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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 지 Aug 30. 2022

아는 외로움

봄에는 비가 내릴 때마다 날이 조금씩 따뜻해졌지만 이젠 비가 올 때마다 조금씩 추워지는 가을로 접어들어간다.

두 주동안 인근의 재활원으로 시간 강사를 나가고 있다. 지난 주만 해도 교실 에어컨을 작동시켜서 여름 열기를 식혀야 했는데 비가 오는 어제와 오늘은 긴소매 옷을 찾아 입어야 할 정도로 선선해졌다.


모든 장애인들에게는 유치원부터 대학(전공과) 까지의 교육이  무상 의무교육이다. 이동이 어려워 누워있어야 하는 중증의 장애학생들에게는 일주일에 두세 번 교사가 방문을 해서 교육을 하는 재택 순회교육으로 학교 교육과정을 이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곳 재활원에도 학교 출석이 어려운 학생들의 교육활동을 위해서 순회교육을 할 수 있는 교실을 준비해두고 있다. 기숙사 건물에서 교실이 있는 앞 동 건물로 이동하는 것이 전부인 등하교길이지만 생활실 담당 선생님은 아이의 머리를 곱게 묶어주고 휠체어에 앉혀 맞춤형 책상을 조립해 주고 양말을 챙겨 신겨 주며 "학교 잘 다녀와요" 인사를 해 준다. 나도 아이와 생활실을 나오며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수업을 마치고 다시 생활실로 들어갈 때면 다시  "학교 다녀왔습니다" 인사를 한다.


갑자기 서늘해진 날씨로 인해 약한 아이들 여럿이 열이 올라서 어제 아침에 제법 많은 아이들이 병원엘 다녀왔다고 했다. 내가 수업을 담당하는 아이 한 명도 열이 많이 나서 생활실에서 나올 수가 없어서 수업이 비었다. 일주일에 세 번의 짧은 등하교길 외출을 기다리던 아이는 안부를 물으러 간 내 얼굴을 보고 환하게 웃어주었다. 아파서 학교에 갈 수 없으니 내일 다시 보자고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가슴이 한없이 아렸다. 내일도 수업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활실 선생님도 안타까워하면서 말씀해주셨다.

모레가 되었든 글피가 되었든 꼭 보강을 하겠다 약속을 하고 빈 수업 시간은 다른 생활실의 아이와 수업을 했다.


삼십 년을 넘게 장애학생들을 교육하고 있는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저마다의 경험 속에서 도저히 지워낼 수 없는 쓸쓸함에 대하여도 말하게 된다.

제한된 환경을 최소화해서 스스로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생활인으로 자라게 하는 일이 교육의 목표라면, 특수교사라는 존재 자체가 '제한된 환경'의 출발이 되므로 결론적인 의미를 해석하자면 장애학생들에게 존재 자체가 없어도 되는 환경이 되는 일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 일이 우리들의 일이 되는 것이니까.

사랑이 많아야, 소명감 또는 사명감이 있어야 하는 일이라고 주변에서 말해 주기도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거친 삶의 중심에서 그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당사자와 그의 부모님과 그 가족들이 겪는 어려움에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니까.


이젠 장애학생들이 일반학급에서 통합교육을 받는 일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고 한 친구가 말했다. 심한 문제행동으로 학급 친구와 담임교사의 수업을 방해하는데 굳이 그 불편한 상황을 서로가 견뎌내는 무리함을 감수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그는 공허하게 말했다.

학교를 퇴직한 입장이지만 주제넘게 말하자면 그럼에도 그 불편한 시간이 의미가 있다 믿는다고 나는 말했다. 글자를 읽을 수 있게 가르치거나 문제행동을 하지 않도록 가르치는 일은 일대일 수업장면에서 얼마든지 연습을 시킬 수 있지만 교실에서 또래 친구들과 담임선생님을 만나고 그 교실 수업이 이루어지는 순간 속을 그들과 함께 지내고, 때때로 적응이 어려워서 문제행동을 일으킬 때 그 모습에 당황하고 낯설어하고 두려워하거나 측은해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직접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은 특수교육프로그램에서는 절대로 기획해서 실행할 수 없는, 살아있는 시간이 되는 것 같다고. 장애학생은 학령기를 지나면 어쩔 수 없이 외부 환경과 격리된 상태로 아주 오랜 시간을 지내게 되는데 일반 아이들이나 장애아이들이나 서로가 서로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혀갈 수 있도록 허락된 시간과 공간은 긴 인생길에서 짧디 짧은 그 수업시간밖에는 없기 때문이라고.

아마도 요양병원에 입원하셔서 이젠 우리와 일상생활을 함께 할 수 없게 된 내 어머니도 함께 떠올리면서 나는 그렇게 말했을 것이었다.


친구들의 답은 여전히 각기 달랐다.


우린 그 각기 다른 답을 말하는 친구들의 각각 다른 외로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삼십여 년 전 특수학교에서 교생실습을 할 때, 학교 앞에 있는 생활관 기숙사에서 지내는 아이들이 아침이면 등교 준비를 하고 학교 건물로 와서 수업에 참여했다. 짧은 이동거리는 중증의 장애학생들에겐 아주 효율적이고 안전한 등하교길이었다. 학교 수업 시간은 짧고 생활관에서 보내는 시간은 길고 길고 길었을 아이들의 모습을 잊지 못하고 있다.


계절이 바뀌는 길목에서 갑자기 서늘해진 날씨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해 걸려버린 열감기를 치료 받느라 짧은 이동거리와 짧은 수업시간도 함께 하지 못하게 된 귀여운 나의 두 주일 학생도 앞으로 내내 잊지 못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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