 넘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는 자기 계발 강사의 말을 떠올려가며 내가 찾으려 애쓴 건 단 하나,

척추가 발바닥을 지나 땅바닥과 연결되는 감각의 각성이었다.


엊그제 쩌면 이제 그걸 알아낸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 발바닥을 땅에 디딜 때 발가락 아랫부분 발바닥의 왼쪽 오른쪽 감각점과, 발뒤꿈치 사이의 아치 모양이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땅을 디딜 때  발뒤꿈치와 발바닥의 움직임 무릎이 굽혔다 펴지는 느낌,  뒷허벅지 근육의 당김도  함께 느껴졌다.


자연스럽지 않아도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살짝 궁금했던 자연스러움을 드디어 만난 것 같다. 막 걸음을 뗀 어린아이의 기분.

진즉 알았어야 했던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어도 운동치인 나에게는 부끄러움보다 기쁨이 더 크다.

 

공원을 한 바퀴 걸어보면서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거였는데... 이 감각을 통합시키는 일이 나에겐 그리도 어려운 일이었는지... 걷기 감각을 통합시키지 못하도록 나의 무의식을 붙잡고 있는 그 무언가가 문득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무의식은 익숙한 것으로 돌아가려 할 테니 한동안은 뒤늦게  찾은 감각점들을 짚어가며 걷기 연습을 해야 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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