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으로 드디어 별을 찍었다. 인터넷에 안내된 대로 셔터 스피드와 노출을 조절해가며 영하 12도 열 두시 추운 마당을 서너 번 드나들면서 드디어 별을 담았다. 그렇지만 어쩐지 기쁘지가 않다. 맨눈으로 쉬이 보이던 큰 곰자리, 카시오페이아 자리 같은 별자리들이 맨눈으로는 보여지지 않던 많은 별들과 한데 어우러져서는 도무지 구분이 되지 않은 모양으로 그저 밤하늘의 별이 되고 있었기에.
저렇게 모든 것이 비슷한 밝기로 보이는 별들 틈에서 '전설'을 가진 별을 찾아낼 수는 없을 것 같다.
오늘 밤 맞이한 내 외로움의 모양새와 같아서 힘없는 미소가 지어진다.
아침 기온 영하 15도로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아침을 맞은 날, 외출로 맞추어 둔 보일러를 믿기는 했지만 혹여나 수도관이 얼지는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며 안말로 왔다. 수돗물 이상 무. 화장실 이상 무. 보일러 잘 돌아가고.. 가지, 호박, 버섯을 구워서 뒤늦게 온 남편과 저녁식사를 하고 제빵기에 식빵을 구워서 아침거리를 만들고 설거지를 하는데 이런 일이... 싱크대 물이 내려가질 않는다.
배수관이 얼었나 보다.
남편과 한참 동안 배수관에 더운물을 붓고 소란을 떨다가 내일 배관업체에 연락을 하기로 하며 그냥 덮어 둔 뒤, 인터넷을 뒤져 상하수도 동파 사연을 살펴보았다. 이제껏 전혀 모르고 살던 아파트, 빌라, 주택, 주말 주택, 상가의 한 겨울의 사건들과 해결법들을 읽으면서 난 정말 모르고 사는 게 많구나 싶어졌다.
어릴 적 수도가 얼어서 엄마 아버지가 뜨거운 물을 부어 녹이느라 애쓰다가 드디어 솟아 나오는 물줄기에 함빡 웃으시던 기억이 나기도 하고.
이 마을 사람들 하나같이 이런 일들 치루며 겨울을 나고 있을 텐데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내일 아침 설비 기사를 부르기 전에 해 볼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검색도 해 보고
공연히 집을 사서 엄한 근심거리 만들었나 싶어 갑자기 외로워지다가
또 갑자기 할 일이 생겼다는 사실에 생기가 돌기도 하다가
코가 맵게 시린 밤공기 속에 반짝거리는 별들이 너무나 예뻐서 오리털 롱 패딩을 걸쳤다 벗었다 그러면서 밖을 들락날락했다.
몰라야 할 수 있는 게 세상에 널리고 널렸지. 그러니 나 같은 사람이 덜컥 이런 시골집을 사지. 전원생활의 낭만이라는 별자리를 산 줄 알았는데 동파 위기의 상하수도 손보기, 기름보일러 기름 채우기, 낙엽과 눈 치우기, 우수관 낙엽 거두기, 갈라지는 벽과 타일 틈 보수하기 같은 숨어있는 별들을 만나게 되고 보니 잠깐 당황하다가, 또 잠깐 후회하다가 아, 이런 거 살아있다는 기분하고 어쩐지 같아.. 하는 느낌을 만나고 있다.
이름 알려진 별자리들 틈으로 숨어있는 숯한 별들, 그들도 때론 외롭겠지. 하지만 여전히 반짝이겠지.
모르는 게 너무나 많지만 한편으론 그게 나를 설레게도한다. 매서운 한겨울 추위 때문에 얼어버린 배관을 뚫는 일일지라도 몰랐던 '사는 일'에 대해 깨닫게 하니까.
이번 주말 아버지를 모시고 와서 떡국을 끓여먹으려던 계획은 어쩐지 변경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에게는 익숙한 근심거리를 떠올리게 해 드릴 것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