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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데칼코마니

by 미 지

살아갈 날 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게 되었을 이 즈음부터의 일상들은 느껴지는 순간순간이 마치 차근차근 준비하는 이별과 같이 여겨진다.


시골집의 일을 거들어주겠다고 애쓰는 남편을 한사코 말리는 일도 그렇다.


무거운 흙과 돌을 나르는 일, 집 수선을 하거나 땅을 파는 일 등은 어쩔 수 없이 해 달라고 부탁하지만 작은 마당의 흙을 고르고 풀을 뽑고 텃밭 정리를 하는 소소한 일은 멈추어달라 하고 있다.

나와 마찬가지로 마당을 가꾸는 일에는 문외한인 데다가 풀과 꽃을 가꾸는 일에는 취미조차 없는 사람에게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을 함께 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으려고 한다.


각자의 직장일과 돌아가며 책임을 지던 긴 육아의 시간을 따로 또 때때로 같이 지내오는 동안 취미생활도 성향 따라 각각 다르게 자리 잡았다.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며 운동하고 밥 먹는 일을 즐거워하는 남편에게 한적한 시골의 느리게 가는 시간은 힘들 테니 그저 가끔의 동행만 부탁하고 있다.


오늘은 바로 그 무거운 흙과 돌을 나르고 땅을 파야 했기에 동행을 했다.


이른 새벽 운전으로 고단해하며 잠깐 잠이 든 남편의 숨소리를 들으며 앉아있으려니 세월이 참 무심하고도 빠르다는 오래된 표현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서로에게 익숙하지 않았던 지나온 시간들의 기억.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얽혀 살면서 무던히도 바쁘고 서툴렀고 슬프고 기쁘고 아프고 신나고 보람도 있던 시간들을 보내고 나는 조금 이른 퇴직을, 남편은 정년퇴직을 하게 되었다.


아들과 딸이 독립을 시작하고, 시어머니도 요양원에서 지내시면서 이젠 전화통화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으니 우린 젊은 날 바쁜 삶의 무게와는 사뭇 다른 모양으로 어깨에 전해지는 무게감을 느끼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주 오랜 뒤 어느 날 익숙한 어른들의 이별처럼 우리도 영 이별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익숙하지 않았던 이 시골집에 남겨지게 될 서로의 흔적이 지나온 시간들처럼 서툴고 미숙하지만은 않기를.

많은 것을 하려고 애쓰다 힘들게 되지도, 애잔하게 되지도 않기를.


좋은 이야기, 좋은 기억들을 엮어가며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과 같은 톤으로 남은 시간들이 채색되기를.


마을에서 나누어주는 거름 세 포대를 집 마당에 옮기고 나무 한 그루를 심기 위해 땅을 파려다가 아직 언 땅이 더 풀릴 때까지 며칠을 더 기다리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줄곧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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