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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 지 Mar 24. 2022

퇴화도 발달의 단계라고 하지만..

 '인간 발달 이론'은 인간의 수정의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에 걸쳐서 일어나는 한 개인의 신체적, 심리적 변화를 정의하고 있다. 개체의 전생애주기를 통해 일어나는 계속적인 변화를 의미하기에 교육 현장에서는 아동의 신체, 정서, 지능 등이 성장하는 긍정적 측면에서의 변화를 지칭하는 '아동 발달'을 다루게 되지만 '인간 발달'은 생애 초기부터 청소년기까지의 긍정적 변화는 물론 성인기 이후에 긍정적 변화와 함께 나타나는 부정적 변화 역시 발달의 개념에 포함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발달'이란 '퇴화'의 과정까지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아가였을 때 내가 선배 엄마들에게 ' 시간만 깨지 않고 자는 게 소원'이라고, '아이들 기저귀 뗄 만큼 키운 엄마들이 부럽다'라고 말하면 선배 엄마들은 측은한 미소로 나를 위로했다.

'힘들지? 근데, 아이들이 크면 걱정도 따라서 커 져!'

정말 그랬다. 기저귀 떼고 혼자 밥 먹는 게 가장 큰 소원이던 때를 지나고 나니, 아이들 돌보아 줄 보육시설 찾는 일,  선생님과 친구들 관계에서 생기는 어려움들과 인사하고 챙겨야 할 여러 가지 일들, 학교 입학 후엔 등하교 안전, 방과 후 학원 보내기, 아래층 주민의 층간 소음 항의에 사과하고 수시로 주의받기, 삼시 세끼와 간식 챙겨 주기, 아플 때 병원 가기, 학교 시험 준비와 결과에 대한 실망감 다독여주기, 사춘기 예민함과 함께 하기, 진학 상담, 진로탐색, 부모교육, 부모상담, 보습학원, 재수 학원, 군대 보내기, 술 취해 길 잃어 헤매고 있다는 아이들 데리러 다니기, 취업 고민, 독립시키기...

하나의 고민거리를 넘기면 다른 고민거리가 번호표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남은 시간 역시 만만치 않으리라고 선배들은 말한다. 결혼시키고 손주 손녀 돌보고, 부모가 되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가지 않았을 길들과 하지 않았을 일들이 끊임없이  남아있다고.


아이들이 결혼을 하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날들이 남아있을 것 같아서 이러저러하게 앞으로 남은 인생의 시간들을 채워가는 일들에 대해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의 그림을 그려가고 있는 지금은 연로하신 부모님 걱정이 하루하루를 삼키고 있다.


이미 부모님과 이별한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그 길고 가슴 아린 시간들을 이겨냈을까?


백내장 수술을 하시고 혼자 병원 진료를 다니시는 아버지의 냉장고를 채워드릴라치면, 혼자 다 할 수 있으니 오지 말라 말리시는 손사래가 가슴에 얹히고, 아침저녁 전화 통화로 어딘가 (상상 속) 먼 곳을 다녀오신 이야기를 하시거나 즐거웠던 시절 이야기를 어제 일처럼 말씀하시는 엄마의 답답한 병원생활도 가슴에 얹힌다.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전화로 '힘드시지요?' '잘 견뎌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는 말밖에는 없어서, 다들 같은 사연을 가진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면서도 큰 웃음이 지어지질 않는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정말 없는 거구나...


아들과 딸에게도 재미나게 지내라는 말 밖엔 해 줄게 없구나...


그러니 아들과 딸 앞에서는 세상 철없는 부모들인양 맛있는 것 먹고 재미난 일 찾아다니는 듯 허세를 부려본다. 아이들도 그게 허세라는 걸 알지만 정말 정말 최선을 다해서 그렇게 지내려 한다.


연로하신, 노쇠하신 내 부모님이 최선을 다 해 재미나게 살아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 하시는 것처럼 그렇게...발달의 단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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