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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어디에나 오고 있다.

by 미 지

꽃샘추위가 가길 기다렸다가 과일나무 묘목 세 그루를 심고, 얼음이 살짝 풀린 밭의 흙을 살짝살짝 걷어내며 세모난 뒷마당에 꽃과 허브를 심으려 준비하고 있다. 작은 마당인데도 생각보다 많은 수의 화초들이 필요할 것 같은데, 식물을 어떻게 배치하는 게 좋을지 인터넷을 검색해 여러 사람들의 정원을 들여다보고 있다.

영양가 없이 누렇고 척박한 모래 땅에서 제법 푸른 이름 모를 싹들이 삐죽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데 작년 겨울에 심었던 냉이와 달래는 겨울 추위에 얼어버렸는지 소식이 없다. 밭에 있던 두둑을 헐어내고 삽으로 흙을 조금씩 퍼가며 거름을 섞고 배수판으로 구역을 나누어가며 어떤 식물을 심을지 고민 중이다.


해마다 3월은 학교에서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고, 새 학기의 계획과 안내문 작성과 각종 보고 서류를 작성하느라 달력에만 있는 것 같던 시기였다. 바쁘고 정신없던 중에 가끔 창밖을 보면 어느새 활짝 핀 꽃들과 봄내음에 놀라서 점심시간에 잠깐 짬을 내어 운동장을 걸으며 새싹과 새잎과 풀꽃들에 짧게 인사를 하던....

이 봄 나뭇가지에서 움트는 새 잎들을 볼 수 있을 거라는 설렘에 나는 자꾸만 안말로 내려온다. 5도 2촌이 아니라 5촌 2도가 될지도 모른다고 식구들에게 말하면서.


지난 이십여 년 동안 반복적으로 꾸는 꿈이 있다. 꿈속에서 나는 첫 발령지에서 자취를 하던 월세집에 짐을 다 두고 나왔다. 집주인에게 꼬박꼬박 월세를 보내기로 약속을 했는데 흐지부지 약속을 안 지키고 있어서 뚤레뚤레 그 집을 찾아가 집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꿈이다.

간밤에도 똑같은 내용의 꿈을 꾸었다.


꿈을 분석해 보려고 노트를 꺼내 첫 발령지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이름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았다. 아마도 첫 부임지에서 젊었던 내가 했던 약속을 놓치고 있는가 보다. 그게 무엇인지 도무지 기억하진 못하지만,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며 지내왔으니 이제 늦은 부담 같은 건 덜어 내 보려 한다.


혁선이, 동석이, 창숙이, 보용이, 정수, 남숙이, 송이, 한나, .... 행복한 어른이 되어있지?

내 봄의 기억은 너희들을 처음 만난 그날부터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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