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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 지 Mar 02. 2022

가는 거야, 분노하고 반항하고 실수하면서

몇 해 전 고미숙 작가의 강연 영상을 보다가 재미있는 표현을 들었더랬다. 정확한 표현을 기억할 수는 없으나 내가 이해 한 대로의 내용으로 라면 이렇다.

"네가 지금 이 나이 되도록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은 부모님 탓이고 팔자 탓이 맞다. 그런데 너 지금 몇 살이니? 나이 오십이 넘도록 부모님 탓, 팔자 탓하면서 사는 건 맞는 것 같니?"


힘들고 가난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새벽에 공사장에 나가 밤이 늦도록 힘들게 일하고 돌아오시는 아버지는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 보여지는 화목한 가정을 이끄는 가장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금에서야 알게 되는 일이지만 힘들게 일해서 가족을 먹여 살리는 일을 일생의 가장 큰 보람이 행복으로 여기며 가장의 무게를 나이스하게 감당해 가는 아버지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그런 남편이 술에 취해 밤늦은 골목을 떠내려가라 고래고래 소리치며 흔들리는 어깨로 들어오는 모양을 보고 '오늘 하루 고단하셨지요? 힘드셨지요?'하고 미소 띤 얼굴로 맞이하는 한결같은 아내는 또 몇이나 될까?

이웃은 늘 화목해 보였고 우리 집은 늘 불화했다. 어둡고 우울했던 유소년기를 보내는 동안 어쩐지 그런 일은 나에게만 일어난 불공평한 일 같이 여겨지기도 했다.


90년대 호황기 진입 시기에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은 저마다의 꿈을 펼칠 기회를 잡기가 지금에 비해서 무척 수월했다. 모두 다 처음 누려보는 호황이었다. 우리 남매들도 직장을 잡기 시작하면서 유소년기의 힘들었던 기억들은 그저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좋은 부모님과 좋은 팔자보다는 좋은 사회적 환경의 덕은 아니었을까?


잘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나온 시간들을 되짚어 기억들을 추슬러 올라가다 보면 그야말로 모골이 송연해지도록 서툰 모양으로 실수하고 있는 젊은 날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말도 안 되는 지점에서 분노하고 따지고 있는 당찬 내 모습이 불쑥 나타나 묻는 .

'잘 산거 같지? 이래도?'


처음 겪어 보는 '4년제 대학 나온 후배' 였던 나의 안하무인과 기고만장을 선배들은 어떻게 견뎌주셨던 걸까?


그렇더라도 나는 자주 아들과 딸에게 당부하곤 한다.

좋은 부모님도 좋은 팔자도 좋은 환경도 허락되지 않은 형편일 수도 있어서 도무지 갈 길이 보이지 않겠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20대인 젊은 너희들은 어떤 일이든지 해 보았으면 좋겠다.

일 하면서 분노하고 반항하고 실수해라.

그렇지 않으면 50대에도 여전히 분노하고 반항하고 실수하며 지내게 될지도 모른다.

20대에 분노하고 반항하고 실수하며 지내온 50대의 나는 부끄러운 기억을 덜어내느라 약간 곤혹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로 인해 20대인 너희들의 분노와 실수를 보면서 지적하기보다 나를 돌아보려고 애쓸 수 있게 되었으니...

나이 오십이 넘어도 세상살이는 여전히 서툴고 힘들어서 실수를 반복하곤 하기에 너희들 보기에 답답하기도 할 테지만 이젠 분노하고 반항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세상이 이해가 될 때가 많으니...




늦은 아침을 먹기 위해 해장국집에 갔다.

확진자 폭증으로 예민해진 사람들간에 소동이 있었던듯 상기된 목소리의 사장님이 우리 테이블에 와서 맥락없이 '세상이 너무 각박해졌다, 코로나만 문제가 아닌데.. 이젠 떨어져 앉지 않으면 사람들이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하소연을 했다.


살짝 위축된 모습의 사모님이 음식값을 계산하다가 실수를 했는가보다. 두 번 결재가 되었다고 쌀쌀맞은 목소리의 손님에게 어린아이처럼 야단을 맞았다.


골프장 근처의 식당에서 좋은 차와 좋은 옷을 챙겨 입은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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