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오랜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공항에서 픽업을 해서 격리할 곳으로 데려다준 뒤 나도 며칠이나마 격리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안말로 왔다.
유통기한이 다 돼가는 도라지 정과를 잘게 다져 쿠키를 구웠다. 초코칩 쿠키보다 더 괜찮은 것 같다.
몇 해 전 들었던 강의에서 '일류 요리사가 만든 음식과 어머니가 만든 음식의 차이점은 무엇인가?'라는 교수님의 질문이 있었다.
둘 다 맛있다. 엄청 맛있다. 또 먹고 싶다.
일류 요리사의 음식은 너무 비싸다. 꼭 필요한 재료를 빠뜨리지 않고 아끼지 않는다. 음식을 먹으려면 시간과 장소를 예약해야 한다... 우리는 그런 빈약한 답을 내면서 교수님의 답을 기다렸다.
"이게 가장 큰 차이 아닐까요? 내가 비싼 값을 내고 일류 요리사의 음식을 먹다가 '이제 그만 먹겠다' 말하면 요리사는 얼른 '예, 알겠습니다' 하고 그릇을 치우죠. 그런데 내가 어머니의 음식을 먹다가 '이제 배불러요, 그만 먹을게요' 하면 어머니는 '이것도 좀 먹어봐라, 저것도 한 젓가락만 먹어보고. 잘 먹어야지 왜 이렇게 못 먹냐?' 하시는 거요."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의 전문성에 관련된 수업이었기에 교수님이 풀어나간 교육 방법과 교육철학에 대한 내용이 이어졌으나 나의 생각은 꼭 저 부분에서 멈추어버렸기에 뒷부분의 강의 내용을 기억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저 학습자를 위해 때로는 요리사의 전문성으로 때로는 어머니의 넘치는 정으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이듯 학습 지도와 피드백을 제공하라는 내용이었던 것만 기억한다.
나는 자주 내 아이들에게 '엄마'로써의 잔소리를 합리화하는데 저 말을 사용하는 오류를 저지르곤 했다.
도무지 멈출 수가 없는, 쓸 때마다 스스로 감동받는 말이 되어버렸다.
'엄마잖아, 엄마니까 할 수 있는 말이고, 엄마니까 해야 하는 말이잖아.'
(아이들의 귀에 앉았을 딱지에 심심한 사과를....)
아들과 딸의 독립을 위해 이제 내가 할 일은 멈추는 일이 될 것이다. 아마도.
아들도 딸도 남편도 나도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먹을거리를 스스로 챙기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부추와 허브 씨앗 싹을 틔워서 이번 추위가 지나면 마당에 심으려고 펠렛에 심어놓았다.
딸의 1차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왔으니, 애초에 격리 의무 같은 것 없었던 나는 그냥 돌아가도 될 테지만 빼꼼하니 얼굴을 내밀고 있는 저 조그만 싹들이 너무 귀여워서 외출로 돌렸던 보일러 온도를 다시 높이고 짐가방도 다시 풀어놓았다.
지난주 산책길에 한겨울 추위에도 파랗게 땅을 덮고 있는 풀이 너무 예뻐서 한 포기를 뽑아와서는 싹틔우기 중인 지피 펠렛 한 구석에 놓아보았다. 죽지 않고 뿌리가 잘 내리면 안말로 데려가 키워볼 요량이었다.
두어 시간이 지나서 나는 화들짝 놀랐다. 벌레 한 마리가 펠렛에 기대어 천천히 모양을 나타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단한 동전 모양의 지피 펠렛이 물을 머금으면 폭신하니 부풀어 올라서 씨앗을 심을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마냥 풀 한 포기 속에 잔뜩 움츠러서 한겨울잠을 자고 있던 벌레가 따뜻한 실내 기온에 잠을 깨서는 부풀어 오르며 모양을 나타낸 것 같았다.
벌레 한 마리 정도야 나무젓가락으로 집어내어 처리할 수 있었지만 곧 날이 따뜻해지면 이런 벌레들이 죄다 겨울잠에서 깨어나 여기저기 모습을 보이게 될 텐데... 가능하면 우리는 얼굴 마주치지 말고 살자고 혼잣말을 했다.
2월은 농부들에게 중요한 시기라는 것을 알아간다. 잡초와 벌레들이 왕성해지기 전에 봄 밭작물들의 씨앗을 심고 싹을 틔워 잘 뿌리내릴 수 있도록 손을 쓰는 시기라는 것을.
봄 햇살에 활짝 피어오르는 물오른 꽃망울들을 볼 기대에 부풀었던 첫 시골 봄맞이가 벌레와 잡초들과의 치열한 전쟁의 서막이 되는 건 아닐는지....
늦잠을 자고 일어나 밥을 챙겨 먹고 모종삽으로 언 땅을 달래듯 살짝 파서 봄동 씨앗을 뿌렸다. 작년 가을에 뿌렸던 자리에 싹이 올라오는 것 까지는 보았는데, 모두 다 얼어서 죽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