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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1월 폭설이 내리던 날

by 미 지

젊은 부부는 돌이 지난 아들을 안고 새벽 채비로 여주에 도착했다고 했다. (1969년 1월 27일부터 30일 사이에 중부지방에 폭설이 내렸다고 하니 아버지의 기억대로라면 1월 27일이 될 것이다.)


"입술이 새파래져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어렵게 얻은 아들 녀석을 보고, 누군가 여주에 있는 용한 한의사에게 데려가 보이라고 해서 일곱 살, 살짜리 너희들을 막내 처제에게 맡기고 새벽에 길을 나섰어. 일찌감치 다녀 올 요량이었지. 방직공장 야간 근무조로 출근을 하고 있는 막내 처제가 낮에 너희들을 봐주다가 출근하면 몇 시간 정도는 너희 둘이 집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았거든.


여주에서 그 용하다는 한의사에게 아들을 보이고, 약 처방을 받아 집으로 돌아가려고 나선 길, 함박눈이 내리더라. 내 평생 처음 보는 엄청난 눈이었지. 지금까지도 그렇게 많이 오는 눈은 내가 본 적이 없어. 버스터미널에 갔지만 벌써 무릎까지 내린 눈으로 버스는 운행을 하지 않는다고 했어.


근처에 있는 집 문을 두드리며 안사람과 아들 데리고 병원에 왔다가 발이 묶였으니 잠시 쉬게 해 주실 수 있는가 물었지. 그 땐 무슨 정신이었는지 그런 행동이 저절로 나왔어. 집 주인이 흔쾌히 들어오라 하고선 점심 때 먹고 남은 만둣국이 있다며 한 상을 내어주었어.


집에 어린 딸 둘만 있다고, 돌아가야 하는데 큰일이라고 사정을 말했더니, 사십 리 떨어진 지금은 폐역이 된 구둔역에 가면 청량리에 가는 중앙선 열차를 탈 수 있을 거라고 하더라. 그자리에서 일어나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길을 나섰어.


사십 리 길을 걸어 걸어 어린 아들을 품에 안고 구둔역엘 갔어. 몇 시간을 걸었는지도 몰라. 하여튼 갔어. 하염없이 내리고 쌓이는 눈을 헤치고 또 헤쳐가며 니 엄마도 나도 죄다 젖는 옷을 추슬러가며 역사에 들어갔어.


기차는 새벽에 청량리에 도착하는 완행열차가 있는데 밤이 늦어야 구둔역에 들어온다고 했어. 대합실은 썰렁했고, 지금부터 난로 불을 지펴도 기차가 도착할 때 까지는 따뜻해지지 않을 거라는 역무원에게 어린아이가 다 젖었다고 어디 앉을 곳 없느냐 물었더니 그는 우리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리 오라며 뒤쪽으로 데려다주었어. 난롯불이 피워진 한 구석에 몇 사람인가 앉아서 늦게 들어온다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어. 그 사람들 사이에 앉아 젖은 옷과 양말을 말렸지.


기차는 제시간에 도착했고, 새벽 청량리역에 내리자마자 부랴부랴 집을 향해 갔는데, 허겁지겁 달려가면서 우리 내외는 아무 말도 못 했어. 어쩌면 너희들이 다 얼어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그 많은 눈이 오는 추운 밤, 어린 니들이 그혹독한 겨울밤 추위를 무사히 견뎌 냈을 것 같지가 않더라구.

집에 도착해서 방문을 열었는데 너희들이 어땠냐 하면, 둘이 눈이 퉁퉁 부은 채 울면서 부둥켜안고는 서로서로 '울지 마' '배고프지?' '조금만 참어' 그러면서 밤을 샜다고 하더라구..."


아버지는 부모 없는 겨울밤, 아버지 평생에 처음 본 폭설이 내린 오십몇 년 전 그 겨울밤을 단둘이 보낸 두 딸의 이야기를 미소 띤 얼굴로 들려주셨다. 당신들과 어린 동생이 그 눈밭에서 객사할지도 몰랐던 순간은 아예 계산에도 없으셨다.


치매는 무섭도록 가슴 아픈 병이어서, 이런 날 엄마를 빼놓고 모두가 화목한 가족 모임을 가질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눈 내리는 설날 아침, 아버지와 언니와 나는 셋이서 함께 떡국을 끓여 먹으며 이젠 어쩐지 함께 할 수 없게 될 것 같은 엄마와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손주들이 등장하는 옛날이야기를 했다.


이십오 년 전. 각자 가정을 꾸린 화목한 삼 남매와 수목원으로 스키장으로 놀러 다녔던, 아마도 부모님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에 나는 노래방에서 '부모'라는 노래를 불렀더랬다. 엄마와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최희준 가수가 부른 트롯 곡인 줄 알고 불러드렸었는데, 노래를 부르면서 가슴 깊은데서부터 아스라하게 올라오는 감성이 아련하고 따스하고 먹먹하고 그랬다. 김소월의 시에 곡을 붙였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 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리라


부모님은, 당신들이 떠나보내신 부모님들의 연세가 되어있다.

우린, 세상 온통 어렵고 미숙한 것 투성이로 가득 찼던 젊은 부모님의 나이를 지나서

부모님이 그 부모님을 떠나보낼 때의 나이가 되어있다.


묻지도 않고

대답도 없이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를 듣는다.

길게 감긴 눈으로 미소만 지어지는 눈 오는 설날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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